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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로비에서 볼 수 있는 '찰리'(원격조정 인간로봇) 세발자전거, 철, 고무천, 레진, 실리콘, 리모콘, 작가 머리카락, 모터 2003. 우스꽝스럽게 귀여운 '찰리'는 전시장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즐겁게도, 산만하게도 한다.
 리움 미술관 로비에서 볼 수 있는 '찰리'(원격조정 인간로봇) 세발자전거, 철, 고무천, 레진, 실리콘, 리모콘, 작가 머리카락, 모터 2003. 우스꽝스럽게 귀여운 '찰리'는 전시장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즐겁게도, 산만하게도 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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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은 2023년 첫 전시로,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년생) 개인전 '우리(WE)'를 7월 16일까지 연다. 한국에서 첫 전시다. 미술관 로비와 M2 전시장에서 조각, 설치, 벽화, 사진 등 총 38점이다. 리움미술관의 야심작이라고 할까? 관객 반응이 매우 뜨겁다. 입장은 무료이고 사전 예약이 필수적이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회고전 '모든 것(ALL)' 이후, 그의 대규모 전시다. 그의 초기작에서 최근 화제작까지 미술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등으로 총망라됐다.

그는 이번 전시 관객에게 미술 감상의 비법으로 "절대 아티스트 말 듣지 마라! 각자 해석하라!"라고 권한다. 또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젊은 미술학도에게는 "예술의 길은 외로우며 반드시 교육을 통과해야 하는 건 아니다. […] 우선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걸 목표로 삼지 말고 예술을 성찰의 도구로 사용할 때 성공할 수 있다"라고 충고한다.

권위에 맞서는 게 예술 속성
 
카텔란 I '코미디언' 생바나나, 덕 테이프, 가변크기 2019
 카텔란 I '코미디언' 생바나나, 덕 테이프, 가변크기 201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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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유명작가가 되었나? 최근 그가 우리에게 알려진 건 2019년 아트바젤(마이애미)에서다.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인 작품이 1억4천만 원에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작품명도 '코미디언'이라 붙였다.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이에 대해 "미술시장과 아트페어의 민낯을 풍자한 것으로 미술에서 돈이 다가 아님을 은근슬쩍 비꼬았다"라고 평했다.

이에 앞서, 그를 유럽에서 유명하게 한 건 1999년 쿤스트할레(바젤)에서 열린 작품 '아홉 번째 시간' 때문이다. 붉은 카펫 바닥에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고 쓰러진 조각이다. 당시 이 전시로 미술관 디렉터 등이 해임되는 소동이 있었다. 그는 성상 같은 터부를 깨며 사회 전반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작품으로 논쟁의 불씨를 붙였다.
 
카텔란 I '아홉 번째 시간'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1999
 카텔란 I '아홉 번째 시간'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199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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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지도자인 바티칸 교황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것 같은 설정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있었다. 그가 '카라바조'다. 그는 예수를 세속인으로 바꿔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크 미술도 열었다. 작가도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 이를 언급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성에 대해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언제나 권위와 맞서는 과정에 있으며, 아픈 곳을 긁어주는 손톱 같다."

부조리극 같은 작품
 
카텔란 I '무제'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 가변크기 2001
 카텔란 I '무제'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 가변크기 200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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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 그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비전공자다. 트럭 기사였던 아버지와 청소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안실 직원부터 정원사,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군 전전했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다 미술계에 몸담았다. 그러나 그는 거침이 없었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미술 스타로 등극하는 모종의 반란을 꿈꾸었다.

그는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도둑처럼 몰래 들어와 타성에 빠진 현대미술에 구멍을 내겠다고 침입한 자 같다. 그런 자화상을 '무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가 출구 막힌 현대미술의 숨통을 뚫겠다는 것인가. 60년대 '문화 칭기즈칸'이 되려고 서양 미술판에 처들어가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백남준의 방식이랄까.

그는 운 좋게 동시대 미술계 떠오르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그의 강한 에고 때문이다.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고 불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예술 감각으로 닥칠 문명 위기에 대한 경고를 주려 한 것 같다.

엉뚱하게 가져다 쓰기
 
카텔란 I '우리1' 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천, 옷, 신발, 78.5×151×80cm 2010
 카텔란 I '우리1' 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천, 옷, 신발, 78.5×151×80cm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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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 주제인 '우리(We)'가 붙은 작품을 보자. 그는 서양미술사 대가를 오마주한 작품이 많은데 위 작품도 그렇다. 동성애 퍼포먼스로 알려진 영국 듀엣 예술가 길버트 앤 조지의 작품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이렇듯 당대 논쟁거리를 작품에 끌어들인다(아래 슬라이드 참고).

이 작품을 보고 있는데 천장에서 예사롭지 않은 '북 치는 소리'(아래1)가 들린다.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음 같다. 우리는 지금 정말 철학자 한병철 말처럼 자신을 착취하며 '피곤사회'를 살아가는 건가 싶다. 또 G. 그라스의 유명 소설 <양철북>도 떠올랐다.

이번엔 힘겹게 일하는 사람의 '발'(아래2) 사진을 보자. 제목이 '아버지' 트럭 기사로 고단하게 살았던 아버지의 발이다. 그에게 이런 가난은 오히려 예술의 소재가 될 뿐이다. 현대미술은 뭘 그리는 게 아니라 일상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번엔 어처구니없게도 '냉장고에 갇혀 사는 여자'(아래3)가 등장한다. 청소부였던 작가의 어머니를 패러디 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일에 갇혀 사는 게 더 편했나. 관객들 이를 보고 당황하다가 "그런데 저게 바로 우리 아닌가?"라는 질문도 자신들에게 던지게 된다.

한국을 쟁점으로 한 전시 같아

이번에 작가가 그럴 리는 없지만, 한국 사회를 쟁점으로 한 전시 같다. 우선 우리의 '입시 지옥'(아래4)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보이고, 요즘 쟁점인 '주 69시간노동'(아래5)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도 보인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와 로비에 설치된 '노숙자'(아래6)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밀랍인형인데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 제목도 '동훈과 준호'이라는 한국 이름을 붙였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의 작품을 보니 정말 그렇다. 또 그는 기존개념을 뒤엎으며 반예술(Anti-Art)을 한 마르셀 뒤샹도 많이 닮았다.

영미문화 비틀기
 
카텔란 I '밤' 검은 보드 2021
 카텔란 I '밤' 검은 보드 202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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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밤'은 미국의 골칫거리이고 인권침해인 '총기사고'가 주제다. 작년 <뉴욕 타임스>가 미국 10대 사망률 중 총기사고가 가장 높다고 보도했다. 성조기를 바탕으로 해 100여 곳, 총 자국이 나 있다. 그가 직접 총으로 쏜 것이다. 그는 이런 껄끄러운 주제도 속 시원하게 처리한다.

이뿐 아니라 흰 천이 덮인 '코끼리상'(아래7)은, 이건 누가 봐도 미국 극우단체 'KKK' 풍자한 것이다. 또 물구나무선 2명 '미국 경관'(아래8)은 어떤가? 경찰국가의 한 면모다.

이번엔 영국이다. 1874년 이후, 영국이 다른 나라와 축구에서 진 기록(아래9)만을 참전비 같은 벽보에 빼곡히 적어놓았다. 결국, 이탈리아가 영국과 축구에서 승리한 스코어만 적어놓은 셈이다. 그가 이탈리아 작가 아니랄까 웃음보가 터진다.

그의 모국 이탈리아와 영국의 비교라면, 축구보다 문화가 더 좋을 텐데. 예컨대 작곡가를 보면 영국은 베토벤급 작곡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헨델'도 독일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비발디' 등 세계적 작곡가가 수두룩하다.

아래 작품 '무제(아래10)'는 칼로 캔버스를 찢는 회화로 유명한 '루초 폰타나'에게 헌정한 것이다. 그런데 부제가 '조로'다. 좀 풀어 설명하면 "난 미술의 이단아로 '조로'처럼 '다빈치, 피카소' 등 거장도 칼로 다 치겠다. 그래서 세계 미술을 평정하겠다"는 뭐 그런 블랙 유머다. 그런데 과연 이런 호언장담이 통할까? 어쨌든 그의 패기는 대단하다.

이미지 지배로부터 자유
 
작가 사진. 아버지 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리움미술관 제공, Photo by studioj_kim_je_won,
 작가 사진. 아버지 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리움미술관 제공, Photo by studioj_kim_je_won,
ⓒ kim_je_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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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전반을 보면서 하버드대 교수인 D. 조슬릿(Joselit)의 말이 떠오른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거대 자본도 아니고, 절대 권력도 아니고, 정보와 지식도 아니고, 군사력도 아니고 바로 '이미지 메이킹'이다. 우리가 여기서 자유로울 때 무지에서 벗어난다."

2차대전 히틀러 통치 때 괴벨스는 언론장악으로 독일 사회를 지배했듯 지금 미국 같은 강대국은 이미지로 세계를 지배한다. 이런 시대, 카텔란은 이보다 더 강하고 센 시각 이미지로 우리를 각성시키려는 것 같다. "내 작업은 단지 이미지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것. 말로 떠드는 대신, 힘이 센 이미지로 생각을 전파하고 싶다"라고 그는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리움 미술관 전시 관련 행사 안내> 예매 https://ticket.leeum.org/leeum/personal/exhibitList.do
[작가연구 강연 시리즈] 카텔란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프로그램 1) 4월 26일(수) 오후 4시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2) 5월 19일(금) 오후 4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리딩룸 세미나] 예술 출판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며 아티스트 출판에 관한 이야기 진행 1) 4월 29일(토) 오후 4시(권혁규, 허호정 큐레이터 <뉴스페이퍼> 공동기획 2) 5월 20일(토) 오후 4시(김도희 <ㄷ떨> 편집장),
[다수의 프로그램] 전시와 연계하여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시간 마련된다. 전시 동안 카텔란의 작업 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아티스트 토크와 전시 기획 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의 큐레이터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문의] 02-2014-6901


태그:#리움미술관, #카텔란, #조슬릿, #폰타나,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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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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