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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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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보고 기가 막혔다. 지난해 말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권고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부안이 확정됐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에 노는 거'라고 말한 게 실언이 아니고,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 추진' 재검토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여 법안 내용과 대 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했다고 한다. 일단 향후 법안 내용이 어떻게 수정·보완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기존에 내놨던 정부의 방안을 꼼꼼히 뜯어보며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관련 기사 : 윤 대통령, '주69시간 노동' 재검토 지시... "MZ세대 의견 면밀 청취").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긍정적 제도라고?

6일 발표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에서 1주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의 한계를 설정했던 칸막이를 없애버림으로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을 지키는 연장근로시간 최대 한도가 사라진 것이다.

1주 단위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시간을 제한하던 것을,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평균을 냈을 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장근로시간 총량만 넘지 않으면 특정주에 12시간을 넘어선 장시간 연장노동시간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주 52시간(기준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 한도의 근로시간만 가능한데, 특정주에 최대 69시간(주6일 근무를 할 경우) 또는 80.5시간(주7일 근무를 할 경우)까지 장시간 근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일이 몰리는 기간에 좀 더 길게 일하고 기업의 일이 몰리지 않는 기간에 휴가를 사용해 쉴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제도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개편안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는 허위 주장에 불과하다.

우선 이 개편안은 기준근로시간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연장근로를 얼마나 더 할지 정하는 것이므로 일이 몰리지 않는 기간에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지금도 연차휴가를 다 소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마당에 늘어난 휴가를 더 자유롭게 사용하긴 어렵다. 기준근로시간, 즉 하루에 8시간 근로는 그대로 해야 하는데 몰아서 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집중 근로가 필요한 시기와 더 일해야 할지 여부는 누가 결정하나? 업무상 필요성 여부에 대한 정보와 결정권은 전적으로 기업에게 있다. 기업이 업무상 필요성이 있을 때 '개편안'에 따라 극단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명하면 노동자들은 거부하기 어렵다.

'업무상 필요성'으로 노동자들이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의 생활상 리듬과 건강은 일순간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러한 불규칙이 반복될수록 노동자들은 건강이 손상되고 삶의 질은 저하된다. 이는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연장근로시간의 탄력화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두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어떤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연장시키는 대신에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일정 기간 평균근로시간을 법정기준근로시간 내로 맞추는 근로시간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할 때도 1주 52시간 1일 12시간 기존 주단위 근로시간에 대한 한도가 적용된다.

지난 2020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두고 치열한 논쟁 끝에 2021년 1월 5일 단위기간 3개월을 초과 6개월 이내로 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설정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다(근로기준법 제51조의2 신설). 이때도 기업들은 계절적 업무, 업무상 필요성으로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단위기간을 1년까지로 확대하자고 주장했으나 장시간 근로가 가져올 문제점과 우려로 6개월까지만 연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은 기준근로시간은 그대로 일하고 추가로 더 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단위기간별로 설정해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내용이다. '죽도록 몰아서 일하다가 그냥 일하는 것'이다. 연장근로시간의 탄력화다. 기준 근로시간제에 대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연장근로시간제도를 탄력화할 경우 그 효과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일상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클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이미 지금의 1일, 1주 기준 연장근로시간 한도 내에서 특정 주에 한도 범위 내에서 일했다가 나머지 주에는 적게 일하여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두고 있는데 반해 연장근로시간 총량제의 경우 계속 기본근로시간은 유지한 채 연장근로를 극단으로 몰아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회복과 충전의 시간은 없다(연장근로를 안 하고 8시간의 기본근로시간을 일하면 그게 충전인가).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더 큰 장점이 숨어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사전에 대상 근로자의 범위, 단위기간 설정,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 서면합의 유효기간 등을 사전에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법적 효력이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법적 요건이 간단하다. 법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라고 하나 현실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등한 합의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 보도자료에는 "연장근로 총량관리(단위기간 동안 총 연장근로시간)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도입하고 연장근로는 당사자 간의 합의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여 "탄력근로제(근로시간 사전 확정 등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특별연장근로(개별근로자 동의+정부인가)와 달리 복잡한 절차 없이 활용 가능"하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기업 측에서 절차상 복잡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대신 간편한 새로운 연장근로시간제를 잘 활용하면 된다. 노동자들이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사장님의 연장근로시간 제안에 형식적 '동의'만 하면, 노동조합 없는 그 많은 사업장에서 근로자대표들이 회사와 함께 연장근로 총량관리제를 도입하겠다고 합의하면, 언제든지 특정주에 69시간, 80.5시간까지 일하는 극단적 상황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1개월, 3개월 단위로 쪼개서 계약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어찌 되는 것인가. 1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노동자들에게 1개월 단위 연장근로시간 총량제는 만성적인 과로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1일 1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상한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과로가 당연하다는 정부, 이대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

기준근로시간을 정한 것은 원칙적으로 그 시간에 일하라는 것이고 연장근로는 예외적으로 추가 근로가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연장근로가 기본값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총 근로시간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정책과 제도를 도입했고 사회는 그에 맞게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국민의 삶의 질,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실업율을 고려할 때 일자리를 나누는 차원도 사회정책적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기업의 이윤추구도 사회적 부를 늘리는 차원에서 중요하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제한적 방식에서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가 존재해왔다.

과로는 이미 산업재해 유발요인으로 인정된, 사회적으로 제한돼야 할 위험요인이다. 이미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법령에서 4주 평균 64시간, 12주 평균 60시간을 일하다가 재해가 발생하면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하는 기준이 있고 이러한 기준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마련된 기준이다.

집중된 기간에 죽도록 오래, 많이 일하면 진짜 죽을 수 있는 '과로'는 제한돼야 하는데 이 정부는 기업의 편의를 위해 '과로'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과로'를 그나마 막아주고 있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뒤흔들어 '극단적 과로'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편안을 보고 있자니 사회적, 역사적 논의 속에 쌓아올린 상식과 제도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참담하다.

노동자인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 개편안에 이미 많이 분노하고 있다. 죽도록 일하다가 기절해서 잠을 자고 다시 일하러 가는, 여타의 삶의 일정은 세울 수도 없는 극단적인 일정표가 온라인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만약 정부의 개편안이 이대로 구체적인 법안으로 통과된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온라인에서 떠도는 69시간제 근무표를 발견하여 옮김
▲ 온라인에 떠도는 근무표 필자가 온라인에서 떠도는 69시간제 근무표를 발견하여 옮김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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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는, 인간이 기계가 아닌 것을 모를 리 없으면서 노동자를 기계처럼 전제하고 제도들을 설계하고 있다. 적어도 기계처럼 반발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시키는 대로 일하라고 노동자들을 보호해주던 법과 제도들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일만하는 '근로자'로 보는 정부의 그릇된 시선에게 모욕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노동자들에게 고무줄처럼 늘렸다가도 되돌아오는 탄성을 기대하는 것인가. 고무줄도 일정 한도는 넘어서 늘리면 탄성력을 잃는다.

정부는 주 40시간 제도 안착화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주 69시간 극단적인 노동이 가능한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주려 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도 1일 8시간 주 48시간을 기준으로 당사자 합의에 의하여 1주 60시간을 한도(연장근로시간 12시간)로 근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스스로 '70년간 유지된 1주 12시간의 칸막이를 제거'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는 바, 아무런 사회적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마련된 개편안에 불과하다.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 추진' 재검토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일방적인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은 폐기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으로 활동하는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입니다.


태그:#주40시간제, #주69시간제, #과로조장 연장근로, #문은영, #김용균재단
댓글18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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