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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출간한 김강.
 첫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출간한 김강.
ⓒ 김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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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자신의 열정을 나눠 실수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사실 '제대로 된' 한 가지 일만 하기에도 벅찬 게 인간의 생이고 능력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소설가 김강(51)은 특이하고 돌올한 인간이다. 그는 2017년 '심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인 동시에, 경북 포항의 문학전문 서점 '책방 수북'의 주인이고, 내과의사이기도 하다.

아니, 하나가 더 있다. '책방 수북' 내부엔 '도서출판 득수'가 있고, 그는 이 출판사의 대표다. 작가와 의사, 거기에 출판인의 역할까지 하다 보니 김 작가는 남들보다 최소 3~4배 바쁜 일상을 산다.

그다지 길지 않은 6년의 시간 동안 소설집 2권과 3~4권의 공저에 작품을 발표한 것은 소설가로서의 역할이었다.

여기에 지난해 만든 서점 책방 수북에선 올 1월부터 3월까지 소설가 정지아와 백가흠, 시인 문태준의 강연회를 열었다. 정지아는 전남 구례에서, 백가흠은 대구에서, 문태준은 제주도에서 포항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책방 수북을 찾았다. 이들 모두는 전국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도서출판 득수는 지역의 신진 작가를 발굴해 그들이 책을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출간을 마친 작가들에겐 독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북콘서트'를 주선하는 것도 김강 작가의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쓰기에 숨 가쁘다. 헌데, 지난 3월 초순엔 김강이 또 하나의 '사고'를 쳤다. 자신의 3번째 단독 작품집이자, 첫 번째 장편소설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독자들 앞에 내놓은 것.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돈과 권력을 독점한 노인인 '만식'과 기계적 장치를 심장과 폐에 이식하면서까지 죽지 않으려 하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하는 아들 '필립', 물신숭배의 21세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만식의 연인이 되는 젊은 여성 '안나'와 그의 오빠 '노마'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반성적 성찰 없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지향할 만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여기에선 우리가 마냥 숭배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이 시시때때로 드러나고, 그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가 드라마틱하게 서술·묘사된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물론, 내일도 바쁘게 살아갈 것이 분명한 김강 작가와의 인터뷰는 3월 중순 내내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아래는 전화와 이메일, 대면 만남 등으로 건져낸 소설가이자 의사, 서점 주인이자 출판사 대표인 김강의 삶과 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짤막한 '보고서'다.

"45세에 등단... 논리적이 되지 못하니 소설을 쓴다"

- 등단이 40대 후반이다. 이전 삶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될 소설가로서의 삶을 선택·결정한 이유가 뭔가.
"소설가로서의 삶을 '선택 혹은 결정'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소설가의 삶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말하고 싶다. 45세에 단편 소설 <우리 아빠>로 등단을 했다. 일종의 자격증이 주어진 것 같았고, 그 자격증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 세상에 안 바쁜 직업은 없다. 당신 직업인 의사 역시 그럴 것이라 본다. 산문은 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체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소설을 쓰고 있는지.
"억지로 글을 만들어 내려 한다면 물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소설을 쓴다. 해서 바쁘거나 몸이 힘들더라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묻고 싶은 것은 물어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런 듯하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초기에는 주말마다 작업을 했다. 지금은 1년 중 특정 기간을 정해 다른 일을 최소화하면서 집중 작업을 한다."

- 세상과 인간에게 어떤 할 말이 있어 '이야기꾼'인 소설가가 되고자 한 건가.
"논리적이고, 지적인 역량이 높고, 성실하다면 칼럼이나 주장하는 글을 썼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직관이 늘 앞선다. 이런 직관은 몇 마디 문장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로 풀어내야만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구체적인 사항마다 다르다. 하지만 굳이 기저에 흐르는 큰 줄기를 언급하자면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이전 세대 작가는 누군인지.
"특정 작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삶의 방식, 형태로서 닮고 싶거나 존경하는 분들은 많다."

-주변 의사들과 친분 있는 이들은 몇 년 사이에 여러 권의 작품집과 장편까지 낸 것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첫 소설집을 2020년에, 두 번째 소설집을 2021년에 냈고 2023년 3월에 첫 장편소설을 책으로 엮었다. 다들 대단하다 말하거나 어떻게 그런 것을 다 하느냐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도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한 사람들이다. 그 무언가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소설가가 소설을 쓰지 않고 3~4년을 보낸다 하더라도 허비하는 시간은 아닐 것이라 본다. 내적인 성장의 시기를 보내는 것일 테니까."
 
소설가 김강의 첫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
 소설가 김강의 첫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
ⓒ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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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산다는 것이 인간 모두의 꿈이 될 수 있을까?

- 장편소설 제목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생소한 단어다. 무슨 뜻이고 어떤 이유에서 사용하게 된 제목인지.
"생후 5개월 이전 아기의 손바닥에 물체를 놓으면 강하게 움켜쥐거나 어떤 것이라도 잡기 위해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반응을 말하는 의학 용어다. 인간이 놓지 못하는 욕망을 뜻하고 싶어 사용했다. 적당한 제목을 찾지 못해 고민을 많이 했다. 독자 입장에서는 검색해보거나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라 생각했다."

-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어렵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질문이어야 하는데 답을 내놓으려면 자기검열이 강화되는 것 같다. 굳이 말한다면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것, 그것이 저의 메시지입니다'라는 것이다."

- 실제로 의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이전 시대보다 대폭 높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선 그게 주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생각하는 의학 기술의 발달을 통한 수명 연장에 대한 견해는. 그리고, 소설가로서는 이런 추세를 어떻게 보는가.
"의사로서와 소설가로서의 입장을 분리해서 답하기 어렵다. 나는 그 둘의 총합이니까. 의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수명 연장은 조금 다른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명이 연장된다고 가정해보자. 권력자는 영원한 권력을 가지는 것이고, 가진 자는 제한이 없는 부를 누릴 것이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히 현재의 상태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생명 연장의 꿈'이란 말이 있다. 일단 생명 연장이 왜 꿈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다. 한 개체가 소멸되지 않으려는 것이 욕망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막연히 오래 사는 것 또는, 영원히 사는 걸 꿈으로, 선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어떤 상황이 혹은, 어떤 집단이 혹은, 어떤 제도가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 <그래스프 리플렉스>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걸린 기간은.
"초고를 쓰는 데는 3개월 정도 걸렸다."

- 등장인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사람은 누군지.
"노마다.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보려고 초고를 고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 탈고한 날의 느낌은 어땠나.
"의외로 담담했다. 다만 장편소설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그 당시에는 앞으로 장편만 쓰겠다는 헛된 다짐도 했었다."
 
소설가이자 내과의사, 출판사 대표이자 서점 주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김강 작가.
 소설가이자 내과의사, 출판사 대표이자 서점 주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김강 작가.
ⓒ 김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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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운동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바로 나"

- '지역 문화운동'이라 불러도 좋을 출판사 설립과 운영, 문학 전문서점 개업, 각종 문화행사 후원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 세칭 '돈 안 되는' 일을 왜 자기 돈 써가며 하고 있는지.
"돈 안 되는 일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돈 되는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좋은 의도를 말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문화운동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나'다. 나라는 자아가 성장하고 풍부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은 사실 웬만한 돈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 아닌가?"

- 당신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뭔가. 가족, 공동체의 평등한 행복, 인류의 멈춤 없는 발전... 이런 뻔한 답변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 공동체의 평등한 행복, 인류의 멈춤 없는 발전… 이런 뻔한 답변이 가장 중요한 가치지만, 다른 걸 원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는 나의 욕망을 존중한다. 그 욕망이 품위를 가졌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사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소설을 통해 영원한 삶을 누리고 싶다."

-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있나.
"청탁을 받아서 쓰고 있는 소설을 제외하면, 계획하고 있는 소설은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말할 수 있다."

- 당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와 서점에서 작가 초청강연 등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특별한 문학 관련 이벤트를 지속할 것인지.
"현재 하고 있는 강연들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그 과정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서점에서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이 또한 작가와 독자, 작가와 작가가 만나는 기회를 위한 것이다. 독후감 공모전과 주요 작가의 절판된 책 복간 등은 이미 진행하고 있다."

- 인간으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청사진은.
"청사진을 가지고 살지 않는다. 순간의 직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름 만족한다. 이후에도 어느 순간 다가온 직관을 받아들이며 살 것이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조금 민망하지만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스프 리플렉스

김강 (지은이), 도서출판 아시아(2023)


태그:#김강, #그래스프 리플렉스, #책방 수북, #도서출판 득수, #내과의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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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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