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 여성 캐릭터는 이제 로맨스 드라마에서 신선한 설정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여자가 무슨 상관이야, 먹고 살기도 바쁜데"라며 기꺼이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위해 남장을 했던 MBC <커피프린스>의 고은찬(윤은혜)부터, 죽은 오라비 세손을 대신하여 왕이 되어 일국을 호령하는 KBS <연모>의 이휘(박은빈 분)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또 한 명의 '남장 여자' 캐릭터로 분투 중인 배우가 있으니 바로 tvN <청춘월담>의 민재이(전소니)다. 

애초 <청춘월담>은 2019년 발간된 중국의 로맨스 추리 소설 <잠중록>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우리 문화 콘텐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시청자들의 예민한 촉각 때문인지, <청춘 월담>의 시청률은 논란의 '담'을 좀처럼 넘지 못한 채 3%대에 정체되어 있다. 
 
 <청춘월담>

<청춘월담> ⓒ tvn

 
살인자의 누명 벗기 위해 내시가 되었다

여전히 '원작의 그림자일까, 각색의 창의성일까'라는 물음표가 따르지만 <청춘 월담>이 그려내고 있는 캐릭터는 자못 흥미롭다. 전소니가 분한 민재이는 극중 세자가 된 이환(박형식 분)의 스승 개성부윤 민호승의 여식이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가족 모두가 독살 당하고, 거기에 더해 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기는 처지가 됐다. 가족도 잃고 살인자의 누명을 쓴 상황. 여느 사대부집 여인들과 달리 민재이는 스스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청춘월담>

<청춘월담> ⓒ tvn

 

세자 이환이 보낸 밀서를 받은 후 민재이는 세자가 바로 사건의 키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귀신의 서'를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세자, 그런 세자를 찾아간 민재이는 '저의 누명도, 저하의 저주도 모두 사특한 간계를 지닌 사람의 짓'이라며 그를 설득하고,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간청한다. 그리고 내시가 되어 세자 곁에 머물며 사건의 진실에 한발자국씩 다가선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박보검을 청춘 스타로 등극시킨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김유정 분)이 떠오른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역시 권신들 사이에서 고립된 외로운 처지라는 점에서 <청춘 월담>속 이환과 다르지 않다. <청춘월담>의 시청률이 답보상태인 이유는 바로 이런 설정상의 답습 때문이 아닐까. 익숙한 캐릭터로 접근성을 높이려던 것이, 오히려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극 초반, '귀신의 서'라는 생경한 설정이 우리 정서에 이반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배경의 유사함, 그리고 설정의 생경함에도 <청춘 월담> 민재이의 매력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성이 '내시'가 된다는 건 자의적 선택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도 조선 최초 연애 카운슬러였다지만, 정작 부모도, 돈도, 집도 없는 처지에서 '내시'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한 것이다. 

민재이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의 억울함을 파헤치기 위해선 세자가 필요했고, 그의 곁에 머물기 위해 '내시' 고순돌이 된 것이다.
 
 <청춘월담>

<청춘월담> ⓒ tvn

 

내시로 평생 살고 싶다는 고순돌 

더욱이 눈여겨 보아야 할 지점은 민재이가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이는 과정이다. 자신이 여전히 여성으로서 아름답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예전 민재이이던 시절 오빠 대신 수사관으로 능력을 발휘했듯이 세자를 위협하는 사건을 밝혀나가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자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어낸다. 세자를 두고, 민재이의 정혼자 한성온(윤종석 분)과 묘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민재이가 여자임을 알아서 늘 한성온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세자, 그런 세자를 오랜 벗으로, 충신으로 지키고 싶어하는 한성온,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고순돌이라는 내시, 이렇게 세 사람은 팽팽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내시 고순돌은 세자의 신임을 얻으며 이제는 마주 앉아 술을 나누어 마실 수 있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거기서 민재이가 기가 막힌 고백을 한다. 평생 내시로 '상선'이 되어 왕이 된 세자를 모시며 살고 싶단다. 

아니 '내시'로 평생 살고 싶다니. 그에 앞서 세자가 물었다. 가족 멸문의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여인네로 돌아가 한성온의 아내가 돼야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민재이는 고순돌이 너무 좋다고 답한다. 술 좋아하고, 사건 수사에 능력있는 자신이 대가댁 여인네가 되면 답답해서 뛰쳐나올 것 같다고. 내시가 되어보니 너무도 좋다고 말이다. 

민재이의, 아니 고순돌의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극중 배경이 되는 듯한 조선 시대의 여인네들은 닫힌 삶을 살았다. 그런 삶에 사느니 차라리 '내시'가 되어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 아닌가. 민재이란 인물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남장 여자의 캐릭터는 이렇게 또 한 번 진화한다. 
청춘 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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