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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기자말]
2011년 7월 결성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대표 김영희)’는 결성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탈핵소송과 법률 대응을 이어갔다. 가운데가 김영희 변호사.
 2011년 7월 결성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대표 김영희)’는 결성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탈핵소송과 법률 대응을 이어갔다. 가운데가 김영희 변호사.
ⓒ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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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지진 안전지대 아닌 한국... 그래서 법으로 '탈핵'합니다" https://omn.kr/236mq) 에서 이어집니다. 

법으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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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사고 장면을 봤을 때는 저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어요. 사고 자체로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때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탈핵운동을 시작하면서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이 쓴 <원자력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읽은 게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다카기 선생님이 원전에 대해 통달하신 분이기 때문에 쉬운 언어로 가장 필요한 얘기를 잘 전달하신 것 같아요. 다카기 선생님이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늘 원전 걱정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어느새 저도 다카기 선생을 닮아가고 있더라고요."


김영희 변호사의 말이다. 

원전에서 우라늄을 태우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에서 얻는 '플루토늄239' 추출 비용은 우라늄 농축 비용에 비해 싸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원자로에 증기발생기와 터빈만 설치하면 '원자력발전소'다. 핵무기와 원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쌍생아다. 지진에 취약한 월성원전이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나오는 중수로 원자로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졌다.

"원전 문제를 알고 나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어요. 알기 전과 후는 너무 달랐던 거죠. 원전 문제는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일이 되었어요. 그런데 탈핵운동은 거대한 핵마피아들과의 싸움이라 엄청 힘들어요. 이런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후운동은 응원과 지지가 많아요. 둘 다 생존에 대한 운동인데 호응에는 차이가 커요."

김영희 변호사 SNS에는 기후위기 관련 기사와 글들도 자주 올라온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5세 미만 아기 60명이 원고가 되어 벌이는 기후소송도 시작했다. 국내 언론은 물론 BBC, 가디언, 독일언론 등 세계 주요 언론에도 비중있게 보도되었다.

폭우, 산불, 홍수 등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급증하고 '나'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기후운동, 기후소송 등에 지지와 관심을 높인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느낄 수 없는 '방사능'과 싸워야 하는 탈핵 운동은 대중들의 지지도 적고, 핵마피아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쉽지 않다.

원자력 전문가 수준의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값싸고 안전하다"라는 '원전 신화'와도 싸워야 한다. 원전 사고 한 번이면 한반도가 날아갈 판이니 사고 이후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의 싸움은 힘겹고 고독하다.

이기고도 진 '신고리 5·6호기 소송' 그리고 '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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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원자력 안전 신화와 경제개발 성공 신화에 취한 대한민국을 고작 몇 달 만에 바꿀 수 있다고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섣부른 결정이었어요. 탈핵 운동 진영도 입장이 갈라지고 대다수가 공론화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탈핵 진영의 패배였어요. 뼈 아픈 일이에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선언의 골자는 '신규핵발전소는 짓지 않는다, 수명연장 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관리한다'였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2017년 6월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3개월간 일시 중단하고 공사 여부를 공론조사에 맡기자고 결정한다. 7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9월 16일 천안에서 개최된 첫 오리엔테이션에 총 478명의 시민참여단이 참석해 '건설중단/건설재개' 양측 입장 청취 및 질의응답 등의 시간을 갖고, 2차 설문조사에 응했다.

이어 공론화위는 약 한 달간의 숙의 과정을 거친 뒤 10월 20일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건설 재개 59.5%, 건설중단 의견은 40.5%로 건설 재개에 손을 들어주었다. 무려 19%P 차이의 완전한 패배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탈핵로드맵은 2017년 기준 24기에서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오히려 원전이 증가하는 로드맵이었다.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내용이었다. 

'해바라기'와 김영희 변호사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탈핵운동 최대 연대체인 '탈핵공동행동'도 분란을 거듭하다가 참가단체들의 각자 결정에 맡기기로 하고 헤쳐모였다. 대다수 탈핵 운동단체들이 공론화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공약은 '계속 건설'로 물거품이 되었다.

공론화 패배 이후 '신고리 5·6호기 소송'은 오히려 희망이 되었다. 공론화에서 졌어도 소송에서 이기면 더 결정적인 승리가 될 수 있었다.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원안위와 한수원은 공론화에서 건설중단 측이 내세운 논리가 패배한 것을 들먹였지만, 그것은 공론화일 뿐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위법한지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김영희 변호사는 공론화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김영희 변호사가 주장한 내용들이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탈핵진영도 공론화 문제로 입장이 갈라지고 분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을 묻기엔 많은 환경과 조건들이 변했고, 우리의 반성과 평가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 

'공공의 선'에 서서

"제가 연대 86학번이에요. 80년대 후반 학교에서 데모는 일상이었어요. 그러다가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 저도 학교에 있었어요. 이한열 열사가 세브란스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병실 앞까지 찾아갔었고 저도 그날 학교에서 밤을 새웠어요. 그 사건이 제 인생의 기로가 된 것 같아요.

87년 이후 노동자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학연대 등 각 단위 간의 연대투쟁도 전국적으로 일어났어요. 하루는 상대 앞 버드나무 아래에서 빨간 머리띠를 두른 건강한 노동자들이 팔뚝을 휘두르며 힘 있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제가 저분들을 위해 투쟁하고 저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현타가 오더라구요. 제가 그때는 여리여리하고 작았거든요. (웃음)"


김영희 변호사는 운동의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노동자가 되어서 함께 싸우는 방법과, 전문가로 싸우는 방법이다. 김영희 변호사는 전문가가 되어 공신력으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제가 무슨 이념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거나, 올바름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바로 고시 공부에 뛰어들지는 않았어요. 법대 여학생회장도 하긴 했지만, 운동권은 아니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느라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어요."

변호사가 되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에 가입하고 개혁에 힘을 보탠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그리고 이후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을 맡아 경제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재벌개혁 운동,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했다.

"재벌개혁에는 두 방향이 있는데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것과 재벌 자체를 개혁해 공정한 사회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는 후자를 택했어요. 

재벌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소송이 삼성 에버랜드 불법 승계 문제였어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회사가 당시 에버랜드였고 삼성그룹 경영권의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배임행위와 탈세 여부가 쟁점인 사건인데요. 이 소송은 제가 혼자 진행했는데 승소했어요. 제겐 자랑스러운 소송 중 하나죠."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형사 판결에서는 배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나, 김영희 변호사가 수행한 민사판결(주주대표소송)에서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아 낸 것은 큰 성과였다. 김영희 변호사는 삼성 특검에도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으로 참여해 싸웠지만, 삼성은 거대하고 힘이 셌다. 

지는 재판도 세상을 바꾼다  
 
2016년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을 알리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2016년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을 알리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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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변호사는 2016~2021까지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에서 건설 허가에 위법성이 있지만 사업자의 손해가 크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지 않는 '사정판결'을 받아냈다. 내용은 승소지만 결과은 패소인 이상한 판결이었다. 사정판결은 말 그대로 처분이 위법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정'을 봐주어서 취소시키지 않는 판결이다.

"2016년 9월 12일 소송을 시작해 1심 판결까지 886일 동안 14회 재판을 했어요. 560명의 국민이 원고로 참여하는 국민소송이었어요. 한수원은 1심에서 1조 원 매몰 비용을 주장하더니 2심에서 5조 원으로 매몰 비용을 5배 올리더라고요. 한국전력 자료 기준으로 후쿠시마 사고 수습 비용이 2492조 원이에요. 매몰 비용 1조 원에 비하면 2천 배잖아요. 그런데도 1심 재판부는 사업자인 한수원의 손해가 크다고 사업자의 '사정'을 봐준 거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도 건설 주장 측이 '경제성'을 내세웠는데 재판부도 '안전'보다 아닌 '경제성'을 중요하게 판단한 거예요. 경제성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고대비 비용,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등 사후관리비용이 쏙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사업자가 내민 눈앞의 손해만 본 거죠."


소송단은 원안위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설 경상분지에 대한 지진 단층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원안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의결할 때 자격이 없는 원안위원 2명을 참여시킨 점 등 14가지 이유를 들어 건설 취소를 주장했으나 2021년 8월 대법원은 상고 자체를 기각하며 2심 사정판결을 유지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처분에 위법성이 존재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으니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요. 해바라기의 첫 번째 소송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사고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인데, 2015년 원안위가 이를 받아들여 중대사고 평가를 하게 되었죠.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사고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는 1심의 판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후 고리 2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 중대사고 평가를 일부라도 반영하게 되었어요.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결정 당시 자격 없는 원안위 위원 2명이 표결에 참여했던 점도 위법 사항으로 판결했어요. 재판 결과는 '패소'였지만, 시민들이 '핵발전건설과정'에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이 건설허가의 위법성을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한 단계 나아간 의미 있는 소송이었어요."


김영희 변호사에게 소송은 투쟁 수단이다. 승소하면 좋겠지만 재판 과정에서 여러 진실이 드러나니, 소송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제가 이겼으면 신고리 5·6호기는 지을 수 없었겠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지만 두드리다 보면 열릴 날이 옵니다. '지는 재판도 세상을 바꾼다'고 믿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게재 됩니다.


태그:#탈핵변호사, #해바라기, #탈핵소송, #김영히 변호사, #탈핵 잇_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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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연결된 삶을 그리며 오늘도 바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광에 22년 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빠른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생태와 자연, 젠더와 영성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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