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앵콜 콘서트 'C/2023YH'

윤하의 앵콜 콘서트 'C/2023YH' ⓒ C9 엔터테인먼트

 
3월 11일과 12일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 경기장에서 윤하의 앵콜 콘서트 'C/2023YH'가 열렸다. 먼저 밝히건대, 나는 16년 전부터 윤하의 팬이었다. 그만큼 '동시대성'을 느끼게 하는 뮤지션은 없다. 가수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감각 역시 가장 뚜렷하게 체감되곤 한다. (이제 나는 송골매와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옛날 생각을 하는 어머니에게 공감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2009년 첫 콘서트 '라이브 공식 22-1' 이후 여덟 번째로 경험하는 윤하의 콘서트였다. 여러 번 경험한 윤하의 공연이었지만, '사건의 지평선'의 역주행 이후 펼쳐지는 공연이며, 윤하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공연장(핸드볼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인 만큼 의미는 사뭇 달랐다.

우주와 과학 등 아티스트의 최근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한 듯, 우주 천체의 장대한 이미지가 넓은 전광판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나는 계획이 있다'의 힘찬 멜로디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르트구름' 등 6집< End Theory > 수록곡을 중심으로 록에 기반한 셋리스트가 이어졌다. 추억의 노래 '텔레파시'는 물론 'Fireworks' 등 보컬 컨디션 역시 절정을 자랑했다. '물의 여행', 'Supersonic'에서 고난도의 고음을 소화할 때마다 사방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윤하의 재치있는 멘트도 노련했지만, 팬들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 역시 노련했다. 'Run'의 후렴구에서 팬들이 절묘한 코러스를 넣어주는 모습에서는 아티스트와 팬의 오랜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우산', '비가 내리는 날에는', '먹구름' 등 세 곡의 '비 시리즈', '괜찮다'와 같은 발라드곡이 이어졌다. 장르를 바꿔 가면서 들려주는 노래 솜씨는 단연 탁월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를 패러디한, '브라보 고윤하, 멋지다 고윤하'라고 외치던 한 팬의 목소리에 공감했다(!)

'혜성'은 지지 않는다
 
 윤하

윤하 ⓒ C9 엔터테인먼트

 
"영원이란 것 그 속에 잠들어 버린대도 나를 잊지 말아 줘
뜨겁게 타오를 때에! 네 곁에 있을게"
- '살별' 중


스무 곡이 넘게 울려 퍼진 가운데,  내가 뽑는 최고의 순간은 '살별'(2022)이 연주될 때였다.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록을 부르는 모습은 17년 전 처음 접한 윤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낯선 단어인 '살별'은 '혜성'의 순우리말이다. 윤하의 대표적인 히트곡 중 하나인 '혜성'을 계승한 이 곡을 듣는 동안, 스무 살 천재 소녀에 열광하던 열다섯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의 커리어를 십수년간 지켜보았던 팬, 음악적 성숙에 감탄하거나 부침에 아쉬워하던 이들, '사건의 지평선'을 계기로 공연장을 처음 찾은 팬. 이들은 모두가 이날 보고 싶었던 기억 속 '각자의 윤하'를 확인하고, 그 시절의 자신을 만났을 것이다. 성공과 좌절, 진보를 거듭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30대 아티스트의 오늘, 그리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꿈을 노래하던 스무살 신인의 어제가 한곳에서 조우했다. 만인의 우상이 세월 앞에 퇴색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내 학창 시절의 우상은 어린 날의 모습을 간직한 채, 더욱 노련하게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공연 후반, 가장 큰 떼창을 유도한 곡은 단연 '사건의 지평선'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노래가 유튜브 직캠과 SNS에서의 입소문을 바탕으로 5분이 넘는 곡이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는 위업까지 세웠다. 커리어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단독 공연 역시 열었다. 많은 대중이 윤하가 부른 추억의 명곡을 기억하지만, 현재 시제의 윤하도 그 시절 이상으로 근사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려 주었다.

윤하는 "여러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겸손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최근 자신이 이룬 모든 쾌거를 팬들에게 돌리고, 또 고개를 숙였다. 작은 기적이 모여 새로운 챕터가 마련된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도 아니고, 유튜브 알고리듬이 다 한 일도 아니다. 때로는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소신 대로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온 아티스트에게 걸맞은 보상이었다. '살별'의 노래 가사처럼, 그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윤하의 팬들이 콘서트를 위해 준비한 플래카드

윤하의 팬들이 콘서트를 위해 준비한 플래카드 ⓒ 이현파

윤하 사건의 지평선 윤하 콘서트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