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3 14:17최종 업데이트 23.03.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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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적 발언들로 인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김광동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5·18 발언 일부를 번복했다. '제주 4·3은 공산주의 폭동이다', '한국 근대화는 일본 식민체제를 통해 이뤄졌다', '남한의 친일청산은 적극적이고 철저했으며 합리적이었다' 등등의 발언을 이어오던 그가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결국 철회했다.

보도에 따르면,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 출석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 개입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견해가 변치 않았느냐?"라는 질의에 대해 "제 발언이 북한군 개입까지 연결될 수 있다면 부적절했다고 판단한다"라고 답했다.


견해가 바뀌었다고는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존 발언이 북한군의 개입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깐 뒤, 그렇다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입장을 표시했다.

그런데 '북한'이 아니라 '북한군'이란 표현을 썼다. '북한군'이 아니라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고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을 수 있는 답변이다. 북한이 비군사적 방법으로 개입했을 여지는 유보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할 만한 대답이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 개입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라는 추가 질의가 뒤이어 나왔다. 그제서야 "개입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는 답했다. 북한군뿐 아니라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고 시인한 것이다.

지난 7일 인터넷판 YTN에 실린 '[단독]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단독 인터뷰'라는 기사는 '북한이 여러 사건에 관여하고 개입을 시도했던 만큼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도 그런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는 그의 입장을 전했다.

그는 엿새 뒤인 13일에도 국회 행안위에 나가 동일한 발언을 이어갔다. "북한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본인들의 의도대로 개입하고자 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며 "북한군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고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까지 제가 배제할 수 없다는 말씀"이라고 답변했다(관련기사: 문재인 처벌 운운했던 진실화해위원장, 또... https://omn.kr/232oh).

이처럼 13일까지도 공식 석상에서 5·18 북한 개입설을 이어갔다. 그랬던 그가 22일 국회에서 이 부분을 철회했다. 그 9일 동안에 전면적인 재검토를 한 결과로 나온 철회 발언이 아니라면, 파상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사퇴 압력을 피하기 위한 발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51차 전체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2.7 ⓒ 연합뉴스

 
증거에 따라 진실 규명해야 할 사람이...

22일 국회에서 그는 '다시 살펴보니 아니더라'라고 답하지 않고 '개입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임을 이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놓고 가능성을 운운하려면 최소한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는 북한 개입설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근거 없이 그 가능성을 운운했다. 5·18 피해자들의 명예나 법적 지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도 그렇게 했다. 증거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야 할 진실화해위원장과 어울리지 않는 사고 체계를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구체적 검토와 사실 확인 없이 역사적 사실을 임의로 재단하는 일을 남들 못지않게 소리 높여 비판한 인물이 다름 아닌 김광동 위원장이다. 나라정책연구원장 명의로 2020년 12월 14일 자 <미래한국>에 기고한 '[심층분석] 대한민국이 훼손당하고 있다'에서 그는 문재인 정권의 과거사 청산 작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문법상의 오류를 정정하지 않고 그대로 소개한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헬리콥터에 의한 기총 사격이 있었다고 천연덕스럽게 허위 사실을 반복 선동하는 것이나, 1919년 3·1운동이 약 800명의 희생자였음에도 의도적으로 7500명이 살해되었다는 허위 사실로 연설한다든지, 또 박근혜 정부에서 계엄령을 선포해 촛불시위를 막으려 했다는 것, 1965년 한일 국교정상회담 때 개인 배상은 제외했다는 등 구체적 검토와 사실 확인도 없이 거짓 공론화하는 것 등은 정상적 국가행위라고 결코 평가될 수 없다.
 
이 글이 나온 2020년 12월 14일은 헬기 사격을 부인한 전두환에게 광주지방법원이 유죄형을 선고한 11월 30일로부터 보름 뒤였다.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판결이 나온 뒤였으므로, 판결의 문제점이라도 지적하면서 '헬기 사격 주장은 천연덕스러운 허위 사실의 반복 선동'이라고 주장했어야 마땅하다.

또 2020년 그날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무려 8년이나 흐른 뒤였다. 이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도 없이 강제징용(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함부로 부정했다.

이는 그가 한쪽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고 다른 쪽에는 귀를 막아버리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진실화해위원장의 한쪽 귀가 막혀 있다면 우리 사회의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2020년 당시에 그는 한쪽 귀를 막아버린 채 "구체적 검토와 사실 확인도 없이" 5·18에 대한 엉터리 주장을 여기저기서 이어갔다. 위 기고문이 나오기 2개월 전인 그해 10월 16일에는 '2020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가을 정책 심포지엄'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개진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그는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역사 왜곡 금지법을 비판하면서 "광주 사건에서 2천 명이 학살되었다는 허위 주장은 용납되고, 광주 사건에 북한이 개입되었다는 가능성이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역사 왜곡이거나 관련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구체적 검토와 사실 확인도 없이 북한 개입 가능성을 운운했던 것이다. "개입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22일 국회 발언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쳐왔던 것이다.

2019년에 <가톨릭 평론> 제21호에 실린 유민지 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팀장의 기고문 '언론, 5·18 훼손의 시작과 끝'은 "광주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정립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소수의 극우세력들이 5·18 관련 가짜 뉴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라며 "2002년 8월 지만원 씨는 북한 특수군 600명이 투입됐다는 내용을 <동아일보>에 광고"했다고 한 뒤 이런 식의 폄훼가 2008년부터 본격화됐다고 서술한다.

극우 논객 지만원씨와 달리 김광동은 '가능성 있는 의혹'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 역시 구체적 검토와 사실 확인을 결여했다는 점에서는 지만원씨와 다를 바 없다. 광주 5·18이 '광주사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한 극우 세력의 불만 표시 행렬에 김광동 역시 무비판적으로 가담해왔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북한군 특수군 600명' 같은 극단적이고 황당한 주장이 나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22일 국회 발언에서도 나타났듯이 김광동 위원장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능성 있는 의혹' 표현을 운운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면서 5·18 북한 개입설 확산에 가담해 왔다. 거짓임을 알면서도 5·18 폄훼에 가담한 이런 거짓된 행보가 진실화해위원장이라는 직함과 어울리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22일 국회에서 발언 전부를 철회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았다. 발언 일부를 철회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의 자리가 '전부 철회'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공통된 염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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