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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단길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수욕장 방향 풍경
 해리단길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수욕장 방향 풍경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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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와 해운대 해안가에는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다. 지금도 광안리와 해운대 근방에서는 뚝딱뚝딱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몇 층인지 가늠도 안 되는 고층 건축물 키가 쑥쑥 자라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부산 주요 해안가에 고층 건축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훈하 교수가 쓴 책 <부산에 살지만>을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과거 부산은 산업사회에 기반해 성장했지만 지금은 해양 자원을 기반으로 도시 자체를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해운대, 광안리가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기장 쪽에서도 해양자원을 적극적으로 관광상품화하는 중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임에도 매출액이 높은 기업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 국내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 중 부산 기업은 몇 개일까? 2020년과 2021년 기준으로 단 한 개도 없다. 그러면 1000대 기업 중에는? 2021년 기준으로 27개라고 한다. 이는 부산이 생산 기반 경제가 약하다는 걸 의미한다. 결국 부산시가 찾아낸 돌파구는 해양자원의 관광상품화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해양자원의 관광상품화가 가져오는 두 가지 문제점

첫째, 고층 건축물 문제다. 해안가에 높은 건축물을 짓는 이유는 밀도를 높여 수익성을 강화하고 푸른 바다를 더 멀리, 더 넓게 보기 위함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는 달리 높이 솟은 빌딩은 탐탁지 않다. 경관상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부산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높은 건축물이 딱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건물
 기장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건물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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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뿐인가.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 토지 대비 공간이 늘어난다 한들 지속적으로 사람이 그 공간을 운영하고 이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일단 건축물을 높이 지으면 부수기도 어렵다. 과연 부산 해안가 주변에 새롭게 지어지는 고층 빌딩은 지속 가능할까?

둘째, 경제 순환 문제다. 해양자원을 통한 수익이 부산 시민들에게 얼마나 돌아올까? 해안가 인근 고층 건축물은 외부 자원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고층 건축물에서 발생한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간다고 볼 수 있다. 책 <부산에 살지만>에 따르면 관광특구로 정해진 해운대는 원래 주민들이 이주하고 외지인이 토지 소유주가 됐다고 한다. 해운대, 광안리, 수영구 일대는 외국인 부동산 취득이 증가함으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자율성을 상실하고 외부 힘이 아니고서는 성장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도시를 '식민도시'로 표현했다.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도 책 <지방 식민지 독립 선언>에서 한 국가 내에서 극심한 지역 간 불평등의 형식이 존재하는 개념을 '내부 식민지'라는 이론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중심부의 주변부에 대한 착취는 중남미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이탈리아, 미국 등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34p

지역 외부 자본의 수익은 지역민들에게 얼마나 돌아올까?

외부 자원을 끌어들여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방식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유치로 인한 지방세수 증대효과'라는 연구에서 하이트맥주 홍천공장의 조세 납부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방세는 전체 납부세액의 0.22%에 불과했다. 널리 알려진 순창 고추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매출액과 생산성은 증대되었지만 이 비해 고용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외국인직접투자는 어떨까? 한국지방세연구원 최진섭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직접투자가 GRDP(지역내총생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지방세 수입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으로서 실증 증거로 삼기에는 다소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다. 즉 지역 생산량은 증가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지자체로 들어오는 세금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세금 감면 혜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GRDP 증가로 인한 수익은 어느 주머니로 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부산의 모습은 내부 식민지를 넘어 식민도시로 향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드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향은 부산시 기업 및 투자 유치 촉진 조례의 내용을 통해서 다시 한번 증명된다. 외국인 투자기업에게 지방세 감면, 부동산 임대 지원, 투자보조금 지원, 현금 지원 등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부산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투자를 촉진해 해양경관을 관광자원화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뱃머리 방향을 바꿀 의지도 없어 보인다. 물론 이미 지어버린 건축물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잠시 멈춰 방향을 조정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항구와 조화로운 풍경 때문에 낮아도 아름다운 '밀락더마켓'

앞서 지적한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묘안이 필요한 상황. 고층 건축물이 경관을 해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되며 아름다운 경관의 조망권을 사유화돼서도 안 된다. 또한 해양자원으로 수익이 발생한다면 지역 기업이 거두고 그 수익의 일부는 다시 지방세를 통해 부산시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항구쪽에서 바라본 밀락더마켓
 항구쪽에서 바라본 밀락더마켓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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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대안 사례라고 볼 수는 없으나 '밀락더마켓'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민락수변공원부터 해안가를 따라 광안리까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친수공간으로서 걷기 좋은 선형 산책로다. 바로 옆에는 회센터가 있어 방문객 유입이 많은 지역성을 활용하여 경제적인 외부 효과를 누린다.

민락동 해안가는 어촌계 건물, 위판장, 항구의 풍경과 광안대교가 어우러져 특유의 풍경을 이룬다. 대조적으로 건너편 육지 쪽은 주상복합 아파트 일변도의 풍경이다. 이 지역은 도시계획법상 준주거지역에 해당되는데 최고의 효율을 내는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낯설지 않은 해안가 풍경이다. 여행했던 베트남 나트랑이나 미국 하와이도 해안가에는 높은 건축물이 자리 잡았다. 하긴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도 단층 건물을 지어놓는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광안리로 가는 길 도중에 바보 같으면서도 유별난 건축물이 있다. 바로 밀락더마켓이다. 2층 높이와 7700㎡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주변 건물에 비하면 높이가 매우 낮고 수평적인 건축물이다. 수직적인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오히려 차별화된 건축적 매력을 뽐낸다.

밀락더마켓은 직육면체 박스 형태를 거부했다. 주변이 온통 비슷한 재료와 구조, 색감의 주상복합으로 가득하기 때문일까. 위로 솟은 박공지붕 모양의 지붕. 붉은 외장재와 검은 지붕재 색깔. 항구 주변의 어판장을 닮은 듯한 대형 창고가 재해석된 느낌까지. 눈이 갈 수밖에 없는 디자인의 건축물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스탠드 계단이 건물 한쪽면을 쭉 채우고 있다. 사람들이 오션 뷰 스탠드 계단에 삼삼오오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유리창 너머 민락항의 풍경이 보인다. 작은 어선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과 바다 그리고 대교가 조화롭게 만든 풍경은 밀락더마켓에 와야만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린 것 아닐까.

민락(民樂), 모두가 누리는 풍경
 
밀락더마켓 2층에서 바라본 민락항과 광안대교 그리고 바닷가 풍경
 밀락더마켓 2층에서 바라본 민락항과 광안대교 그리고 바닷가 풍경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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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락더마켓은 본사를 부산에 둔 외식 전문기업 '키친보리에'가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밀락더마켓 2층 내부에는 음식점, 디저트 판매점, 화원, 소품숍, 스타벅스 등이 입점해 있다. 상업성이 짙은 건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호텔이나 일반 카페처럼 출입에 제한은 없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민락동의 '민락(民樂)'의 뜻과도 부합하는 공간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민락은 임금이 즐거움을 홀로 차지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1층의 스탠드형 계단에는 누구나 착석하여 민락동의 훌륭한 경치를 누릴 수 있다. 해안가 주변에서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상업시설과는 차이가 있다.
 
밀락더마켓은 '2022 부산다운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밀락더마켓은 '2022 부산다운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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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락더마켓은 '2022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과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간문화대상 심사위원회는 "민간기업이 수익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나누려는 의지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민간이 주도한 공공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민간 상업시설이 공공성을 충분히 확보한 것이다.

해양자원이 '식민도시'의 발판이 되지 않기 위해

밀락더마켓이 외부 자원에 잠식되고 있는 부산시 해안가의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밀락더마켓에 입점한 매장들이 전부 부산 기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운영하는 키친보리에가 부산 지역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의 일부가 지방세를 통해 지역으로 귀속된다. 부산에 소재지를 둔 기업의 수익 일부가 세금으로 순환된다. 물론 지역 내 기업과 지역 외 기업의 세수 효과는 실증적으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과 훌륭한 조망을 시민 모두와 공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대안 사례다. 물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사례를 만들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겠지만, 더욱 많은 사례가 나오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조례 제정과 같이 제도적인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외국인 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특혜를 주기 위한 특례는 적절치 않다. 지방세가 아니더라도 외국인 기업 수익이 다시 부산에서 소비될 확률은 지역 기업에 비해 더욱 낮기 때문이다.

필자가 부산시에 머문 기간을 전부 합쳐도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한달살이도 되지 않는 경험으로 부산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겠는가. 다만 도시를 공부하는 한 명의 방문자로서 마음이 속상했다. 부산 시민이 아닌 이방인들이 해안가 위에 차곡차곡 담을 쌓아 해양자원 기반 수익을 가져가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비롯한 외지인이 부산시를 식민도시로 삼도록 도움닫기 판을 깔아주는 셈이다. 진정 부산시는 이방인들이 곳간 쌀을 자꾸 빼가도록 뒷짐만 지고 있을 생각인가.

* 참고자료
강준만, 2015,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마고원
박훈하, 2022, <부산에 살지만>, 비온후책
최진섭, 2020, "외국인직접투자의 지역경제 및 지방세수입 효과", 경제발전연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태그:#부산시, #해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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