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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둘째와 동화책을 두 권씩 읽는다. 1학년에 입학한 형아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단 둘이 집으로 산책하듯 걸어와 엄마 무릎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둘째는 너무 행복해 한다. 

작년엔 여덟 시 반 경에 두 아이 모두를 유치원 셔틀에 태워 보내며 떨구어 낼 수 있었는데, 올해는 그 셔틀 시간이 한 시간이나 뒤로 밀려 버렸다.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는 시간은 40분 정도.

나는 내 자유시간이 줄어들어 우울감에 빠지지만 엄마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겨주는 둘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힘을 낸다. 생각해 보면 둘째는 엄마를 독차지했던 적이 없다. 길어야 1, 2년, 하루에 40분 시간을 내어주어 아이의 설움이 없어진다면 그까짓 것,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작년에 구매한 디즈니 명작동화 복간판 전집이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그 책, 그 그림체 그대로 새로 나와서 나도 좋아하고, 큰 아이도 좋아하고, 둘째도 좋아한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긴 디즈니 월드, 그 세상으로 아이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그보다 아름답고, 재밌고, 신나는 세상이 있을까, 책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너무 내 모습 같다.
▲ 화내는 도널드 덕  너무 내 모습 같다.
ⓒ 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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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등장인물 중에서 나는 도널드 덕이 가장 좋다. 예전엔 예쁜 미니 공주님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드니 바뀌었다. 둘리가 불쌍하면 아이, 고길동이 불쌍하면 어른이라더니, 도널드 덕이 무서우면 아이, 도널드 덕이 부러우면 어른인가 보다. 

도널드 덕은 어느 이야기에서나 괴팍하고, 다혈질이다. 어린 조카들을 내 쫓기도 하고, 할머니 댁에 장기간 맡기기도 한다. 스크루지처럼 욕심을 부리기도, 얼떨결에 얻어걸려 해 낸 일로 잘난 척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 하기도 싫어하고 반찬 투정까지 한다. 무엇보다 성질을 하나도 참지 않고 그대로 폭발시키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디즈니 세상 속 사람들은 도널드가 아무리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도, 그런 도널드를 그냥 놔두기 때문이다. 도널드의 괴팍함에 불평하는 이도, 같이 한 판 붙는 이도 없다. 도널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디즈니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는 세상을 사는 나로서는 참 부럽다. 
 
친구들이 너무 기특했던 동화책
▲ 추위를 싫어한 펭귄  친구들이 너무 기특했던 동화책
ⓒ 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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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추위를 싫어한 펭귄>을 좋아한다. 눈 덮인 겨울왕국에서 살아야 하는 펭귄이 추위를 너무 심하게 타서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펭귄 파블로는 너무너무 추워서 친구들과 놀 수가 없다. 난롯불을 쬐며 뜨거운 물 주머니를 메고 따뜻한 나라로 떠나려다 지도를 보는 사이 눈이 녹아 그대로 눈 속에 갇혀 버린다. 그런 파블로를 친구들이 데려다 녹여준다.

파블로는 멈추지 않는다. 이글루가 지어진 땅을 그대로 도려내어 바다로 띄워 떠나버린다. 역시 친구들은 그 얼음 덩어리 배를 함께 밀어 바다로 보내주며 행운을 빌며 작별 인사를 한다. 파블로의 세상에 가혹한 환경은 있을지 언정, 놀림과 따돌림, 배척은 없다. 친구들은 파블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응원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조금 별나면 주목받고 따돌림당하기 쉽다던데 별나도 너무 별난 파블로도 친구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에 우리 펭귄 친구들이 참 기특했다. 아마 파블로가 따뜻한 나라로 떠나지 않았어도 친구들은 파블로를 위해 장작 패는 것을 도와주고, 이불을 갖다 주고, 날씨가 추운 날은 먹이도 잡아다 갖다 끓여 주었을 것 같다. 참 좋은 친구들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다. 나도 이틀 밤을 새워가며 몰아봤더니 며칠간 피로와 여운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라고 하니, 학폭과 복수는 국가를 넘어서는 인류 차원의 이슈인 것 같다.

학폭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드라마를 보지 못하겠다는 사람, 드라마 주인공들의 찰진 대사를 모아 모아 우울할 때 보겠다는 재미난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사람, 작가의 탄탄한 스토리 텔링과 필력에 감탄을 넘어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사람등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나는 아시아권이 아닌 서양에서도 인기가 많다 하길래 서양에는 인종차별이라는 요소까지 있으니 학폭을 당한 사람이 더 많아서 더 공감대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이거다.

남편 하도영 "문 선생이 뭘 그렇게 잘 못 했길래?"
아내 박연진 ""아니, 뭘 꼭 잘 못 해야 해? 그냥 사이가 안 좋았던 거야, 대화로 다 풀었다니까?"


잘못한 것도 없이 그냥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 거라고 가해자가  말하는 부분,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이라는 속성을 너무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에 이유가 없는 것. 피해자의 잘못이 없다는 것.

디즈니 동화와 <더 글로리>의 온도차가 어마어마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 심지어는 그냥 사이가 안 좋아서 몸과 영혼까지 부숴버리는 이야기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인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그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대답해 주려고 한다. 모난 돌은 그냥 모난 돌이라고, 모난 부분을 사용해서 뚝딱뚝딱 멋진 걸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모난 부분을 예쁘게 꾸며 더 멋진 돌이 될 수도 있다고. 꼭 모난 부분을 깎아내어 둥글게 만들 필요는 없는 거라고 말해 줄 것이다.

추위를 싫어한 펭귄을 있는 그대로 응원하던 친구들, 도널드 덕과 그냥 함께 살아가던 친구들을 기억해 보자고. 너희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가 되려면,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아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더 글로리 ,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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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 교육과 독서, 집밥, 육아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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