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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을 시작한 뒤 바라본 밤하늘 별빛에서 어머니와 추억이 생각난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뒤 바라본 밤하늘 별빛에서 어머니와 추억이 생각난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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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마을로 이사한 지 벌써 7년째가 되어 간다. 처음 전원에 살기 시작할 때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사하고 몇 개월 동안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집 앞 컴컴한 숲에서 멧돼지라도 나올까 봐 두려웠고, 마당 뒤편 어둑한 곳에서 누군가 숨어있을 것 같아서 현관문 밖에 물건을 가지러 갈 일이 생겨도 혼자서는 나가지 못했다.

이사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어느 날, 손님 초대할 일이 생겨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2층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잊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밖에 나가 빨래를 걷으면서 바라본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빛을 잊을 수 없다. 어릴 때 보았던 그 별빛을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한강 이남에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강 건너 서울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고, 우리 동네에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야경(夜警)을 도는 제도가 있었다. 마을 아저씨들이 순서를 정해 서너 명씩 모여 자정이 넘으면 방범 활동으로 네모난 나무막대 두 개를 탁탁 두드리면서 동네를 왔다 갔다 하며 구석구석 살피며 다녔다.

동네에는 가로 15cm-세로 5cm 정도 되는 나무로 만든 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동네 남자들이 겨우내 모여서 새끼를 꼬고, 회의도 하며 야경 도는 아저씨들이 쉬기도 하는 장소인 마을회관에 군불을 때라는 뜻에 불 표라고 써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야경 도는 아저씨들에게 새벽 1시쯤 밤참을 해주라는 밥 표이다. 불 표가 동네 오른쪽 끝 집에서 시작했다면, 밥 표는 왼쪽 끝에서 시작해 표가 차례대로 옆집으로 건너갔는데, 표를 받은 집은 마을회관에 불을 때거나 밥을 하는 당번이 됐다.

어머니는 이웃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한동네서 나고 자란 사촌 이모다.

농한기가 되면 별다른 놀이도 없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어머니는 사촌 이모와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사촌 이모네 집은 우리 집에서 20여 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이모는 다리가 불편해서 주로 어머니가 놀러 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저녁을 먹고 어린 딸을 앞세워 사촌 이모네로 향했다. 사촌 이모와 같은 동네에서 자란 어머닌 둘만의 비밀스러운 얘깃거리가 많이 있었다. TV도 없고 친구가 될 만한 아이도 없는 사촌 이모네서 어머니 무릎에 손을 얹고는 졸음도 잊은 채 두 여인의 이야기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이야기에 빠진 어머니는 멀리서 들려오는 야경 도는 아저씨들의 막대기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딸의 손을 잡고 사촌 이모 집에서 밖으로 나왔다. 20여 분을 꼬박 걸어가야 우리 집인데 어쩌나. 가끔 이불속에서 탁탁 소리에 잠이 깬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길에서 듣기는 처음이었다. 어머니께 끌려가다시피 걸어도 장정 아저씨들의 걸음걸이는 우리 등 뒤 가까이에서 탁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아 끌어안고서 순이네 굴뚝 뒤로 몸을 숨겼다.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딸의 작은 몸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어찌나 꼬옥 안았던지 숨이 막힐 것 같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 감았던 눈을 떠보았다.

어둡고 후미진 그곳에 환하게 빛이 내리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드니 하늘의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야경 도는 아저씨들도 지나가 버린 뒤 어머니와 딸이 집으로 가는 논둑길을 별빛들이 환하게 비춰주었다.

전원으로 이사 와서 만나게 된 별빛 속엔 친정어머니의 별빛도 한몫해서인지 어릴 때 별빛보다 더 밝게 빛났다. 가끔 어머니가 그리울 땐 슬그머니 혼자 나와 잔디밭 위에서 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보다 더 늙어버린 딸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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