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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은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해다. 민주당의 존슨에서 공화당의 닉슨으로 미국 정부가 정권교체됐고, 미국 내 반전 여론이 강화됨에 따라 단계적인 철군을 실행하게 됐다. 또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호찌민이 미국과의 전쟁 도중 건강악화로 생을 마감했다.

1968년 구정 대공세 당시 미국은 전투에선 승리했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에서도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전쟁 명분을 떨어뜨리게 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미라이 학살의 폭로다.

이 학살은 1969년 11월 미국의 젊은 기자 시모어 허쉬가 세상에 알렸는데, 미라이 학살의 진상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미국 정부는 국제적인 규탄에 직면했다. 참고로 시모어 허쉬는 올해 2월 노르트스트림 폭파가 미국과 유럽이 계획적으로 폭파한 것임을 폭로해서 다시 한 번 조명받은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1. 미라이에 진입한 미군, 살아 숨쉬는 건 무엇이든 무차별 학살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 당시 미군이 자행한 학살로 총 504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 사진은 미군 종군기자 로널드 해벌리가 찍은 사진으로 해벌리는 102명의 학살당한 이들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
▲ 미라이 학살 사진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 당시 미군이 자행한 학살로 총 504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 사진은 미군 종군기자 로널드 해벌리가 찍은 사진으로 해벌리는 102명의 학살당한 이들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
ⓒ 위키피디아(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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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허쉬가 폭로하기 1년 8개월 전에 발생했다. 1968년 3월 16일 새벽 찰리 중대를 태운 미군 헬기가 미라이 인근에 착륙해 병사들을 내려놨다. 윌리엄 캘리 중위가 이끄는 찰리 중대 소대원 30명은 베트콩의 대응사격을 받지고 않았고, 베트콩과 관련된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미라이에 착륙한 미군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인근 지역 마을에 있는 민간인들을 향해 M-60 기관총과 M-16 소총을 발사했다. 미라이에 살던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무차별 총격과 학살에 직면했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학살은 4시간 동안 지속됐다. 4시간 동안의 학살로 504명의 민간인 죽었다. 이 학살이 정말 충격적인 것은 학살 당한 민간인 대다수가 도저히 군인이라고 믿기 힘든 존재였다는 점이다. 희생자 504명 중 17명이 임신부였고, 173명이 어린이, 56명이 5개월 미만의 유아였다.

나아가 미군들은 학살 과정에서 모든 가옥에 불을 지르고 수천 마리의 가축을 몰살하는 행위까지 했다. 미라이 지역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죽인 셈이다.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여성들 중 적잖은 여성이 미군에 의해 강간당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점에서 미라이 학살은 천인공노할 제노사이드 행위였다.

2. 학살을 은폐하려한 미군... 그러나 진실을 가리진 못했다

미라이 학살 당시 미 군부는 이 학살을 은폐하고자 했다. 따라서 1968년 3월 16일 이후부터 1969년 11월까지 아주 철저히 학살의 진상이 은폐됐다. 또한 미군은 미라이 학살의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 현장에 폭격을 퍼부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당시 미라이 학살에 대한 미군의 군 기록을 보면, 베트콩 사살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미라이 학살을 목격했던 육군 사진사 로널드 해벌리는 102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한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 사진은 당시 젊은 기자인 허쉬가 받게 됐고, 그가 이를 기사화한 것이다.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미국 정부는 조사에 나섰고 학살 가담자들을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이는 캘리 중위뿐이었다.

이렇게 학살이 폭로된 이후, 학살에 참여했던 미군 병사들이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결국 천인공노할 학살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심지어 1969년 당시 박정희 정부하에서의 <중앙일보>마저도 학살에 대해 보도를 했을 정도니 얼마나 심각한 사건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3.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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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미라이 학살처럼, 한국군 또한 적잖은 민간인 학살을 베트남에서 자행했다. 대표적으로 1968년 2월 12일 구정 대공세 당시 발생한 퐁니퐁넛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이 있다.

퐁니퐁넛 학살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총 74명. 그중에는 도저히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으로 간주될 수 없는 1살, 2살짜리 영유아도 포함됐다.

퐁니퐁넛 학살의 경우 국내에서 법적인 소송까지 걸린 사건이라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하미마을 학살과 빈호아 학살 그 외에도 여러 학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학살의 특징은 피해자 대다수가 한국군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올해 2월 7일 대한민국 법원이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존재와 피해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일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배상판결에 불복 및 항소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의 정책은 과거를 옆으로 밀어놓고 미래를 보고 가자는 것이지만, 이것이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의 입장은 항상 '한국군의 학살은 미국의 용병으로서 벌어진 일이기에, 한국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베트남 정부의 입장을 '민간인 학살을 덮어두자'는 것으로 해석하는 건 심각한 오독이다.

피해자의 피해사실과 당사자들의 정서를 세심하게 생각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9일 베트남전 배상판결 항소는 역사적 우를 범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정부의 '역사적 우'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항소 사흘 전 한국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제3자 변제안)' 역시 법원의 판단과 자국의 피해자들의 입장 그리고 자국민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4. 미라이 학살 55년... 그리고 시대역행적 행위

2023년 3월 16일은 미라이 학살이 벌어진 지 정확히 55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 미군의 민간인 학살로 알려진 미라이 학살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벌어진 극히 일부 사건일 뿐이다.

미라이 학살은 미군이 은폐하려다 폭로된 유일한 사건일 뿐, 베트남 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과 같은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미라이 사건을 은폐한 죄목으로 기소당한 오렌 핸더슨 대령은 1971년 초 기자들에게 "여단 정도 크기의 모든 미군 부대는 어딘가에 각자의 미라이를 숨겨두고 있다"라고 고백했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 당시 100만 단위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고엽제 살포 그리고 제주4.3사건과 같은 베트콩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군사작전에 의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거기다 한국군은 1948년 제주4.3과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자국민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지른 역사가 있다. 거창양민 학살 사건이나 함평양민 학살 사건 등 진실화해조사위원회의 자료에는 이러한 학살만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1980년 광주에선 베트남 전쟁을 통해 군사적 경험을 쌓은 신군부 세력들이 자국민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이승만 정부 초기의 학살과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런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과오를 은폐하는 중이다. 이것은 시대역행적 행위다. 정부를 포함 집권여당은 과거 자신들이 제주4.3과 여순을 어떻게 은폐하고 왜곡했는지 벌써 있었단 말인가. 정부와 집권여당은 이 대목에 대해 정직하게 반성해야 한다.

태그:#한국군 민간인 학살,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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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전공자입니다. 사회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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