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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요즘은 좀 어떠세요?"

동글납작한 얼굴에 키 작은 의사는 컴퓨터 화면 속의 진료차트를 들여다보며 묻는다. 그가 청진기를 갖다 대고 내 귀와 목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곤 내게 목을 이쪽저쪽으로 돌려보라 한 후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는 이내 익숙하게 처방전을 작성하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약 다 드시고 3일 뒤에 다시 오세요."라고 그가 말한다.

'어머, 아드님이 의사신가 봐요.'라고 부러워할 필요 없다. 그는 그저 내가 자주 찾는 이비인후과의 의사일 뿐이다. 아들뻘은커녕 나와 나이 차도 그다지 나 보이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그의 표정에 걸맞게 어머니란 말에는 살가움도 영혼도 없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란 말에 '제가 왜 당신 어머니에요?'란 말을 눌러 삼키느라 목구멍이 더 따끔거린다.

나는 어머니, 남편은 선생님
 
그저 내가 자주 찾는 이비인후과의 의사일 뿐인데 나를 왜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까. 차트에 이름도 나오는데.
 그저 내가 자주 찾는 이비인후과의 의사일 뿐인데 나를 왜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까. 차트에 이름도 나오는데.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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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계산해드릴게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수목장터'라는 이름으로 고기와 채소를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 집에서 멀긴 하지만 가성비가 좋아 가끔 들르는 곳이다. 그곳의 계산대에서 일하는 분이 내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녀는 덩치 크고 짧은 파마머리에 얼굴빛이 약간 붉다. 다른 계산대의 분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그녀만은 어느 정도 나이 든 여성 고객에게 어머니라 부른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늙어가는가.'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내 차림새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더 젊은 여성들에게도 어머니라 부르고 있다. 앞서 계산을 끝낸 젊은 애기 엄마의 낯빛이 곱지 않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는 것으로 보아 나처럼 심약한 모양이다. 주민등록증은 못봤지만 계산대의 그녀는 분명히 나보다도 나이 들어 보인다.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한이 맺힌 것도 아닐 텐데 왜 아무나에게 무턱대고 어머니라고 부를까. '한 번만 더 그러면 다시는 안 온다'고 속으로만 구시렁대는 소심한 복수와 함께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린다.

"아주머니는 알아서 관리 잘하실 거고, 선생님은 선크림 꼬박꼬박 바르고 반창고도 잘 붙여 주세요." 피부과 의사는 나와 남편이 부부임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진료 카드에 이름 대신 아주머니, 선생님이라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내가 아주머니면 남편에게는 아저씨라 해야지. 이건 무슨 경우에 없는 차별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혀 있는 아주머니는 이렇다.

1.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2. 남자가 같은 항렬의 형뻘이 되는 남자의 아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남남끼리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난 분명 3번의 경우에 해당하는 아주머니가 맞긴 한데 기분은 떨떠름하다. 남편은 그 병원을 방문할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아주머니는 차에 있을 테니 선생님은 다녀오슈'라며 나는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소심한 복수는 다른 사람에게 이 병원을 절대 소개하지 않는 걸로 퉁친다. 호칭 하나에 왠지 의사 선생의 실력마저 미덥지 않게 여겨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내가 호칭에 관해 예민하게 여기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그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거나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만 민감한 반응의 소유자는 아닌 걸로.

언제부턴가 연세 드신 어른들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장소 불문하고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 같다. 굳이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병원에는 진료카드에 이름을 적게 되어 있다. 그러니 'OO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름 뒤에 '님'을 붙이니 기분 나쁠 까닭도 없다. 마트나 가게에선 손님이나 고객님이면 충분하다. 물론 어머니나 아버지가 친근하게 여겨져 좋다는 분들도 있고 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비혼이거나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했거나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도 있다. 아이가 성인인 나도 어머니란 말에 거부감이 든다. 나를 어머니라고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내 자식밖에 없다. 그 외에는 'OO이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

친근함 강조하는 호칭은 오히려 불편

"언니, 이 옷 한번 입어 봐. 어머 딱이다." 옷집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주인은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그런데 언니라고 해 놓고 반말이다. 처음보는 사이에 언니도, 반말도 당황스럽긴 매일반이다. 친절은 무턱대고 사용하는 호칭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친근감을 강조하는 호칭보다는 말하는 이의 태도와 표정에서 묻어난다.

"이모, 여기 막걸리 1병에 파전 하나요."
"삼촌 여기 삼겹살 3인분 추가요."


식당이나 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손님들이 홀 서빙하는 분들에게 주로 쓰는 호칭이다. 내가 어머니나 아주머니란 소리가 듣기 싫은 것처럼 그분들도 이모, 삼촌, 총각, 아가씨가 듣기 거북할 수 있다.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 이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도구가 호출벨이다.

식당 테이블에 호출벨을 붙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호출벨이 없는 곳은 '여기요'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여기요'는 사전에 주문 따위를 하기 위해 종업원을 부를 때 쓰는 말이라 되어 있다. 또는 '사장님'은 어떤가. 사장님을 부르면 사장이던 일하는 분이든 누군가는 듣고 온다. 사장이라 불렀다고 해서 사장도 일하시는 분도 모두 언짢아할 것 같진 않다.

호칭은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적절한 호칭은 편안함을 주지만 무턱대고 친근함을 강조하는 호칭은 도리어 불편함을 느낀다. 시장, 마트, 병원, 가게 어디나 할 것 없이 가족이나 친족관계 호칭이 넘쳐난다. 친숙함을 가장한 호칭을 남발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영혼도 없이 부르는 호칭 같이 느껴져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호칭은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편해야 한다. 부르는 사람만 좋고 듣는 사람은 불편함을 느낀다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나치게 친밀함을 내세운 호칭이 못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우리말에 그것을 아우를 만한 호칭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다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타인을 부르는 호칭. 단순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호칭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brunch.co.kr/@dhs9802에도 실립니다.


태그:#호칭, #어머니, #혈연 관계 호칭, #사회적 관계,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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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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