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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력과 콘텐츠가 모두 좋은 글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콘텐츠라고 생각했었다. 문장력이란 내용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문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용이 독특하고 공감을 준다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좋은 내용에 탁월한 문장력이 갖춰진다면 독자에게 전해지는 감동과 공감이 더해질 뿐만 아니라 서투른 문장력 때문에 아직 전달되지 못한 글쓴이의 진심이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류주연 작가의 <딸의 기억>이 그런 책이다. <딸의 기억>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오래되지 않은 저자의 가족과 고향 이야기,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취업 준비 시절의 발버둥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무엇보다 가난에 시달리며 고생만 한 저자의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비보를 접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투병기도 이 책의 근간에 자리 잡는다.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그런데도 <딸의 기억>은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 덕분에 저자 개인의 발버둥이 우리 모두의 발버둥이며, 그녀의 어머니 암 투병이 우리 모두 어머니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식탁 한구석 아주 자그마한 그릇에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따로 담는 것만으로 자기주장을 하던 엄마가 취향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나 역시 류주연 작가처럼 시골 출신으로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니고 갑자기 큰 병을 앓게 된 어머니를 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받았던 외아들이었지만 어머니에게 다정다감하지 못했던 원죄가 있는 사람이다.

류주연 작가가 암투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마늘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연구한 것처럼 나도 어머니가 반신불수가 되고서야 어머니를 위해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었다. 손을 잡아드리고,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함께 저녁노을을 구경하고 간식을 떠먹이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대소변을 받아주었다. 
 
표지
▲ <딸의 기억> 표지
ⓒ 채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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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을 간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되다. <딸의 기억>은 분명 읽기에 유쾌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어두운 내용도 결코 아니다.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이겨 내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로망인 사서가 된 성공스토리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딸의 기억>을 읽다 보면 저자가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체득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머니의 투병 이야기는 큰 줄기로 흐르는 한편 자신의 고향 집, 어린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 공용 샤워실이 있는 고시원 생활, 너무 배가 고파서 손님이 먹다 남긴 라면 국물을 마신 이야기 등이 곁가지로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딸의 기억>은 마치 촘촘히 잘 설계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감동과 공감을 준다. 

만약 이문열 작가가 요즘 시대에 태어나 <젊은 날의 청춘>을 쓴다면 <딸의 기억>과 같은 책을 쓰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딸의 기억>은 한 사람의 가난했던 청춘을 넘어서 요즘 세대가 겪는 난관과 극복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누구나 류주연 작가에게 행복만이 이어지고 어머니께서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딸의 기억>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딸의 기억

류주연 (지은이), 채륜서(2021)


태그:#류주연, #채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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