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퇴근 무한 루프에 빠진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무렵, 33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장점인 이 영화를 봤다. 이미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영화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트라본 프리와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의 영화 <낯설고 먼>(Two Distant Strangers)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낯설고 먼> 포스터

<낯설고 먼> 포스터 ⓒ 넷플릭스(netflix)

 
아무 이유없이 불시검문을 당하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고통의 절규를 내뱉었지만, 백인 경찰은 이를 무시한 채 그를 계속 무릎으로 짓눌러 과잉 진압하였고,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분노로 들끓었다. 

도대체 조지 플로이드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대낮에 길거리에서 허무하게 사망해야만 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흑인 남성 카터(조이 배드애스)는 한 흑인 여성 패리(자리아)와 사랑을 나누고 잠에서 깬다. 이불속에서 기어나와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패리는 못내 서운함을 내비치지만, 카터는 집에 혼자 있을 개가 걱정이 돼 돌보러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을 나선 카터는 담배를 피려고 잠시 멈춰섰을 때,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백인 경찰 머크(앤드류 하워드)가 카터를 발견하고 갑자기 강압적으로 검문을 하기 시작한다. 카터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억울하여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이내 몸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결국 머크는 총을 꺼내 카터를 향해 발사하기에 이른다. 탕. 탕. 

화면이 바뀌자 다시 카터는 패리의 옆에 누워 있는 상태로 잠에서 깬다. 다시 아침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 영화는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의 역사에서 타임 루프를 다룬 영화가 많았지만, <낯설고 먼>처럼 안타깝고, 반복될 때마다 화가 나는 영화는 처음인 듯했다.

카터는 처음에는 계속 자신이 머크에 의해 죽고, 아침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기 시작한다. 깨닫자 괴로움을 느낀다. 자신은 그저 사랑하는 반려견을 돌보러 집에 가고자 하지만, 목숨을 걸고 가야 한다는 점에 무력감도 느꼈을 것이다.

수십 차례 죽임을 당한 카터는 패리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머크가 자신을 또 죽일 것이라고. 그 과정에서 카터는 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도망도 가보고, 담배를 피지도 않는 등 여러 노력을 해보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죽음.

과연 카터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99번을 죽더라도 나는 돌아가겠다

패리는 카터에게 도망치지 말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고 설득해보라고 조언한다. 카터는 집 밖을 나가자마자 머크에게 뛰어가서 사실을 털어놓으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머크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카터가 집으로 가서 애완견을 돌보러 간다는 점을 알고 집으로 데려다주기까지 한다. 머크가 운전하는 경찰차를 타고 둘은 카터의 집으로 향한다.

경찰차 안에서는 사적인 이야기도 오고 간다. 영화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대화'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어느새 카터의 집에 다다른다. 카터는 고맙다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본다. 머크는 어느새 총을 꺼내 한 마디를 던진다. 
이번 시도는 아주 좋았어.

그리고 어김없이 총성은 울린다. 탕. 탕.

영화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니, 백인과 흑인 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나 있는지 꼬집는 것일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흑인을 과잉진압할 때, 아무리 억울함을 토로해도 백인 경찰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에 다다르면, 카터는 결의를 다진다. 99번의 죽임을 당하고 똑같은 아침을 맞이한 카터는 굴복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패리의 집을 나선다. 그리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라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카터처럼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흑인들의 이름과,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장한다. 가령 '타미르 라이스는 공원에서 놀고 있었다'와 같이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허무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지난 5년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1년에 1000여 명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흑인이다. 결국 <낯설고 먼>의 카터는 이러한 흑인들을 대표한 것이며, 타임 루프처럼 수십 번 죽임을 당하는 것이 흑인 개개인의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저 인종 차별은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우리나라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진배없다. 영화는 말한다. 그들(소수자, 약자 등)의 이름을 부르자고. 즉 한 명 한 명 샅샅이 살피고 연대하여 기억하자고.  
영화 리뷰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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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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