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일본 개봉명: ハンサン: 龍の出現)이 개봉했다(​3월 17일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일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일본판 포스터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일본판 포스터 ⓒ filmarks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기에 일본인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는 영화다. 그렇기에 <한산>의 일본 개봉 소식은 더 이채롭다.

작년 12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영웅>이 개봉했을 때도 일본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안중근의 영화가 히트, 대일관계의 회복을 서두르는 윤석열 정권의 새로운 장벽으로(韓国で安重根の映画がヒット、対日関係の回復を急ぐ尹錫悦政権の新たな障壁に / 뉴스 포스트세븐 2023년 1월 27일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일본 뿐만 아니라 대일관계 회복에 서두르는 윤석열 정권에게도 새로운 장벽일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한 바 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였음에도 한일관계 운운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개봉 직후 현지 반응은 어떨까. 단순 평점으로는 현재 <야후재팬>에서 5점 만점에 3.6점, 일본의 영화 리뷰사이트인 Filmarks에서 5점 만점에 3.7점을 기록했다. (18일 오후 4시 기준)

[혹평] "영화에서 묘사된 역사는 허구"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먼저 스토리 전개나 CG 등 영화로서의 감상 요소보다는 배경이 되는 실제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다. 아래는 <야후재팬>의 리뷰 기사에 달린 일본 누리꾼들의 댓글들이다.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는 지금까지도 있었다, 다만 거기에 그려져 있는 한국사는 픽션이다. 당시 감독도 영화 내용은 허구라고 말했다. 문제는 픽션이라는 점을 한국에서는 무시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것이 한국의 역사라고 오인하고 있다. '군함도'라는 영화가 개봉한 뒤 한국 내 군함도의 인식은 강제로 노예와 같은 노동을 강요받는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한국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다. 부탁이니까 과거의 역사를 '만들지'는 말아줘."

"화의를 깨고 철수 중인 일본군에 공격을 가해서 기습을 가했음에도 고니시 유키나가군을 놓치고 있다. 그것을 어떤 판타지로 만든 것일까?"

"미안하지만 그렇게까지 영웅은 아니야. 게다가 전사했고. 고대 중국과 비교해 영웅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이해한다만."


이외에도 "와키자카가 보면 깜짝 놀랄 것", "거북선이 실재했는지 의문", "거북선은 금세 뒤집혔을 것"이라는 등등 과거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호평] "반일영화는 아니다"

반면 일본의 영화 리뷰사이트인 Filmarks에 달린 영화평들은 대개 호평 일색이었다.

​"해전이 메인인 박력 있는 영화"

"볼거리는 마지막의 해상결전이다. 전황의 흐름을 바꾼 두 장군(이순신과 와키자카를 의미-인용자 주)의 전술 충돌과 전설의 전함 거북선의 모습에 피가 끓어오른다."

"박해일의 활 쏘는 모습이 멋있어서 <신궁>(神弓: 영화 <최종병기 활>의 일본 개봉명-인용자 주)이 생각났는데 <신궁> 감독(김한민-인용자 주)의 신작이었다."

"황홀했다. 마치 '슬램덩크'를 보고 난 뒤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공방에 탄식이 나왔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개 영화의 스토리 구성이나 마지막 한산도 앞 바다에서의 해상전투 신에 대한 극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다소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누리꾼도 있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렇게 악인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의 명장인 이순신의 입장에서 그리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복잡한 마음."

그러나 "실제 있었던 사실을 드라마틱한 액션 대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반일(反日)은 아니다"라고 역사를 순순히 인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선 수군처럼 당당하지 못했던 윤석열 정부

<한산>이 개봉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1박 2일의 방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전날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뒤 "(이번 회담은)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회담 결과는 누가 봐도 굴욕적이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는 없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피고 전범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도 상정하지 않는다고 저자세로 일관했다.

영화를 오늘의 정치적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일본의 침략사를 부정하는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과 여전히 반성 없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묘하게 겹쳐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영화는 조선 함대의 호쾌한 '포격전'으로 카타르시스라도 안겨줬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에게 '고구마'만 잔뜩 안겨주고 돌아왔다. 영화 속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처럼 당당하게 '외교전'에 임하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너무나도 아쉽다.
한산 이순신 김한민 박해일 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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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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