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6 11:50최종 업데이트 23.03.1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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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헨리조지센터 전강수 대표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 [편집자말]

1880-1890년경 헨리 조지 ⓒ 위키미디어 공용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인은 정말 이상하다. 시장주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를 좌파의 시조(始祖)쯤으로 여기고 그의 경제사상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사상을 '토지국유화의 공산 논리', '사회주의적 유령', '미국식 사회주의자' 등으로 묘사한 기사가 언론 지면을 장식한 것은 벌써 여러 번이다. 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토지 공산주의자', '부동산 사회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헨리 조지는 시장경제를 옹호했고, 정부의 비대화와 자의적 규제에 부정적이었으며, 노력소득 과세를 반대했기 때문에, 외국의 학계에서는 자유지상주의자로 분류된다. 단, 불로소득, 특히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차단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에서 생기는 지대소득을 조세로 환수해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실현되면, 부동산 보유만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누리기는 어려워지고, 국민의 관심은 땀과 희생으로 노력소득을 얻는 일에 기울어진다. 땀과 희생이 없이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풍족히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런 자세로 살면 경제는 자동 활성화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아닌가? 요컨대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들고자 했던 자유주의 계열의 개혁가였다. 이런 사상가를 사회주의자로 매도하다니,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식하다고 해야 하나. 
   
외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다. 해마다 토지소득이 400조 원 이상 발생하는 나라, 주기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는 나라,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부동산에 집중된 나라, 고위공직자, 정치인, 공기업 관계자가 부동산으로 치부하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임을 떠올려보라. 대부분의 언론이 재벌·토건족과 연결되어 있는 현실도 같이 생각해보라. 

부동산에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한국 사회 '지배자'들 눈에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차단하자는 헨리 조지의 주장이 어떻게 비쳤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하는 것은 가짜뉴스와 색깔론이니, 시장주의자를 사회주의자로 탈바꿈시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을 터이다. 

헨리 조지의 경제사상: 세금은 불로소득부터

<진보와 빈곤> <사회문제의 경제학> <정치경제학> 등 불후의 명저를 남긴 헨리 조지의 경제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경제법칙과 도덕법칙은 하나다.
② 토지 사유와 독점은 도덕법칙에 어긋나는 경제적 불의다.
③ 이와 같은 경제적 불의가 존재하는 한, 진보 속의 빈곤, 주기적 불황, 사회와 문명의 쇠퇴는 불가피하다.
④ 토지가치세와 자유거래를 실행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가치세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소득을 거의 대부분 환수하는 조세다. 토지 소유자들은 아무런 비용이나 희생 없이 지대소득을 취득하므로 그 소득은 본질적으로 불로소득이다.

헨리 조지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가 세금은 불로소득부터 매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이 세금을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말하지 않았겠는가(그는 모든 세금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헨리 조지는 위와 같은 경제사상으로 19세기 말 전 세계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영국의 극작가로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버나드 쇼, 영국 페이비언 협회를 창설하고 런던정경대학을 설립한 시드니 웹,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중국의 국부 쑨원 등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정치인 중에도 헨리 조지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 영국 총리를 지낸 로이드 조지와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 호주 수상을 지낸 빌리 휴즈, 러시아 수상을 지낸 케렌스키 등 20세기 전반의 유력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모두 자유주의 계열임을 기억하라. 

미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독점을 규제하는 등 개혁 조치들이 대대적으로 단행된 1890~1917년을 '진보시대'라 부르는데, 헨리 조지는 이 시대의 문을 연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880년대 중반 헨리 조지의 책을 읽고는 인생 후반 25년을 열렬한 조지스트(헨리 조지를 추종하는 사람)로 살았던 톨스토이는 벌써 오래전에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예견한 바 있다.
 
억압받는 다수의 대중을 위해 소수의 지배층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민 생활의 전체적 질서를 변혁하고자 했던 헨리 조지의 경제사상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논박하기 어려운 주장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매우 간단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일단 이해하기만 하면 실행에 옮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항하려면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30년 동안 이 두 가지 방법은 실제로 활용되어 무척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헨리 조지의 저작들을 주의해서 읽고 그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기가 어려워졌다. - <사회문제의 경제학>, 돌베개, 12쪽.

헨리 조지 이후의 경제학자들은 지대 개념을 특권 이익과 독점 이윤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조지가 주창한 토지가치세의 원리는 부동산 불로소득뿐만 아니라 각종 특권 이익과 독점 이윤에도 확대·적용할 수 있다.

부동산 때문에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경제성장이 발목 잡히고 있는 곳, 독점과 특권으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고 다수 대중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곳이라면 그 원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대추구 사회'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고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참모는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대추구 사회에서 대중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부동산에 한정해서 이야기해 볼까. 현재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부동산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졌고, 부동산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망한다. 부동산 때문에 등 붙일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서민들의 애환은 깊어져 가고, 부동산 때문에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피하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부동산 때문에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부동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발한다. 모든 경제문제의 뿌리에 부동산이 자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 타깃을 잘못 잡았다
 

지난 1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하기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 입장하고 있다. ⓒ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선언한 이후, 여러 차례 기득권 카르텔의 지대추구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천명했다.

사실 이 말 자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치명적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목적을 제시한 것이라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시하는 타깃이 너무 이상하다. 노동·교육·연금을 개혁해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추구를 막겠다고 하니 말이다. 

노동조합 조합원과 연금수급자 등을 주요한 지대추구자로 상정한다는 뜻일 텐데, 물론 그들 가운데 독점적 지위와 특권에 기대어 지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매겨서 따지자면, 그들은 지대추구자의 사다리에서 맨 아래쪽에 위치한다. 

한국 사회에서 지대추구자의 사다리에서 맨 위쪽에 위치하는 자들은 부동산을 과다 보유하며 특권과 독점의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다.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금방 연상되지 않는가.

이들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 이 불로소득은 다른 누군가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생산한 것이다. 즉, 최고의 지대추구자들은 다른 이들이 땀 흘려 만든 것을 그냥 가져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 지대추구자들은 각자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대하여 막강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진정으로 기득권 카르텔의 지대추구 행위를 끝내려면 이들이 누리는 불로소득과 특권 이익을 차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누구에게서 이런 말을 배웠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말의 내용이 틀렸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헨리 조지 사상을 공부해야 할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일지 모른다. 말의 겉과 속을 일치시키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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