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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날, 아이들이 모은 상품권을 쓰기 위해 저희 가족은 중고서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일 년에 두세 번씩 아이들과 종종 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다니던 첫째와 둘째가 딱히 사고 싶은 책이 없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제가 돌아봐도 아이들이 살 만한 매력적인 책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을 서성이던 와중에 남편은 갑자기 첫째가 좋아할 것 같다며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 책은 바로 '빨강머리 앤'이었습니다. 평소 저희 책장에 꽂혀있던 두꺼운 <빨강머리 앤>의 내용을 궁금해해서 남편이 가끔 읽어줬었거든요. 그 책을 좋아하던 아이가 생각난 남편은 직접 '빨강머리 앤'을 검색해 봤던 것입니다. 표지가 매력적인 책을 내밀자 아이는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후루룩 읽고는그 책을 바로 사기로 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둘째와 셋째는 책을 사지 못했습니다. 영유아 그림책은 책장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꽂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특히 둘째가 좋아하는 책을 찾기 위해 아이의 요청으로 검색대에서 여러 번 검색했지만 모두 재고가 없었어요. 저희 부부는 이 상황에서 아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재빨리 새 책을 파는 서점으로 가는 건 어떨지 물었습니다. 상품권이 남은 첫째도, 그리고 책을 한 권도 사지 못한 둘째도 바로 동의했어요(셋째는 그저 따라갑니다).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으로 갔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마감시간까지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아이들이 책을 고르다가 계산대 마감을 해버리면 또 속상해할까 봐 저는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남은 시간을 재빨리 안내해 주고 사고 싶은 책을 얼른 골라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첫째, 둘째, 그리고 남편과 함께 책을 찾아다닌 셋째 모두 마음에 쏙 드는 책 한 권씩 품에 안고 나타났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어디서 찾았냐고 물어보니 매장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라고요. 바로 아동 도서 쪽으로 가면 보이는 '베스트셀러' 책장이었습니다. 그곳은 제 눈으로 보아도 설렘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환한 조명으로 밝혀져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로 바로 달려갔고 거기서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좋아하는 책을 쏙쏙 골랐어요.

첫째는 평소에도 자주 읽던 공주 시리즈물 중 한 권을, 그리고 둘째는 도서관에서도 인기가 많아 빌리기가 힘들었던 캐릭터 시리즈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막둥이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림책 한 권을 명랑하게 집어 들었고요.

아이들은 돌아오는 차에서 직접 고른 책들을 내도록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그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자신이 고른 책들을 읽고 또 읽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사서 오는 기쁨을 안겨줄 수 있어서 남편과 저도 참 뿌듯한 주말이었습니다.
 
직접 고른 책을 읽는 아이들 모습
▲ 책 읽는 아이들 직접 고른 책을 읽는 아이들 모습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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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몇 년 전에 갔던 '그림책방'에 대한 추억도 떠오릅니다. 그곳을 처음 방문한 건 첫째가 세 살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느꼈던 때라 그나마 아이 친화적인 그림책방이 우리 가족의 마음 편한 나들이 장소였습니다. 거리도 가깝고 남편과 제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그림책도 맘 편히 보여줄 수 있으니 주말이든 평일이든 심심할 때면 그곳을 찾았어요.

한두 번 방문하고 나서는 사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저희 아이를 위한 책 추천도 받았습니다. 동네에 작게 차려진 그림책방은 드나들수록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내 아이에게 필요한 책 또는 내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쉽게 추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책육아를 하려면 책이 있는 그 어디든

저는 몇 년 전부터 책육아에 관심이 많아져 관련 글이나 기사,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꼭 언급되는 것은 바로 '도서관을 자주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가족도 여전히 한 달에 두 번, 많게는 서너 번을 도서관에 다녀오기에 책육아에 있어서 도서관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장소임을 압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다양한 책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결코 도서관에만 가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는 많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이 큐레이팅 되어 있는 대형 서점으로, 때로는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하는 중고서점으로, 또 때로는 1:1 맞춤처방처럼 내 아이가 관심 가질 만한 책을 추천해 주시는 사장님이 있는 그림책방(독립서점)으로 가는 것도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새로운 재미를 부여해 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막 책육아를 시작하려는 분들, 그리고 이전에 책육아를 해왔더라도 아이들에게 '새로운 책'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는 도서관에서 조금 더 범위를 확장해 책이 있는 그 어디라도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진짜 재밌어 하는 책은 어디에서 만날지 모릅니다. 가능성을 도서관에만 국한시키지 않길 바라요. 참고로 저희 첫째는 2월에 중고서점에서 샀던 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 달 동안 10권 이상의 명작들을 계속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날의 중고서점 나들이가 우리 첫째에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거죠. 어떤 책을 계기로 아이가 독서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앞으로도 책과 친밀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궁금한 게 생길 때면 책으로부터 지식을 얻길 바라고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글을 통해 경험하고 공감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되길 바랍니다.

단순하게는 책이 재밌다는 경험을 무한대로 누리며 살게 하고 싶어요. 우리가 식사를 한다면 대체로 집밥을 먹지만 분식집에서 사 먹을 수도 있고 전문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책을 고르는 것도 도서관, 그림책방(독립서점), 서점 등 책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서든 가능할 거예요.

아이가 인생책을 만날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책육아, #독서, #육아,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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