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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본 일 없던 여성이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함께하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다고, 당신도 같이 하자고요. [기자말]
내가 속한 팀이 아마추어 풋살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합 규정상 스무 명 가까운 인원 가운데 절반 정도만 함께할 수 있었다. 나는 친선 경기 경험조차 몇 없지만 한 번 참여해보기로 했다.

최근에 경기를 뛰면서 느꼈는데, 나는 우리 팀 친구들과 게임할 때 좀 더 심하게 주눅 드는 타입이었다. 친구들 이겨서 뭐 해. 내게는 승리보다 내 친구들이 안 다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자꾸만 몸싸움을 피했고, 상대적으로 덜 진지해졌다. 이겨야 하는 상대가 분명할 때는 훨씬 마음이 반듯해졌다.

'그래, 대회라는 거, 처음이라 두렵지만 일단 한번 나가보자. 거기에는 적(?)도 수백 명쯤일 테니 긴장도 훨씬 많이 되겠지? 내 몫을 잘해야 할 텐데. 친구들에게 폐만 안 끼치면 좋겠다.'
 
운동은 장비발이다.
▲ 풋살화 샀다 운동은 장비발이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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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의지로 열 내린 거 아냐?" 

문제는 하필 시합 나흘 전에 몸 상태가 순식간에 안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밤새 고열에 시달리고 오한이 들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끙끙 앓으면서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아... 나 대회 나가야 하는데 어쩌지? 주말 전에는 낫겠지?"

다음 날 아침,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상사에게 연락해 '몸이 아파서 오늘 쉬겠습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인생의 유일한 교훈이 '성실'인 나는 그 몸을 이끌고 기어이 회사에 나갔다.

회사가 집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자차로 1시간쯤 이동하는데, 운전하는 내내 "아, 차 버려버리고 갓길에서 쉬고 싶다. 그냥 이대로 누워버리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몸으로 출근하자마자 회사 동료인 연남도령에게 몸 상태를 공유했더니 그가 바로 대꾸했다.

"코로나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 그냥 몸살이야. 왜냐하면 나 주말에 풋살 대회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코로나일 리가 없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코로나 자가 키트로 빨리 검사해보세요."


연남도령의 성화에 화장실로 달려가 코를 찔러봤는데, 미세한 두 줄이 보였다. 줄이 선명하면 깨끗하게 포기가 됐을 텐데, 아니라고 우기면 인정받을 정도로 미세했다(심지어 보건소 담당자조차 '이거 좀 애매한데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회사 사람들에게 역시 감기 몸살 같다고 했다가 '잔말 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며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아, 나 진짜 코로나 아닌데. 즉시 결과가 나오는 병원의 신속항원검사는 검사받자마자 다시 출근해야 할 테니 보건소로 향했다. 정말이지 또 출근할 기운은 없었다. 보건소 검사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쉬자. 쉬면 나아질 거야. 나는 감기에 걸린 거니까.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었더니 열이 떨어졌다. 팀 친구들에게 코로나 걸리면 열 안 내리지 않냐, 나 역시 코로나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 지금 대회 나가고 싶어서 의지로 열 내린 거 아냐?"
 
대관 순서 기다리며 한 컷.
▲ 풋살장에서 경기하는 사람들 대관 순서 기다리며 한 컷.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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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 친구들 말이 맞았다. 열은 두어 시간 뒤에 다시 마구 올랐고, 그날도 오한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받은 보건소 문자에는 '코로나 양성'이 적혀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왜 하필 지금이야! 내 첫 대회는 어떡하라고!'

혼자 내적 울음을 토해내다가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했는데, 곧 주장 황소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에 언니가 활약할 것 같아서 엄청 기대했는데 아쉽다. 언니, 내가 약 타다 줄까?"

주변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내는 하루

황소가 다녀간 집 앞 현관에는 코로나 약뿐 아니라 각종 인스턴트 죽과 햇반, 과일 등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뭘 이렇게 잔뜩 사놨냐고 물품 구매 비용은 얼마 들었냐고 묻는 내게 그는 "괜찮아, 힘들 때 서로 돕고 사는 거지"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후로 팀의 다른 친구에게서는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죽 선물이 도착했고, 기어코 출근한 나 때문에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는 등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회사 내 동료들은 내가 밉지도 않은지, 빨리 나으라며 각종 과일과 죽 등을 보내주었다(몇 개월 전 일이라 지금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어쨋든 코로나 의심 들면 잔말 말고 신속하게 검사받읍시다).
 
코로나 덕에 친구들의 다정을 얻었다.
▲ 황소가 사다준 코로나 비상식량 코로나 덕에 친구들의 다정을 얻었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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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상실은 다른 하나를 획득할 기회다. 비록 내 첫 대회 경험은 놓쳤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코로나는 나를 풋살대회에 못 나가게 만들고 일주일간 집 안에 고립시켰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우리는 연결된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축구 친구들과 대회에서 함께 뛰겠다는 의지 하나로 잠깐이나마 고열을 잠재운 나도, 지나가는 길도 아닌데 굳이 약과 비상식량을 구비해 전해준 친구 황소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내 걱정에 각종 선물을 보내준 축구 친구와 회사 동료들도, 서로가 있어 그 순간을 견뎌내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게 주변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물론 첫 대회를 놓친 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축구 인생은 기니까, 다음번에는 꼭 건강한 모습으로 대회에 함께해야지. 더는 아프지 말고 근근이 내 주변 동료들과 축구 인생을 이어가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다짐한 날이었다.

태그:#코로나, #풋살, #여자축구, #생활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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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노동자.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여성 아마추어 풋살선수. 나이 든 고양이 웅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풋살 신동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의 마음>,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두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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