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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항쟁 때 희생된 이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해질 무렵 풍경이다.
 80년 5월 항쟁 때 희생된 이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해질 무렵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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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앞두고, 전라남도가 도내 5·18사적지에 대한 안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남도내 5·18사적지를 찾는 주민과 관광객에게 전남의 5·18을 소상히 알려 역사를 바로 알도록 돕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안내해설은 3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전남 5·18사적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신청자와 해설사의 협의에 따라 사적지 주변 관광해설도 해준다. 해설 신청은 해당 시군의 5·18업무 담당부서에 하면 된다.

전남도내에는 5·18역사해설사 17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지난 2021년 하반기 교육을 통해 5·18역사해설사를 양성하고, 지난해 처음으로 안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시·군별 해설코스 등 자세한 사항은 전남도와 시·군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라남도가 3월부터 도내 5·18사적지에 대한 안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해남 대흥사 옛 여관 터에서의 해설 모습이다.
 전라남도가 3월부터 도내 5·18사적지에 대한 안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해남 대흥사 옛 여관 터에서의 해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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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역과 역 앞 광장 전경. 80년 5월 당시 이곳 광장은 목포항쟁의 중심지였다.
 목포역과 역 앞 광장 전경. 80년 5월 당시 이곳 광장은 목포항쟁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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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내 5·18사적지는 목포, 나주, 화순, 강진, 해남, 영암, 무안, 함평 등 8개 시·군에 29곳이 지정돼 있다. 목포에는 목포역, 중앙공설시장 옛터, 동아약국과 안철선생 옛집, 목포중앙교회 옛터 등 5곳이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나주에는 옛 금성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남고문광장, 금성관 앞, 영강삼거리 등 5곳이 지정됐다. 화순엔 화순군청 앞 일대, 너릿재, 화순광업소 등 3곳이다. 강진에는 강진읍교회, 강진농고 등 2곳이 있다.

해남에는 우슬재, 해남군청 앞 광장, 상등리 국도변, 해남읍교회 등 6곳이 지정됐다. 영암군도 영암읍삼거리, 역리삼거리, 시종파출소, 도포 상리제 등 6곳이다. 무안버스터미널, 학교버스터미널과 학교사거리 등 무안과 함평에도 각 1곳이 지정돼 있다.
  
목포중앙교회 옛터 전경. 80년 5월 당시 재야인사와 목사들이 모여 목포시민 결의문을 채택하고 범시민 투쟁을 결의한 곳이다. 지금은 목포오거리문화센터로 쓰이고 있다.
 목포중앙교회 옛터 전경. 80년 5월 당시 재야인사와 목사들이 모여 목포시민 결의문을 채택하고 범시민 투쟁을 결의한 곳이다. 지금은 목포오거리문화센터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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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강삼거리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당시 이곳은 광주와 전남서남부를 이어주는 요충지로 많은 시민군과 시위차량이 지났다.
 나주 영강삼거리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당시 이곳은 광주와 전남서남부를 이어주는 요충지로 많은 시민군과 시위차량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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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5월항쟁의 중심지는 목포역 광장이다. 목포의 항쟁은 재야인사와 기독교계, 학생이 이끌었다. 탄압의 상징이었던 정치인 김대중의 고향이 사실상 목포였다는 점에서 결집력도 높았다. 당시 목포역사 2층에 항쟁지도부와 상황실을 갖춘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설치됐다.

중앙공설시장 상인들은 시위대에 김밥과 도시락, 음료 등을 건네며 격려했다. 목포중앙교회 옛터에서는 재야인사와 목사들이 모인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열리고, 목포시민 결의문을 채택하며 범시민 투쟁을 결의했다.

나주의 옛 금성파출소 예비군 무기고는 시민들이 많은 무기를 획득한 곳이다. 시민군이 무장을 하고 공수부대에 맞설 기회를 만들어줬다. 광주와 전남서남부를 이어주는 영강삼거리는 많은 시민군과 시위 차량이 지난 곳이다. 시민들은 빵과 음료수, 김밥 등을 시위대에 건네며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줬다.
  
화순 너릿재 옛길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와 화순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에서는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했다.
 화순 너릿재 옛길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와 화순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에서는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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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사적지 표지석과 해남읍교회. 해남읍교회는 당시 신도들이 시위대에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격려를 했던 곳이다.
 5·18사적지 표지석과 해남읍교회. 해남읍교회는 당시 신도들이 시위대에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격려를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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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청 앞에는 당시 경찰서와 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경찰서에서 무기를 획득하고, 군민들이 시위대에 음식을 제공하며 격려한 곳이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에서는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했다. 화순광업소는 시민군의 든든한 뒷배가 된 다이너마이트를 제공했다.

강진읍교회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시위대를 지원하고, 부상자 후송과 간호를 맡았다. 강진농고 학생들은 교복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시위를 하며 계엄철폐, 민주회복을 외쳤다. 해남군청 앞 광장은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군민이 한데 모여 신군부의 내란을 성토했다. 상등리 국도변에서는 무장군인의 총격을 받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영암읍 사거리는 지역청년들이 광주시위대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머리띠, 각목 등 시위용품을 만든 곳이다. 박재택 등 신북지역의 학생과 청년들이 5월 23일 도포 상리저수지 앞 도로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부터 획득한 2만5000여 발의 실탄을 갖고 와 시민군 차량에 나눠 실어준 곳이기도 하다.
  
영암 도포면 상리저수지 앞에 세워진 5·18사적지 안내 표지석. 이곳은 80년 5월 23일 학생과 청년들이 예비군 중대장으로부터 실탄 2만5000여 발의 획득한 곳이다.
 영암 도포면 상리저수지 앞에 세워진 5·18사적지 안내 표지석. 이곳은 80년 5월 23일 학생과 청년들이 예비군 중대장으로부터 실탄 2만5000여 발의 획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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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구멍이 난 유리창. 당시 광주은행 본점에 있던 것이다. 지금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 있다.
 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구멍이 난 유리창. 당시 광주은행 본점에 있던 것이다. 지금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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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광주와 전남 시·도민들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항쟁이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미군의 지휘를 받은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당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은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을 외쳤다.

항쟁 기간 중 22일~26일 닷새 동안은 시민들이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먹으며 서로 격려하고, 부상자 치료를 위해 피를 나눴다.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했다.

5월 27일 새벽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한 광주항쟁은 한때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지난한 투쟁을 거쳐 1996년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에는 관련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5·18묘지가 국립5·18묘지로 승격돼 그 명예를 일부 되찾았다.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된 1987년 6월항쟁의 동력이 됐다. 지금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중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들에게도 위대하고 아름다운 항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격을 받고 희생된 시민들이 처음 안장된 광주망월동묘역. 입구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사이로 들여다 본 모습이다.
 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격을 받고 희생된 시민들이 처음 안장된 광주망월동묘역. 입구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사이로 들여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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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518전남사적지, #518역사해설, #전남518, #목포518사적지, #해남518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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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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