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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고양이를 키우고 놀란 건 그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랍스터 맛 츄르를 좋아한다. 다른 츄르를 주면 마지못해 할짝대지만, 랍스터맛 츄르는 서랍장에서 꺼내기만 해도 저 멀리서부터 뛰어온다. 동물에게도 취향이 있다니, '취존(취향존중)'은 인간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동물은 언제나 취향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취향에 따라 선택되고 버려졌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판단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만의 취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인간에게만 오래도록 허락된 특권일지 모른다.

편식하는 고양이가 사랑스럽다

취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내가 어떤 음악 장르를 좋아하는지 알려면 재즈부터 트로트, 힙합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러므로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만일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트로트만 들어야 한다면 정확히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처음 고양이가 왔을 때 그에겐 취향이 없었다. 그때는 무엇을 주든 다 잘 먹었다. 뭐든 잘 먹어서, 난 그에게 취향이 없다고 착각할 뻔했다.
 
간식 시식회를 진행하는 고양이
 간식 시식회를 진행하는 고양이
ⓒ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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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함께한 세월이 1년, 2년씩 쌓이자 고양이는 편식하기 시작했다. 비싸게 주고 산 사료는 맛없다고 입에도 안 대고 새로 산 장난감은 몇 번 갖고 놀더니 질렸다. 입맛이 까다로워져서 여러 종류의 츄르를 사서 시식회까지 열었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나, 혼자서 고민할 때 수의사 선생님께서 명답을 내리셨다.

"고양이가 마음이 편해졌나 봐요, 취향이 생긴 걸 보니까." 고양이는 삶이 편해지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오기 전, 머물렀던 시설은 너무나 열악했다. 제때 사료를 주는 곳도 아니었고 며칠씩 굶다가 한 번에 여러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삶이었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든 곳에서 취향은 사치였다.

그러니 고양이는 꼬박꼬박 밥을 주고 재밌게 놀아주는 안전한 공간을 만나고 나서야 취향이 생겼다. 여러 선택지를 주고 그중에 하나 고를 수 있는 삶은 고양이에게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게 해주었다. 그 자그만 머리로 어떤 츄르가 제일 맛있는지 생각하는 걸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눈물이 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취향이 되어서 죽거나, 취향이 되어야 살아남는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고기가 좋아, 돼지고기가 좋아?

우리는 늘 아무렇지 않게 동물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밥을 먹으러 갈 때 우리는 상대에게 소고기와 돼지고기 중 뭐를 더 좋아하는지 물어본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 순간, 동물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여겨진다. 한 생명을 빼앗아 도마 위에 올리는 행위가 단순히 좋고 싫음의 문제로만 생각된다.

동물이 음식 재료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고 하여도 우리는 '취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숙한 반려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특정한 품종을 키우는 게 유행이 되거나 너구리 카페, 고양이 카페 등 마치 동물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로 보는 시선도 유효하다. 2022년 유기 동물의 숫자는 약 11만, 동물이 가족이 되었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숫자다.
 
책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중 돼지 농장에서 구출된 '새벽이'
 책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중 돼지 농장에서 구출된 '새벽이'
ⓒ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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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취향에 의해 선택되고 버려지는 동물, 그들에게 취향이 있다는 건 가히 혁명적인 사고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취향이 있다는 건 그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임을 증명한다. 만일 돼지가 어떤 풀을 먹을지 고민하는 '생명'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우리가 예전처럼 돼지고기를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취향을 존중한다는 건   마치 안전한 공간에 오게 되자 편식하기 시작한 고양이처럼 동물에게도 취향을 찾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유기 동물 보호시설을 혐오시설로 분류하여 버려진 동물을 '혐오 대상'에 넣는 것, 펫샵에서 동물을 고르는 것, 육식이 보편적인 식사인 것처럼 동물을 마치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물건처럼 치부하는 문화부터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그들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는, 인간처럼 똑똑한 생명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돼지는 규칙적인 삶을 좋아한다. 소는 질겨서 큰 풀을 싫어하지만, 말은 좋아한다. 염소는 두리번거리며 밥 먹는 걸 좋아하지만, 양은 진득하게 서서 먹는 걸 좋아한다. 우리의 취향에 따라 식탁에 오를 때는 마치 상품 같지만, 그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음식이 있는 생명체다.

마치 사람이 부먹을 좋아하든, 찍먹을 좋아하든 인정해주는 것처럼 동물도 이 사료와 저 사료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고민할 수 있도록 안전한 집과 권리를 주어야 한다. 이젠 길고양이에게 아무 음식물 쓰레기나 던져주며 '배고픈데 뭘 가릴 처지냐'고 말하던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물에게도 취향 존중이 필요한 세상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한 글입니다.


태그:#반려문화, #반려동물, #유기동물, #유기동물보호센터, #동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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