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무엇  포스터

▲ 누구와 무엇 포스터 ⓒ 안정인

 
제목부터 알쏭달쏭하다. 누구와 무엇(The Who& The What). 이 연극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의문은 등장인물인 자리나와 마위시의 대화에서 풀렸다. 자리나는 동생 마위시에게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현실의 우리도 흔히 나누는 대화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친구 혹은 혈육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그 사람을 어때?' 상대방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사람은 친절해' '멋져' '좋은 직장을 가졌어' 이런 대답에 자리나가 묻는다.

그 사람은 '무엇이다(The What)' 말고 그 사람은 '누구(The Who)'냐고. 지금 네가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남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

외모, 학력, 재력, 말솜씨 기타 등등을 걷어낸 후 나타나는 본질. 우리는 상대방의 그것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 이전에 과연 우리는 상대방의 그런 모습을 알고는 있을까?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불이 켜지면 대화를 나누는 자매가 보인다. 언니 자리나와 동생 마위시다. 두 사람의 집은 현대적이고 넉넉해 보인다. 그들의 아버지 아프잘은 파키스탄 출신이지만 미국에 와서 택시 사업으로 성공했다. 아프잘에 대해 굳이 묘사하자면 몸은 미국에 와서 성공했지만 자라온 환경과 내면에 새긴 감정은 파키스탄인 그대로인 사람이다. 미국식으로 데이트 어플을 사용해 사윗감을 찾지만, 딸과 만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얼굴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 파키스탄식 믿음을 가진 남자다.

명문대를 졸업한 자리나가 미국의 현실과 자신의 가족 전통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슬람 신앙을 근간으로 하는 답답한 가족 전통을 떠올리며 그녀가 향한 질문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로 향한다.

근데 우리 듣는 이야기들은, 몇 백 년이나 넘게 전해진 그 이야기들은 진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질 않아요. 그냥 전부 그분이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기리려고 만든 기념비 같아요. 근데 정말로 누구였을까요?

모든 이슬람이 선지자이자 예언자로 생각하는 무함마드, 신앙의 표본이고 삶의 롤모델인 무함마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는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믿듯이 완벽한 사람인가?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자리나는 무함마드의 전기를 닥치는 대로 읽고 꾸란과 각종 경전을 독파한다. 그리고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파키스탄계 미국인 에이야드 악타(Ayad Akhtar)가 썼고 미국에서는 2014년에 초연됐다. 작년 국내 무대에 올려졌던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손>이 기억에 또렷하다. 이슬람에 뿌리를 둔 생각이나 대사들이 낯설면서 매력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극 중 자리나가 쓰는 소설에 관해 이해하자면 무함마드의 결혼에 대한 좀 더 알아야 한다.

전승되는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무함마드는 최소 13명에서 많게는 21명까지 아내를 두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죽을 때 남아 있던 아내의 숫자는 10명이었다. 이슬람교가 1부 4처까지만 허용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많은 숫자다.

무함마드의 첫 번째 아내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과부인 '카디자'다. 가난했던 무함마드는 자신의 고용주였던 카디자와 결혼하면서 먹고사니즘에서 해방되어 예언자의 길로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카디자 사망 후 맞이한 아내들 중 논란이 되는 결혼이 두 번 있었다.

먼저 무함마드가 죽을 때 곁을 지켰던 아이샤(Aisa). 무함마드와 아이샤의 결혼이 결정됐을 때 그녀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어려도 너무 어리다. 결혼식이 진행된 것은 무함마드가 53세, 아이샤가 9세였을 때다. 과거의 일을 현재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내게도 이건 좀 받아들이기 힘겹다.

두 번째 논란은 자리나가 쓰는 소설의 소재가 되는 자이납(Zaynab bint Jahsh)과의 결혼이다.

자이납과 무함마드는 외사촌 사이였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양자인 자이드와 자이납을 결혼시켰다. 2년쯤 지난 어느 날 무함마드는 자이드의 집에 갔다가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자이납과 마주친다. 흔들린 무함마드는 마음을 다잡는 기도를 중얼거리며 발길을 돌린다.

그날 밤 자이납은 남편 자이드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눈치 빠른 자이드는 무함마드에게 달려간다. 자신이 아내와 이혼할 테니 자이드를 아내로 삼으라고 권한다.

그럴 수 없다고 점잖게 말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자이드는 이혼을 하고 무함마드는 자이납과 결혼하라는 신의 계시를 듣는다. 무함마드 자신을 제외하고 신의 계시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56세의 무함마드는 전 며느리 자이납과 결혼한다.

이 결혼은 당시에도 문제가 됐다. 무함마드는 수군대는 사람들을 달랠 겸 성대한 결혼식 뒤풀이를 준비한다. 하객들이 먹고 마시고 떠드는 와중에 그의 마음이 급해 진다. 첫날밤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빨리 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 말없이 슬쩍 뒤풀이에서 빠져나온다. 눈치 없는 근위병 하나가 그를 따른다. 무함마드가 들어간 방의 커튼을 연 순간 민망한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이 병사가 젖힌 커튼, 보지 말아야 할 상황을 가려 놓은 그 천이 발전해 히잡이 된다. 히잡 안의 것을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남자에게 적용돼야 할 이 금기가 여자의 몸을 둘러싸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출연진 누구와 무엇

▲ 출연진 누구와 무엇 ⓒ 안정인

 
무함마드의 욕망은 금기가 된다. 그래서 딸 자리나가 무함마드와 자이납의 결혼에 관해 소설을 쓴다는 것을 안 아버지가 보인 첫 반응은 '분노'이고 그다음은 '공포'다. 그 일을 들춰내는 것만으로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은 채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백인이지만 이슬람교도이며 이맘인 남편 엘리도 이렇게 말한다.

니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 난 너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

자리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 볼 수 있어야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무함마드의 인간적인 흠결까지 알아야 그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고 이슬람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자이나는 말한다. 영적이고 완벽하고 위대하다고 알려진 그 '무엇(The What)'을 걷어내고 그가 '누구(The Who)'인지 알아야 한다고 자이나는 말한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연극은 잘 쓰인 시트콤처럼 가볍다. 전통 때문에 숨 막혀 하는 자이나와 달리 동생 마위시는 이슬람의 전통을 내면화했다.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 비 이슬람의 눈에도 변태적으로 보이는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 역시 솜털처럼 가볍게 언급된다. 극의 중간중간 관객석에서 웃음 소리가 들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졌다. 딱 극중 인물처럼 보이는 배우도 있고 아직은 어색한 배우도 있다. 하지만 생소한 문화를 체험하는 통로로서 이 연극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나약함과 결점을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안의 브런치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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