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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이 마을 경로당을 방문해 건강 교육 중간에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이 마을 경로당을 방문해 건강 교육 중간에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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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마을 경로당에 모여 앉은 주민들이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손뼉을 치며 가수 이미자의 국민가요 <동백아가씨>를 합창한다. 연주자는 흰 가운을 입은 50대 의료원장, 합창하는 이는 70, 80대 어르신들이다.

최근 전북 순창군에서는 조석범(58)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이 마을 경로당마다 찾아가서 어르신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며 실시하는 건강 교육이 화제다.

순창군은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6% 가량으로, 우리나라 평균인 17.7%(2022년 8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통계)에 비해 2배 가량 많은 초고령사회다. 58세 의료원장은 청년이나 다름없다. 청년 원장은 왜 연주를 하며 마을을 방문하고 있을까.

경로당 찾아가 악기 연주하며 교육하는 의료원장
   
지난 2월 27일 오후 3시, 순창군 복흥면 동산마을 할머니경로당에서는 주민 20여 명이 건강 교육을 받고 있었다. 조석범 원장은 고령의 주민들이 자칫 어렵게 느낄 수도 있는 건강 교육을 주민들 눈높이에 맞춰 중간중간 플루트와 오카리나 연주를 곁들여 즐겁게 진행했다.

조 원장은 "건강 100세 시대 '3쾌의 법칙'으로 쾌면(잘 잘기), 쾌식(잘 먹기), 쾌변(볼일 잘 보기)이 있다"며 친근하게 설명했다.

"음식을 혼자 드시지 마시고, 마을의 동생과 언니를 초대해서 함께 드세요. 즐겁게 드셔야 소화가 잘 되고 대변을 잘 보실 수 있어요. 쾌변은 5분 이내에 시원하게 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운동을 좀 하셔야 해요. 그래야 밤에 잠도 잘 주무실 수 있어요. 아시겠죠?(주민들 : 네~!)."
 

조 원장은 이어 앞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우리 뇌혈관 건강 지키기 3가지를 아셔야 한다고 그랬죠. 첫 번째 혈압은요?(주민들 : 140에 90) 네, 항상 유지하셔야 해요. 공복 혈당은요?(주민들 : 120), 콜레스테롤은요?(주민들 : 200) 맞아요. 어머님들, 이 3가지를 꼭 알고 지키셔야 건강 수명을 지금 76세에서 80세 이상으로 늘릴 수 있어요."
 
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건강 교육을 하고 있는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
 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건강 교육을 하고 있는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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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교육받고 노래 부르면 좋겠어"

이날 모인 마을 주민 중에서 막내라는 1949년생 김희자씨는 "오늘 너무 좋았다"면서 만족감을 전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우리 소장님(구민정 동산보건진료소장)이 힘써주시니까 고맙고. 젊고 잘생긴 원장님이 연주도 해주시고, 박수 치고 노래도 부르니까 진짜 즐거워요. 원장님이 인기 스타가 될 것 같은데, 순창에서 유명해지시면 우리도 좋죠. 하하하."

맏언니 박영애씨는 "매일매일 이렇게 교육 받고 노래 부르면 좋겠다"면서 조 원장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을 넣어 주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내가 (1935년)돼지 띠인데, 37년 섣달 그믐날 태어나서 두 살인가 적게 돼 있어. 여든 아홉이여 시방. 즐겁게 교육 받고 노래 부르는 거 자주 했으면 좋겠어. 원장님, 자주 오실 거죠?(조석범 원장 : 네, 어머님들께서 자리만 마련해 주시면 자주 오겠습니다) (주민들 : 좋구만, 하하하.)"

조 원장과 대담을 위해 찾아간 이 날, 마을 주민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인터뷰는 다음으로 미뤘다.

순창에서 공중보건의 36개월 복무 인연

지난 3월 8일 오후 4시 무렵 보건의료원 원장실에서 마주 앉은 조 원장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6개월 동안 순창군보건의료원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며 순창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면서 "당시 의료원 직원들과 주민들이 잘 대해주셔서 순창은 정말 따뜻한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어 "첫째를 낳고 순창에 와서 공중보건의 근무를 시작해 둘째를 출산했고, 셋째 임신 중에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경기도에서 소아과를 개원했다"며 "지난해 보건의료원장 공모를 알게 됐는데, 원장 임기가 보통 5년이기 때문에 그때 응모하지 않으면 60세가 넘어야 기회가 올 수 있어 순창에 정착하려고 계획했던 것보다 몇 년 앞당겨 순창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순창군청의 공개모집으로 지난해 10월 13일 취임한 조 원장은 보건의료원의 특성상 공중보건의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순창군 공중보건의 선배로서 후배 공중보건의와의 소통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전했다.

보건의료원은 정부가 보건소에 공중보건의사를 지원해 주면서 병원 기능을 집어넣은 것으로 현재 순창군을 포함해 지자체 15곳에 남아 있다. 공중보건의가 군대 대신에 보건의료원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공중보건의 급여는 국방부에서 담당한다. 지자체는 시간 외 수당 같은 재정만 지출한다.

군대에서 많이 필요한 인력은 내과는 물론 외과, 정형외과 같은 부상치료를 담당하는 군의관이다. 공중보건의는 군의관 대상자 중 여러 가지 이유로 군 생활을 수행할 수 없다거나 남은 인력이 대상이다. 병무청에서 공중보건의 명단을 보건복지부로 이첩해 주면 각 지역마다 공중보건의가 몇 명 필요한지 파악한 후 각 시나 군에 배치한다. 공중보건의는 무의촌이나 보건소, 공공의료원에 차출하는 게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올해 3월 8일 기준으로 순창군보건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는 스물여섯 명이다. 순창읍에 위치한 보건의료원과 면단위 보건지소 10곳의 인력을 더한 숫자다. 보건의료원장을 맡은 지 5개월 여가 지난 시점, 조 원장에게 순창군보건의료원 현황을 물었다.

"얼마 있으면 공중보건의 7명이 나가요(제대해요). 4월 17일부터 새로운 공중보건의가 근무를 시작하는데, 아직까지 몇 명이 배정될지 몰라요. 우리가 원한다고 모두 보내주는 게 아니고, 보내주는 대로 받아야 해요. 시골에서는 꼭 필요한 정형외과 공중보건의는 꿈도 못 꿔요. 7명만 그대로 들어오면 좋을 텐데… 공중보건의 인력이 점점 줄어서 걱정이에요."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은 시골 농촌에서의 보건의료원 기능과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은 시골 농촌에서의 보건의료원 기능과 공중보건의사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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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 믿음 드릴 수 있게 노력"

원장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선진지 견학으로 청양군보건의료원을 다녀왔는데 하루에 외래 환자가 600명가량 돼요. 인구가 3만 3000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예요. 청양군수가 정형외과와 정신의학과 페이닥터(월급제 의사)를 도입한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고령의 부상 환자와 치매 환자도 많지만 요즘은 자살 위험도 높잖아요. 또 5대 암(위암·간암·대장암·유방암·자궁경부암) 건강검진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게 체계를 잘 만들어 놨어요. 순창군보건의료원에서도 5대 암 정기검진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고 해요."

조 원장은 경기도에서 개원했을 당시인 1998년부터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민 봉사를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배운 악기는 플루트, 오카리나, 하모니카, 첼로 등 스무 개가 넘는다. 마을 경로당에서 봉사할 때 지니고 다니며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만도 7개에서 10개 정도에 달한다.

조 원장은 "병원 개원 초기 매주 수요일 점심 때 환자분들하고 지역 주민을 초대해서 한 40분 정도 수요음악회라는 걸 했다"면서 "순창에서 제가 가진 재능으로 오전엔 환자 진료하고 오후에는 수십년 간 닦은 악기 연주로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의료원장 임기는 2년 후에 중간평가를 거쳐 3년이 연장되면 총 5년"이라면서 '믿음'을 강조했다.

"엊그제도 직원들에게 친절 교육을 했는데,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이 의료원에 들어오셔서 나가실 때까지 정말 따뜻하다고 느끼게 해 드려야 해요. 선생님들이 진료실에서 성심성의껏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게끔 뒷받침하려고 해요. 주민들이 편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의료원을 방문하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생 2막, 순창에서 외치는 "브라보! 청춘"

전북 익산시에서 태어난 조 원장은 인생 2막을 순창에서 열어가기 위해 순창에 집터를 확보했다. 현재 경기도에 있는 아내는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돌봐주고 조 원장 곁으로 올 예정이다. 조 원장은 조만간 부부가 지낼 집을 지을 계획이다.

조 원장은 "저 역시 그렇지만, 도시에서 개원한 의사들은 제 나이쯤 되면 좀 쉬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면서 "그러나 대부분 익숙한 도시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데, 제가 60 이전에 순창에 와서 살아보니, 귀촌 결심을 빨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순창 생활의 만족감을 전했다.

다시 지난 2월 27일, 경로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은 조 원장의 플루트 연주에 맞춰 "원더풀~ 브라보"를 힘차게 외쳤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어르신 청춘!"

주민들과 인사하며 환한 웃음으로 경로당을 나서는 조 원장을 보면서 가수 송창식이 부른 <피리 부는 사나이>의 순창판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 불면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즐겁게 건강교육을 마친 주민들과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즐겁게 건강교육을 마친 주민들과 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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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3월 15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조석범, #순창군보건의료원,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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