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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이틀 연속 내리는 비다. 그러고 보니 고사리 장마인가. 제주에는 고사리 장마가 있다. 섬사람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3월 말에서 4월 초에 자주 비가 내리는 걸 두고 그렇게 부른다.

오름이 유독 많은 이 땅엔 봄이 되면 지천에서 고사리들이 겨우내 단단했던 땅을 뚫고 올라온다. 특히 많이 올라올 때가 바로 3월 말에서 4월 초쯤. 고사리를 위해 하늘이 비를 뿌려주기라도 한다는 듯 고사리 장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시 세상은 해석하는 맛인 걸까.

봄이면 고사리 꺾는 사람들
 
땅에서 막 올라온 고사리를 본 적이 있나요. 왜 아이 손을 고사리라고 하는지 알 것만 같은 너무나 귀엽고 솜털 가득한 고사리. 그나저나 이게 고사리가 맞나...
▲ 고사리순 땅에서 막 올라온 고사리를 본 적이 있나요. 왜 아이 손을 고사리라고 하는지 알 것만 같은 너무나 귀엽고 솜털 가득한 고사리. 그나저나 이게 고사리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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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새벽에는 고사리를 뜯으러 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꺾었어도, 비만 오면 다시 삐죽 올라와 또 꺾을 수 있는 게 고사리다. 그러니 고사리 장마는 궂은 날씨라기보다 반가운 날씨인 것. 오일장에 가면 고사리 앞치마가 있다. 고사리를 꺾을 때 착용하면, 꺾자마자 주머니 속으로 쏙 고사리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넉넉한 앞치마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산품이랄까.

고사리철에는 실종자들이 자주 발생한다. 고사리 있는 곳은 며느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저기 들판으로 오름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가 길을 잃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

고사리를 꺾는다고 땅만 쳐다보며 다니다 보니 방향 감각을 잃게 되는 걸까. 그런데도 매년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요즘은 고사리가 예년처럼 많지 않다고들 한다. 고사리가 적어진 게 아니라, 끊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제주에 터를 잡고 다음해 봄, 시어머니가 섬으로 오셨다. 어디에 고사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이 새벽이면 나가서 고사리를 한 바구니 꺾어오시곤 했다. 하나 꺾고 돌아서면 또 있고, 돌아서면 또 있더라면서, 너무나 신이 났다고 말씀하셨다. 제주 고사리는 육지에 비해 오동통하지만 연하다. 때문에 삶아서 바짝 말려도 육지에서 뜯은 것보다 양이 넉넉하다. 그러니 어머니들은 무척 신이 나시는 모양이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마치 고사리 박사라도 되는 것 같지만, 실은 나는 여태껏 제대로 고사리를 뜯어본 적이 없다. 고사리를 뜯어오는 친정 엄마,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거나 우연히 발견한 고사리를 꺾어본 적은 있지만. 고사리 좀 뜯어볼까 싶을 때 아이를 가졌다.

배가 불러 못 가기도 했고, 갓난아이를 놔두고 나갈 수가 없기도 했다. 이제 좀 뜯어볼까 하니 친정 엄마는 제주를 떠나셨고, 시어머니는 고사리철에 더는 오시지 않는다. 귀농을 하시고는 봄철이면 밭농사를 준비하시느라, 섬에 날아올 새가 없으시단다.

고사리 말고도 고사리와 유사한 것들도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잘못 꺾으면 먹지 못한다. 그러니 고사리를 잘 모르는 나는 혼자 나서지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아침 잠이 많기도 하고, 워낙 게으른 사람이니 사실 죄다 핑계일지도. 그렇게 나는 고사리를 잘 알지만 제대로는 모르는 어설픈 섬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람을 엉터리 박사라고 해야 할까.
 
고사리는 이렇게 활짝 피면 먹을 수 없다.
▲ 고사리잎 고사리는 이렇게 활짝 피면 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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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 먹고 말지

혼자 경기 외곽 도시로 가서 일 년쯤 산 적이 있다. 긴 여행이 끝나고 더는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지 못할 것 같아, 떠나간 곳이었다. 봄이 되니 여기저기에서 쑥이 올라왔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주변에 쑥이 많다는 말을 흘렸다.

엄마는 반색을 하며, 꺾어서 보내라고 했다. 쑥은 워낙 어릴 적부터 많이 봐와서 잘 알기에 호기롭게 봉다리(봉지보다 봉다리가 여기서는 더 어울린다!)와 가위 하나씩을 들고 쑥을 자르러(?) 갔다.

쑥이 꽤 많은 곳이라 욕심이 났다. 이곳에 있는 걸 다 뜯어서 보내야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보이는 대로 툭툭 잘라 봉다리에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정신없이 마구 잘라 담았는데,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고 허리가 아파왔다.

한 번씩 일어나서 허리를 툭툭 치고는 다시 쭈그리고 앉아 쑥을 뜯었다. 너무 큰 봉다리를 준비해 간 걸까. 다 채우고 나니 허리와 다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겨우 서른이었는데 이리 몸이 쑤시다니. 집으로 가져와 신문지 위에 쏟아 놓고 깨끗한 부분만 고르고 다듬었다.

그다음 제일 큰 냄비를 꺼내 물을 넉넉하게 붓고 쑥을 살짝 데쳐냈다. 자취방이라 아무리 크다 해도 라면 두 개 끓일 정도의 냄비밖에 없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물을 끓이고 쑥을 넣어야 했다. 다 하고 나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하루를 온통 쑥을 뜯고 다듬고 데치는 데 다 쓴 것이다. 그냥 사 먹고 말지. 그때 든 생각이었다.

그 뒤로 나는 아무리 쑥이 지천에 널려 있어도 절대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다. 보이면 눈을 감았다. 저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쑥을 모른다. 엄마는 어릴 적 뚝섬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뚝섬으로 놀러 가 봄나물을 캐면서 놀았다고 했다. 놀잇감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나물을 캐는 게 어쩌면 여자아이들의 유일한 놀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세대가 지고나면

서울에 살던 엄마도 그러했는데, 시골에 살았던 시어머니는 어땠을까. 모르는 나물이 없고, 낯선 산에 가도 무엇이 먹을 수 있고, 무엇이 먹으면 안 되는지, 너무나 잘 아신다. 일부는 뿌리째 뽑아서 마당에 심어 두고 매년 봄마다 캐서 드신다. 섬에는 오지 않으셔도 매년 봄이면, 부지깽이니 두릅이니, 엄나무니 하는 것들을 잔뜩 뜯어서 택배로 보내신다.

그날은 종일 솥에 물을 끓여서 나물을 데쳐야 한다. 힘드시지 않느냐고 조금만 보내셔도 된다고 말해도, 손이 큰 어머니는 늘 박스 한가득 넣어 부치신다. 그렇게 공짜로 얻은 나물은 두고두고 밥상에 초장과 함께 내거나,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올린다.

어머니 세대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물은 누가 뜯을까. 우리 세대들 중에 직접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구분할 줄 아는 사람도 적어 보이고. 초식동물들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구분해 먹는다는데, 본능이 아니라 학습으로 깨우쳐온 인간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전문적으로 나물을 재배하는 사람들만 남지 않을까. 재미로, 취미로 봄나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세상이 참 빨리도 변한다. 근데 나는 그걸 알면서도 왜 고사리를 뜯으러 갈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 걸까. 사먹고 말지. 아무래도 그날 쑥을 너무 많이 캤나 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태그:#제주도, #고사리, #고사리장마, #장마,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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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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