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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에서 바라본 섬진강 모습으로 순창 쪽으로 흐르는 물이 산자락을 굽이쳐 돌고 있다.
 구담마을에서 바라본 섬진강 모습으로 순창 쪽으로 흐르는 물이 산자락을 굽이쳐 돌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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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일요일마다 섬진강 종주를 선택한 필자는 지난 토요일(18일)에 이어 또 다시 섬진강 자전거길 출발지인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망월마을에 도착해 걷기를 시작했다. 11일(토)에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 데미샘을 방문한 다음 날인 12일에 비가 와서 임실문화원장(전) 이었던 최성미씨의 차를 타고 구담마을을 방문했지만 꼭 한번 이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전 9시 40분, 배낭에 물 2병과 귤과 빵을 준비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인근에는 경향 각지에서 온 자전거동호인들이 형형색색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출발 준비 중이다. 자전거길을 따라 강변으로 들어서자 '섬진강 종주 자건거길, 광양태인동 147㎞'라고 씌어진 이정표가 나타났다. 잘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는 하루면 종점까지 도달한다는데 나는 강변을 걷는다.
 
섬진강 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망월마을 모습
 섬진강 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망월마을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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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는 몇 시간, 자전거로는 하루나 이틀이면 종점에 닿을 수 있는 거리를 임실군문화관광해설사 강명자씨는 걸어서 12일만에 종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력과 시간이 부족한 나는 주말만 섬진강변을 따라 걷는다. 빠르면 좋은 게 있지만 느려서 좋은 것도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 속도보다 느리게 강변을 걸으면 온몸을 통해 느끼는 게 많다.
  
섬진강변을 돌아보는 동안 쑥캐는 아가씨는 모두 떠나고 나이든 할머니들만 남아있었다.
 섬진강변을 돌아보는 동안 쑥캐는 아가씨는 모두 떠나고 나이든 할머니들만 남아있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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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가 쉬익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나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나를 반긴다. 아직 초봄이어서인지 계곡을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크다. 티끌 하나 없는 섬진강 맑은 공기가 폐부를 찌른다. 문득 어릴적 곡성 섬진강변에서 친구들과 하루 종일 뛰놀며 등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놀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굽이굽이 도는 강물에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알차고 충실한 열매를 맺는 곳'이라고 하여 백제시대부터 이름이 유래됐다는 '임실'은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의 물을 둥글게 말아 산을 휘돌아 흐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덕치는 500리 섬진강 상류가 지나가는 지점으로 북쪽은 백련산과 필봉산, 서쪽은 회문산의 깃대봉, 동쪽은 약담봉과 원통산, 남쪽은 성미산과 용궐산 등이 첩첩이 둘러친 산 사이로 섬진강이 휘돌아가는 형상이다.

덕치면은 통일신라 시절 경주와 당나라 주요 무역항이 줄포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회문산을 거쳐야 했다. 높고 큰 회문산 재를 넘는 길목이라는 의미로 '고덕치(高徳峙)'라 했으나 조선시대 회문리 입향조인 조평 선생이 '덕치'라 개명했다.

섬진강 상류 중에서 진뫼, 천담, 구담마을 일대가 섬진강 상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 받아 이 길을 '시인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 진뫼 마을에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씨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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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상류에서는 종종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난다. 옛 시골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장면이다.
 섬진강 상류에서는 종종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난다. 옛 시골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장면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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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의 고향인 진뫼마을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징검다리가 있고 마을의 수호신이 된 느티나무가 정겹다. 진뫼에서 천담까지 10리 길은 섬진강 500리 길에서 유일하게 고향의 정취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길이다.

청정지역인 덕치면에서는 큰 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나물이 많다. 섬진강 깨끗한 물에서 나오는 다슬기와 물고기는 덕치면민들의 소득원이며 양계와 양돈, 한우농가 등 축산농가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섬진강에는 큰줄납자루, 쉬리, 모래무지, 동사리, 꺽지, 눈동자개, 다슬기 등 다양한 수산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에 속한 감돌고기, 흰수마자, 얼룩새꼬미꾸리는 문화재보호법 및 야생동식물보호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섬진강 물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근심했다는 물우리

강건너 마을로 건너가는 다리 이름에 '물우교'가 있다. 이 마을 앞이 큰 강이라 강폭이 넓고 깊어서 비가 많이 오면 옛날 사람들은 쉽게 강을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 강건너 사는 주민들은 강물이 줄어들기 전에는 대처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여름에 긴 장마가 오면 물 때문에 근심이 가득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물우리'라고 지었다. 마을 이름에 근심 '우(憂)'자가 들어간 곳은 이 마을뿐이라고 한다. 다행이 지금은 다리가 놓여 물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섬진강 '시인의 길'에는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도 있다. 출발지점에서 나보다 한 마장쯤 앞서가던 사람들이 물우교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수인사를 하며 "동행하자"고 했더니 "귤좀 드시라"고 권한다. 전주에서 왔다는 이들에게 섬진강변을 걷는 이유를 묻자 형은수씨가 대답을 했다.
  
'생명평화마중물' 모임에서 청소년치유걷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섬진강을 선택한 이들이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있다.
 '생명평화마중물' 모임에서 청소년치유걷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섬진강을 선택한 이들이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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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마중물' 모임에서 청소년치유걷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섬진강을 선택해 걷고 있어요. 오른발 왼발로 걷는 것 자체가 우뇌와 좌뇌를 자극해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요."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것 같은 구담마을 

구담마을 정자에 올라 산과 강이 빚어놓은 섬진강을 바라보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구담마을은 원래 안담울이라 하였으나 마을 앞에 흐르는 섬진강물에 자라가 많이 서식한다고 하여 구담(亀潭)이라 했다. 또한 섬진강 줄기에 아홉 군데의 소(沼)가 있어 구담(九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담마을에는 지금도 하천변에 1970~80년대까지 한지의 원료인 닥을 굽는 솥이 있다.

마을 옆 정자가 있는 당산에 오르면 아름드리 나무와 함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주무대였다는 안내문이 있다. 좌우익의 대립으로 말미암은 죽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점철된 6.25를 전후한 시절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구담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과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는 회문산을 잇는 주요 교통로에 인접해있다.
 
"전쟁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피난와보니 하늘만 뻔했다"고 말한 김연임 할머니가 사는 구담마을 모습. 지금은 포장도로까지 개설되어 관광버스까지 들어온다.
 "전쟁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피난와보니 하늘만 뻔했다"고 말한 김연임 할머니가 사는 구담마을 모습. 지금은 포장도로까지 개설되어 관광버스까지 들어온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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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되어 식사할 요량으로 마을회관을 찾아갔더니 할머니 두 분만 계신다. "식사할 곳이 없냐?"는 물음에 할머니 한 분이 "관광객들이 오면 전에는 밥도 해주고 떡과 전도 해줬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못해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망월마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는 데 밥먹을 곳이 없다고 하자 "아이고 시장해서 어쩌나!"하며 안타까워 하는 소리를 듣고 방바닥에 앉아 두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촬영을 사양한 김연임(88세) 할머니가 구담마을에서 70년 동안 살며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창 구림면에서 살던 그녀는 18살 무렵에 전쟁이 나자 부모를 따라 첩천산중인 이곳으로 피난와 남편을 만났다.

"시집왔더니 하늘만 뻔하고 아무것도 없어. 지금이야 길이 났지만 순창장에 가려면 새벽에 이고 지고 큰 재를 두 개나 넘어서 장보고 돌아오면 캄캄한 밤이 됐어요. 전에는 한지를 많이 했는데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닥나무도 다 없어졌어요.

전쟁 때는 빨치산이 드글드글 했어요. 빨치산이 야단 때리고, 비행기가 야단 때리고 토벌대가 야단 때리고. 사람도 많이 죽었지요. 아주 징글징글했어요. 또다시 그런 난리가 나면 못살지라우"

 
구담마을 정자 옆에는 '아름다운 시절' 영화를 촬영했다는 안내문이 서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비행기 폭격, 토벌대들의 이념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아픈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구담마을 정자 옆에는 '아름다운 시절' 영화를 촬영했다는 안내문이 서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비행기 폭격, 토벌대들의 이념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아픈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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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마을에 매화꽃이 피면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담마을에 매화꽃이 피면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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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가 넘었는데 밥도 못먹고 어쩌까이!"라고 안타까워 하는 두 할머니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가니 놀란 오리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오른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고 세 번째 징검다리까지 갔지만 자신이 없어 되돌아왔다.

징검다리에 잔뜩 끼어있는 물이끼를 보았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옷은 물론 카메라가 망가진다. 어릴적 섬진강가에서 놀 때면 이 정도 징검다리는 폴짝폴짝 뛰어 건넜지만 세월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섬진강 물에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니 뼛속까지 청량감이 저며온다. 이 강이 영원토록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빌었다.

그때다. 좋아하는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님! 뭐하세요?" 섬진강변을 걷고 있다고 하자 놀란 목소리로 "그곳을 혼자 걷는다고요?"라는 질문이 왔다. 전화를 받고 문득 범능스님의 노래가 생각났다.

"가라 좋은 벗 있으면 둘이서 함께 가라. 가라 좋은 벗 없으면 버리고 홀로 가라. 달빛엔 달처럼 별빛엔 별처럼 바람불면 바람처럼 가라. 내가 나에게 등불이 되어 그대 홀로 등불이 되어 함께 못 가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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