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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은 학교생활인권규정(학칙)에 학생자치 선거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 조항을 추가하라는 공문을 시행했다.
▲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사항 공 경기도교육청은 학교생활인권규정(학칙)에 학생자치 선거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 조항을 추가하라는 공문을 시행했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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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교육감 임태희, 아래 경기교육청)이 지난 2월 말 학생자치 선거(학급자치회장·부회장, 학생자치회장·부회장 등)에서 후보자의 징계 이력을 공개하지 않으면 출마조차 할 수 없도록 하는 지침을 시행했다.

경기교육청은 '2023 학생자치활동 추진 운영 계획(아래 학생자치계획)'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학교생활인권규정(학칙)에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 조항을 추가하라고 했다. 징계 이력이 있는 학생이 후보자로 나설 경우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에 동의하라고도 했다.

이에 따르면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는 학생은 자신의 징계 이력을 전교생과 모든 교직원에게 공개하는 데 동의한다는 '개인정보 수집 이용 제공 동의서'와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에 학부모와 함께 서명해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학생자치회 임원 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경기교육청 지침에 따른 '징계 이력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은 그로 인해 피선거권마저 박탈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17조(자치활동의 권리)', '제25조(징계 등 절차에서의 권리)' 조항에 위배된다. 17조 2항에는 '교장 등은 학생자치기구의 (중략) 활동에서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고 성적 등을 이유로 구성원 자격을 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25조 3항에는 '학교의 장은 징계 내용을 공고하여서는 아니 되며, 학생에 대한 교육 방법 및 절차에서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런 지침은 경기도교육청 '2023 학교생활인권규정 운영 매뉴얼'과도 어긋난다. '학생의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해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징계에 관한 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되며, 학생의 교육활동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관련 교사에게만 최소화하여 안내하고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경기교육청임에도 다른 부서에서 각각 만든 공문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경기교육청은 '학생자치계획' 하나의 공문에서 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 "후보자의 자격 요건에 인권침해 요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성적, 징계, 장애, 인종 등을 이유로 후보자의 자격 제한 금지"라고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를 학칙에 추가하고, 후보 자격 박탈을 전제한 강제 동의서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작성하여 출마 서류로 제출하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모두 공문 안 8곳에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를 적시했다.

이는 권고 사항이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단위 학교에서는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를 학칙에 반드시 반영하라는 경기교육청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인권침해이며 학교민주주의와 학생자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추가로, 경기교육청이 학칙에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 규정을 넣으라며 공문에 예시한 조항에는 "적용 기간은 기준일(예: 입후보 등록일) 이전의 일정 기간(예: 3개월, 6개월, 1년 등) 이내의 징계 및 조치 사항으로 한다"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3개월, 6개월, 1년 등 일정한 기간을 '징계 이력 공개 적용 기준일'로 별도 설정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객관적 기준을 두라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 보면, 이미 징계로 처벌을 받았는데 그 내용을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공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피선거권까지 박탈하겠다는 것은 이중 삼중의 처벌이며, 한번 더 낙인을 찍히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또 동일한 내용의 징계를 받았더라도, 적용 기준일에 따라 적용 기간 이전에 징계를 받은 학생은 징계 이력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적용 기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징계 이력을 공개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후보자 간 차별을 조장하게 될 뿐이다.

학교는 가능성의 공간... '금지-박탈' 멈추고 더 많은 경험 제공해야
 
징계 이력이 있는 학생이 후보자로 나설 경우 자신의 징계 이력을 전교생과 모든 교직원에게 공개하는 데 동의한다는 ‘개인정보 수집 이용 제공 동의서’와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에 학부모와 함께 서명하여 제출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학생자치회 임원 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
▲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 징계 이력이 있는 학생이 후보자로 나설 경우 자신의 징계 이력을 전교생과 모든 교직원에게 공개하는 데 동의한다는 ‘개인정보 수집 이용 제공 동의서’와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에 학부모와 함께 서명하여 제출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학생자치회 임원 선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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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피선거권 침해 아니냐'는 취지의 국민신문고 질의에, 경기교육청은 학생인권옹호관의 의견이라며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임원 선거 출마 시 유권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동의를 얻어 공개하는 것은 가능하고, 징계를 받은 학생의 피선거권을 일률적으로 박탈하는 학교가 있으므로 징계를 받은 학생의 참정권 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즉 경기교육청이 내건 학생자치 선거에서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법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답변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런 지침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는 무시하고 '무조건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불어 "징계를 받은 학생의 피선거권을 일률적으로 박탈하는 학교가 있어 징계를 받은 학생의 참정권 보호가 필요"하다면서도, 정작 결과적으로는 이들의 참정권을 박탈해버리는 학칙 규정을 만들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보호가 목적이었다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학생의 참정권(피선거권)을 일률적으로 박탈하지 말고 보호하라'는 내용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학생의 징계 이력은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 수집 최소화 가이드라인', 즉 "민감정보는 법령상 근거 없이 개인정보 처리자의 주관적 필요에 따라 수집하는 것을 지양하고 법령에서 요구하거나 허용한 경우에 한하여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과 이는 충돌한다.

더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한 과거 사례에서도 이는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11년 6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 진행된 '징계처분자의 학급 임원 자격 박탈 및 학생회장단 피선거권 제한' 사건(결정문 바로 보기)에서다. 

"학급 및 학생회 임원은 (중략) 그 자질과 자격에 대한 평가는 학생들로부터의 선출 과정에서 충분히 가려질 수 있는 것임에도 경미한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므로 피선거권을 부여"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이 이미 10여 년 전에 나온 바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2012년 1월, 인권위는 공개 결정문에서 '경징계자에 대한 학급임원 자격 박탈 및 학생회장단 피선거권 제한은 차별', '피선거권의 과도한 제한은 비례의 원칙 위배 및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2012년 1월, 당시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경징계자에 대한 학급임원 자격 박탈 및 학생회장단 피선거권 제한은 차별', '피선거권의 과도한 제한은 비례의 원칙 위배 및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정문 중 캡쳐.
 2012년 1월, 당시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경징계자에 대한 학급임원 자격 박탈 및 학생회장단 피선거권 제한은 차별', '피선거권의 과도한 제한은 비례의 원칙 위배 및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정문 중 캡쳐.
ⓒ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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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기교육청의 '후보자의 징계 및 조치 사항 공개' 조항 학칙 명시 공문은 철회하는 게 옳다.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학생자치회 후보자가 될 자격조차 박탈해버리는 것은, '가혹한 행정'일 수는 있어도 교육은 아니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이다. 금지하고 박탈하고 단속하는 것을 우선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경험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생 자치'라면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교육청과 학교가 미리 알아서 차 떼고 포 떼면 안 된다.

지난 10여 년간 경기교육(청)이 학교민주주의와 학생인권-학생자치의 길잡이 노릇을 해왔다는 사실 또한 결코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그:#학생인권, #학생자치, #징계 처벌, #차별,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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