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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등장한 공정여행 (천재교과서 42쪽, 신사고 50쪽)
 교과서에 등장한 공정여행 (천재교과서 42쪽, 신사고 50쪽)
ⓒ 티칭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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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트래블이 뭐에요?"

필자의 회사인 페어트래블재팬(공감만세 일본법인)은 여행사다. Fair Travel, 이름 그대로 공정여행을 하며,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여행을 만든다.

한국에서는 공정여행이라는 말이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24개 지자체에서 '공정관광 육성 및 지원조례'가 지정되어 있어 다소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공정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일본은 국내 지역중심 여행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오히려 여행이라면 응당 지역과 이어지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 소비를 한다고 해서 공정여행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지역 문화와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관계성을 만들어가며 지속적으로 여행지와 현지인, 여행자가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공정여행의 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고향세, 특히 GCF(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공정여행과 그 결이 닮아 있다. 지산지소 정신은 물론이고, 각 지역 과제들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역에 기부하고, 활동 내용이나 감사 의미로 정해진 답례품으로 서서히 지역의 팬이 되는 일련 과정이 공정여행이 담아내고자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향세 모금과 더불어 고향세 답례품에 공정여행을 결합해보자는 생각이 스쳤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NPO 피스윈즈재팬 고향세 담당자와 이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침 피스윈즈재팬 기부자들 중에 실제 현장을 보고 싶거나 단체에 궁금한 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10만 엔(한화 약 100만 원) 이상 고액기부자 대상 답례품인 '완코투어'가 탄생했다. 모금을 하는 지정기부단체이면서, 답례품을 제공하는 답례품 제공업자로도 활약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기획했던 유기견 보호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답례품 '완코투어'가 소개된 진세키고원 피스윈즈재팬의 지정기부(GCF) 모금페이지
 필자가 기획했던 유기견 보호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답례품 '완코투어'가 소개된 진세키고원 피스윈즈재팬의 지정기부(GCF) 모금페이지
ⓒ 후루사토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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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엔 이상 고액기부자 대상 답례품으로 설정된 이유는 고액기부자 중 지속적 기부의사가 잠재되어 있는 사람이 많아 타깃이 되기도 했지만, 주요하게는 기부금 30%로 답례품이 제한되는 규정이 있어, 고액기부자가 아니면 실제 지불해야 하는 프로그램 비용이 확보되지 않는 탓도 있었다.

실제로 각 지역부터 히로시마현에 도착하기까지 교통비를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각 집합 장소부터 단체의 활동지까지의 이동을 위한 렌터카 또는 버스대여비, 주유비, 식비, 인솔자 비용, 여행자보험비 등 모든 경비를 생각하면, 1박 2일에 한화 약 30만 원이란 비용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이 여행형 답례품은 총 10회 정도, 2년간 60여 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 중에는 2년 연속으로 자녀 둘을 데리고 참가한 가족도 있었는데, 완코투어를 다녀온 이후, 아이들이 또 강아지들을 보러 가고 싶다고 해서 도쿄에서 히로시마까지 매년 찾아와 봉사를 하는 가족이었다.

4인 가족이 함께 하려면 40만 엔을 기부해야 하고, 항공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기부액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행기로 오가는 것보다 먼 왕복 4시간을 들여 이 답례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완코투어는 단순한 먹을거리나 생필품을 답례품으로 받는 것보다 자녀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 기부하는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는 답례품이라서 선택했다. 활동하는 단체와 전문적인 여행사가 함께 하는 상품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첫 번째 방문에서 아이들이 매우 만족했다. 다녀온 직후는 물론이고, 거의 일년 내내 '그곳에서 같이 산책한 강아지가 보고 싶다'거나, 추억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기부하는 단체 활동을 직접 눈으로 보는 기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고, 더욱 믿음이 갔다. 기부를 계속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단체 활동 이외에 공항까지 마중이나 식사 등도 지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여행이 진행되어, 답례품 자체가 다시 지역에 기부되는 느낌도 받았다. 답례품을 제공하는 단체(페어트래블재팬)가 지정기부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고, 같은 지역에서 여러 협력도 하고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지역을 위해 모든 사람이 굉장히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져 감명 깊었다."


기부하는 사람들의 패턴은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기호가 있어 일반적으로 시장에 풀린 상품만으로는 답례품으로서 의미를 매력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일본은 현재 쇼핑몰화 된 답례품 경쟁 과열로 문제제기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초기 답례품은 기부에 대한 '감사의 의미'와 지역을 좀 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특산품을 전해주며 시작되었다.

지역에서만 낼 수 있는 독특한 색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닌, 지역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에서 온다. 고향세 답례품이 상품으로만 경쟁하려 한다면, 결코 다른 쇼핑몰보다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일반 쇼핑몰과의 차별화 전략은 반드시 '각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역주민이나 홍보전문가, NGO활동가 등 다양한 민간주체가 답례품, 지역문제해결형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그 길을 제한하고 중앙정부에서 통제하려 한다면, 아무리 제도를 홍보한들 행정의 일방적인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일본 고향세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지자체와 기부자를 이어주는 다양한 민간 주체의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이다. 특히 기부를 위해 필수적인 '홍보'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혹자는 일본의 민간 사이트가 답례품 경쟁을 부추기고, 과도한 수수료를 물게 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간플랫폼이 받는 수수료는 법적으로 15%를 넘을 수 없다. 때문에 '과도하게 수취한다'라는 말은 우선 성립이 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는 10% 이하의 수수료를 받고, 5%는 기타 행정서비스 등을 대행할 때 추가로 납부하는 돈으로, 이는 지자체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해당 수수료가 불필요하거나, 낭비라고 생각되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콘텐츠 마케팅 트렌드 서베이가 인용한 딜로이트의 CMO서베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할 때,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전체 예산의 약 19.5% 비용을 홍보마케팅 예산으로 투입한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위해 홍보가 필수적인 요소임을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지자체가 스스로 홍보 비용을 산정한다 하더라도, 홍보비를 아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은 한 20% 내외의 홍보비가 사용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홍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플랫폼에 홍보를 위탁할 때보다, 비용대비 홍보효과는 더 낮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민간플랫폼은 단순히 홍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업무 편의성과 지역답례품 발굴, 지정기부 프로젝트 운영의 장을 열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15%라는 수수료는 투입대비 매우 효율적인 지출이다.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의 지자체 직영 고향세 특설 사이트 '사노초쿠'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의 지자체 직영 고향세 특설 사이트 '사노초쿠'
ⓒ 사노초쿠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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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3년 연속 일본 고향세 모금 전국 1위를 차지했던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는 지자체가 직영하는 고향세 특설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고 있지만, 그 특설사이트에서 이루어지는 기부는 매우 미미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즈미사노시의 공무원인 사카가미씨는 민간플랫폼, 홍보전문가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특설 사이트는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기부금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플랫폼을 이용한 홍보는 지자체가 직접 특설사이트를 만드는 것에 비해 큰 노력 없이도 모금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자체 공무원은 그런 일에 능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즈미사노시도 특설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서도) 특설 사이트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부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특설 사이트 개설은 결코 추천할 수 없다."

이처럼 민간에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으면, 시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기부한 돈이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지금 한국은 오직 한 곳에서만 기부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역 소개도 잘 되어있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기부는 어디에 쓰이는지 목적이 중요한데,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부를 할리가 만무하다. 답례품과 세액공제혜택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행정이 잘 할 수 있는 것과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빠르게 구분하고, 같이 협력하며 나아가야만,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적인 안착이 가능하다. 지정기부, 답례품, 민간플랫폼 등 다양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하루빨리 열려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되고 지역이 살아나길 바란다.

태그:#고향사랑기부제, #일본고향세, #지정기부, #민관협력, #공감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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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지역재생 관련 경험 10년차 활동가. 현재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 거주하며 일본 고향세를 활용하여 소멸위기지역의 지역활성화 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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