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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복주는 정치연구소'에서 안희정 사건 5년, 피해인 조력자 모임이 열렸다. 왼쪽 아래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미순, 남성아, 서혜진, 권김현영, 신용우, 배복주, 김혜정, 이미경 (호칭생략, 정혜선 변호사는 뒤늦게 참석)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복주는 정치연구소'에서 안희정 사건 5년, 피해인 조력자 모임이 열렸다. 왼쪽 아래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미순, 남성아, 서혜진, 권김현영, 신용우, 배복주, 김혜정, 이미경 (호칭생략, 정혜선 변호사는 뒤늦게 참석)
ⓒ 피해인 조력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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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3월은 잊을 수가 없대요. 김지은씨는 3월이면 아프다고 하고..."

'침묵을 깬 사람', 그리고 '세상을 바꾼 사람' 옆에는 그들을 묵묵히 도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미투' 5년을 맞아서 모였다. 

2018년 3월 5일, 김지은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날. 이날 밤부터 김씨에게 '조력자'가 생겼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피해자 공동대리인단', 그리고 기꺼이 김씨의 편에 서준 충남도청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성폭력 고발 554일 만에 안 전 지사의 유죄를 확정하는 데 기여했고, 그 이후에도 김씨의 활동에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년 3월이 돌아오면 그날의 '미투'를 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승리를 거뒀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이겼지만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고백했다. 무분별한 2차 가해, 여전히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 주변인들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들은 규탄하고, 성찰하고, 동시에 '함께' 웃고자 한다. 

<오마이뉴스>는 24일 밤, 서울 종로구 복주는 정치사무소에서 열린 '안희정 사건 5년, 피해인 조력자 모임'에서 오간 대화를 정리해서 전한다.

고통스러웠던 1심 무죄... 연대하는 시민들에 힘 얻다

대부분의 조력자들은 가장 힘들고 화난 순간을 '1심 무죄', 동시에 가장 힘이 됐던 순간은 1심 무죄 판결 후 '분노한 시민들의 후원과 응원'이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유력 정치인에 대한 성폭력 고발과 승소를 통해 사회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나아가 스스로도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강조했다.

배복주(정의당 종로지역위원회 위원장):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 대표가 된 지 두 달도 안 된 상황이라서, 사실 이 사건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런데 김지은씨를 만나고서는,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2018년 3월 5일 밤에 만나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해 9월 9일까지 지원을 했다. 1심에선 무죄 나와서 많이 고통스러웠고, 2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기뻤다." 

권김현영(여성학 연구자): "1심 무죄 판결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감각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1심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고, 바로 (서울) 서부지법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주 토요일에는 또다시 서울 시내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판결을 규탄하며) 바리케이드도 밀어버리고 행진을 하지 않았나. '2심을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들이 2018년 8월 18일 오후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안희정 무죄 규탄 대규모 집회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들이 2018년 8월 18일 오후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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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변호사): "저에게는 '이제 피해자들 편에 서야겠다'는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게 된 사건이다. 업무상 많은 피해자들을 보게 되니까, 이렇게 나와서 얘기하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김지은씨에게 여성으로서 부채의식이 있다. 저는 김지은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가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아(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 "1심 무죄 당시 각 성폭력상담소에 SNS 쪽지가 쏟아졌다.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니까 후원 계좌를 열라고'. 그렇게 깜짝 놀랄 정도의 응원 메시지, 후원금 등이 쏟아졌다. 정말 많은 응원을 해주시는 걸 느꼈기에 감동이 컸다." 

김미순(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 "당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으로서) 제가 맡았던 것은 지은씨가 대중에게 알려짐으로써 겪었던 어려움들을 감싸줄 수 있는 역할이었다. 지은씨랑 같이 움직이는 밀착 지원 담당이었다. 1심 때 우리가 너무 힘들었던 것, 밤에 주로 만나서 새벽까지 회의를 하던 당시의 피곤함, 막막함... 그 밤들의 공기가 기억에 남아있다. 또 그럼에도 뭔가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끝나지 않는 피해... 2차 가해는 여전해
 
미투 운동 이후 2차 가해로 인해 성폭력 고발자들이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
 미투 운동 이후 2차 가해로 인해 성폭력 고발자들이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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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성폭력 규탄 집회에서 흔히 나오는 구호다.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서 전자는 이뤄졌다. 그러나 피해자의 일상 복귀는 더뎌지기만 했다. 김지은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유례없이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재판은 3년 전에 끝났지만 조력자들은 2021년 겨울부터 2022년 가을까지 안 전 지사의 출소와 정치적 영향력 확산에 따른 피해를 대비해 한 달에 한 번씩 줌(Zoom) 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김지은씨의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죄 판결 이후에도 김지은씨에 대한 안 전 지사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고, 지지자와 측근의 반성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지 3년 반이 지났지만, 김지은씨와 이들은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신용우(안희정 전 수행비서): "가해자를 조력하고 2차 가해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민주당이라는 공동체에서 감싸줬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한 피해자의 일상 복귀가 절실한 사건임에도, 가해자가 사과하면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사과'를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될 정도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센 놈한테는 덤비지 마라'라는 인식만 남기는 게 아닐까 무섭다.

정혜선(변호사): "(안 전 지사는) 피해자 빼고 모두에게 사과를 했다."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1심 변론에서 안 전 지사가, '재판마다 오셨던 여성 단체 관계자분들 너무 고생 많으셨고, 죄송하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김미순: "안씨는 재판에 들어올 때마다, 또 나갈 때마다 우리들을 향해 '고생했다'라고 인사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사실 승소의 경험은 김지은씨가 가졌던 영향력, 그리고 수많은 시민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다만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은씨가 혼자 감내해야 했던 무게가 너무나 크다. 왜 피해자가 그러한 무게를 끝까지 견뎌야 하는지, 왜 피해자의 일상을 제대로 찾을 수 없는지가 지금 시점에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배복주: "586 남성들을 만나면 여전히 '안희정'을 탓하는 게 아니라, '김지은'을 탓하는 말을 많이 한다. 무슨 말로 설득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

권김현영: "무엇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세계관에서 살고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남편의 불륜'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악덕이 되고,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어떠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세계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이 사건에서 보여짐으로써 우리는 다른 세계로 이동해 온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세계관'의 싸움으로 본다."

서혜진: "정치 권력자가 문제된 성폭력 사건은 진영논리로서 보고, 자꾸 '배후'나 '다른 목적'을 의심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성폭력 사건 하나도 힘든데, 넘어야 할 산들은 더 많아진다. 정치적인 지지나 신념에 따라서 성폭력 문제도 인식을 하고 있으니, 본 사건이 아닌 파생되는 2차가해 사건이 너무 많이 늘어난다."

정혜선: "사법부의 판단을 진영에 따라서 어떤 때는 맹신하고 어떤 때는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안 전 지사를 처벌했기 때문에 이긴 사건인데, 저는 계속 패배감이 들었다.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그룹들은 '무죄 추정 원칙'을 이야기했다. 유죄로 나오면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화된 것 같다. '성폭력에서는 유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열심히 싸워서 진실을 위해 싸웠지만, 이것은 그 사람들(안희정 측)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투'가 가져온 변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복주는 정치연구소'에서 안희정 사건 5년, 피해인 조력자 모임이 열렸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복주는 정치연구소'에서 안희정 사건 5년, 피해인 조력자 모임이 열렸다.
ⓒ 피해인 조력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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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력자들이 이날 모임에서 그저 힘듦을 토로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웃었다. 김지은씨의 '미투'로 세상은 분명 바뀌었노라고,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피해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나아가 이들이 김지은씨와 '함께' 위력 성폭력을 규정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끊어냈다는 점에서 보람차다고 말했다. 
    
배복주: "안희정 사건은 '위력 성폭력'이라는 말을 공론화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게 했다. 여태까지는 성폭력에서 폭행·협박 등 행위 수단 자체를 굉장히 제한적으로 봤다면, 이제는 '위력'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것은 김지은씨와 우리 공대위의 성과다.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말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확보를 한 듯하다."

김혜정: "피해자가 더 이상 (가해자의) 세계에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은 것, 그 세계를 깨고 나온 것이 가장 좋다."

서혜진: "2021년경 일본 여성 법조인들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에게서 '안 전 지사와 연극 감독인 이윤택씨가 어떻게 둘 다 감옥에 갈 수 있냐. 우리(일본)는 사법적으로 그게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미투 운동이 사법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수사의 방식과 관행, 피해자의 진술을 대하는 태도는 미투 전과는 달라졌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게 됐다. 그런 면에서는 더 나아갈 일만 남았다 (모두 웃음)."

신용우: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피해자를 숨게 만들지 말고, 피해자의 일상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 그게 앞으로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의 숙제다."

김미순: "그때의 김지은은 가까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지냈던 사람인데,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할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뻗는 곳에 있을수 있다. 여전히 고군분투 하고 있지만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다."

이미경: "김지은이 한 인간으로서 (우리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긍정적인 사실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정치인이든 사회 전반이든 '성폭력 하면 안돼'라는 인식은 명확하게 심어주고, 직장 내 성희롱 부문의 정책이 강화된 것. 마지막으로 활동가로서는 '연대'를 통해 피해자와 활동가와 일반 대중이 함께 할 수 있고, 그 힘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건이었다."

태그:#안희정 성폭력 사건, #안희정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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