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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을 하는 허능필 서울제주도민회 회장
 인사말을 하는 허능필 서울제주도민회 회장
ⓒ 고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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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토박이 건축사이자 ㈜올래와정낭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송일영 건축사가 11일 오후 제주시 연동에 있는 해마호텔에서 자신의 저서 <제주도올래와 정낭>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은 10일~11일 양일간 개최된 서울제주도민회 회장단 워크샵의 일환으로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강연에 앞서 서울제주도민회 허능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송일영 건축사의 강연은 제주의 고유한 전통문화로서 우리 제주인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좋은 강연을 들으면서 제주의 가치, 전통문화, 우리 선조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일영 건축사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올래와 정낭>을 짓게 된 배경은 1996년 티베트 탐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티베트와 1997년 실크로드 근처까지 여행을 떠났는데, 우연히 티베트 오지마을의 민가에서 나무로 만든 정낭을 만났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티베트 산간 오지마을에서 제주도의 정낭과 같은 정낭이 있는 민가를 봤다. 그는"제주도에만 있다고 하는 정낭이 여기에도 있을 줄이야!"하고 감탄과 함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30년 가까이 올래와 정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발품을 팔면서 자료를 모았다.
     
송일영 건축사가 본 티베트에도 3구형 낭(나무)정낭이 있었고 4구형 낭(나무)정낭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티베트에는 낭(나무) 물통도 있었고 야크똥떡과 생활풍습으로 야크똥 줍기가 있었다. 야크똥은 말려서 난로에 불을 지피는데 땔감으로 쓰고 그 땔감을 구하기 위해 주민들은 야크똥 줍기를 한다. 또한 티베트인들은 야크를 이용해 밭갈기를 한다.

송일영 건축사는 티베트 탐방을 계기로 올래와 정낭에 대해 연구를 시작, 이에 관한 문헌을 살펴봤다. 그에 의하면 <세종실록지리지>가 '올래 배끼띠(밖)'의 최초 문헌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16년~18년(1434년~1436년)에 제주도에 흉년이 왔었는데, 말도적 800명이 함길도에 유배를 가서 그곳에 이주·정착했다.

또한 올래 자원이 표현된 최초의 기록물로 조선 중기에 김정(金淨)이 제주의 풍토를 기록한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이 있다. <제주풍토록>에는 '촌옥지제 심광유심(村屋之制 深廣幽深)'이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시골집이 모양과 규모가 매우 깊고 그윽하다'라는 뜻으로 올래 자원이 표현된 최초의 기록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정낭 자원이 표현된 최초의 기록물오는 조선시대 제주목사 이형상이 쓴 <남환박물>이 있다. <남환박물>은 이형상이 쓴 제주도 지방지(地方誌)다. 1700년대 제주의 자연·역사·풍속 등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어 <탐라순력도>와 함께 제주 역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남환박물>에는 "마을과 도로에는 전혀 도적이 없다. 우마나 농기구, 곡물을 놔둬도 집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혹 벽을 뚫고 담장을 넘는 자가 있어서 잡히면 백성들은 그를 가히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역시 스스로 반드시 죽게 됨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정낭의 초법피난처 (超法避難處)로서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송일영 건축사는 올래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 살펴봤다. 올래는 집안으로서, 길에서 마당까지의 드나드는 공간을 말한다. 올래는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우리 마소를 보호하고 외부의 마소로부터 바람을 눅여주고 보호해준다. 또한 올래는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하며 집안을 보호해준다.

올래의 구성요소로는 정낭과 살채기문, 정주목과 정주석이 있다. 올래의 다양한 형태로는 쪼른(짧은) 올래, 보통 올래, 진(긴) 올래, 통시올래(변소로 가는 올래), 산담올래, 잔디올래, 바당올래(바다로 가는 올래) 등이 있다.

송일영 건축사는 올래와 정낭에 얽힌 '제주의 3 정신'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조냥정신(절약정신), 정낭정신, 수눌음정신(협동정신)이다. 이중 정낭정신은 삼무정신과도 연관되는데, 삼무정신은 '대문, 도둑, 거지'의 세 가지가 없이 생활했던 제주인의 본원적인 평화 애호성을 상징한다.
       
송일영 건축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올래와 정낭을 어떻게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 사는 제주인들뿐만 아니라 제주출신의 재외 제주도민들이 관심을 갖고 제주의 고유한 문화, 건축양식, 올래와 정낭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길이 전수해야 하는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송일영 건축사의 강연을 들은 서울제주도민회 회장단은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올래와 정낭에 대해 무관심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제주의 전통문화를 지켜나가자"고 화답했다.
 
‘제주도 올래와 정낭’을 강연하는 송일영 건축사
 ‘제주도 올래와 정낭’을 강연하는 송일영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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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모습으로 강연을 청취하는 서울제주도민회 회장단
 진지한 모습으로 강연을 청취하는 서울제주도민회 회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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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포커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송일영, #올래와 정낭, #서울제주도민회, #회장단,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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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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