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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뭐랄까.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이 묘했다. 바닥에는 커다란 원형의 구덩이들이 놓여 있고, 그 주변에는 정체모를 건물들이 정렬해 있었다. 건물 위쪽으로는 신기하게도 잔디와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사용된 건지 알 수 없어 막연함을 가진 채 안내문을 잠시 읽었을까, 감사하게도 곧 문화관광 해설사님께서 오셔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다.
 
부산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부산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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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포진지 내 포좌
 외양포 포진지 내 포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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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 외양포 포진지는 일제의 군사 시설이었다고 한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것들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들이 지내던 건물인 엄폐 막사와 탄약이나 포탄을 보관하던 창고인 탄약고, 대포를 올려놓는 장치인 포좌 같은 것들이었다. 건물 위쪽의 잔디나 주변에 빼곡히 자라고 있던 대나무는 바로 은폐, 엄폐를 위한 것이었다.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가덕도를 강제점령한 뒤 이런 군사 시설들을 만들었다고 하니, 조용한 섬마을에 살고 있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주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은 뒤 건물들 안으로 들어가 봤다. 그 중 한 곳에는 희디 흰 꽃들이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렸다.
 
외양포 마을 내 우물
 외양포 마을 내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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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진지를 나서 외양포 마을로 들어서자 일본식 가옥이나 우물터, 마을 공동 목욕탕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표지판, 안내문 등이 있긴 했지만, 일부 장소들은 현재 사유지인 듯 따로 정비되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잡동사니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일제 침략의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모습이기도 한 만큼 좀 더 관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심지어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인해 외양포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일제 침탈의 흔적을 이렇게 지워버려도 되는 것일까.

아픔이 깃든 이 마을길을 나는 조금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걸었고, 6살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 칭얼대며 걸었다. 하지만 이내 마을 한 편에 툭툭 떨어져있던 동백을 발견하곤 신이 난 아이는, 빠알간 꽃 한 송이를 주워 우물 수면 위에 띄웠다.
 
대항항 포진지 동굴탐방 안내문
 대항항 포진지 동굴탐방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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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마을 근처에도 일제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가 구축한 가덕도 대항항 포진지 인공동굴은 잘 정비된 해안 데크길을 잠시 걸어가면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동굴의 규모는 컸다. 이렇게나 크고 긴 인공동굴을 탄광 노동자들이 강제징용되어 팠다고 한다. 그것도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곡괭이, 삽 같은 걸 가지고 맨손으로 파는 동안 얼마나 길고 긴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까.
 
대항항 포진지 제1동굴 입구
 대항항 포진지 제1동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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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낙석 위험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새바지항에도 역시나 인공동굴이 있었다. 가로막힌 초록색 펜스 사이로 떨어진 돌조각들이 동굴 입구에 듬성듬성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걸 보면서 발길을 돌렸다.
  
강제징용 돼 인공동굴을 파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아이의 그림
 강제징용 돼 인공동굴을 파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아이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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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켜켜이 고통스럽게 쌓인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이날은 따사로운 햇살 가득 봄기운 완연한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다크투어리즘, #부산, #가덕도, #외양포포진지, #일제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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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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