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밖에."
 
tvN <일타스캔들>의 선재(이채민)는 15회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 실망한 해이(노윤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일타스캔들>은 선재의 말처럼 동희(신재하)를 제외한 모든 주요 인물들이 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나는 재밌고 경쾌했던 이 드라마가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부조리한 현실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음미하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일타스캔들>이 마냥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가만히 드라마 속 인물들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한 인물들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질 용기를 냈고, 그렇지 못한 이는 삶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즉, <일타스캔들>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선택할 용기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여정을 살펴본다.
  
 <일타스캔들>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일타스캔들>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 tvN

 
내 삶을 타인에게 전가할 때
 
우리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이는 크나큰 불안을 유발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이 나의 삶을 책임져주기를 바라고 내 삶이 아닌 타인의 삶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리곤 그것이 그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 착각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자신이 원했던 삶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다. <일타스캔들>의 선재 엄마 서진(장연남)과 수아 엄마 수희(김선영)가 바로 그랬다.
 
변호사이기도 한 서진은 어둡고 불행해 보이는 인물이다. 그녀는 큰 아들 희재(김태정)가 입시에 실패하자 둘째 선재에게 모든 걸 건다. 그녀는 선재에게 친구들을 모두 경쟁자로 보라 하며, 잠시도 쉬지 말고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더니 급기야 학교 시험지를 빼돌리는 일까지 저지른다. 13회 이를 안 선재가 엄마에게 항변하자 이렇게 말하며 반칙을 한 책임까지 선재에게 묻는다. 

"반칙을 하게 만들지 말든지! 니가 그 모양인데 날더러 어쩌라고!"

서진은 이처럼 자신의 불행을 아이들에게 책임지라 한다.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성찰해보지 않고 오직 아이들이 입시에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수희 역시 마찬가지다. 맘 카페 인플루언서로 학원가를 주름잡는 수희는 공부 잘하는 딸 수아(강나언)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수아의 성취를 마치 자신의 성취인 양 여기면서 그 성취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곤 '이 모든 것은 수아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수아가 입시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 그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한다. 또한, 수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즉, 딸 수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대리하게 할 뿐인 것이다. 16회 부부 싸움 중 터져나온 수아 아빠의 다음 말은 그런 면에서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니 인생 꼭대기까지 못 올라간 거. 그저 그런 대학 나와 그저 그런 남자 만나서 그저 그렇게 사는 거. 그거 의사 딸 만드는 걸로 한풀이 하려는 거잖아."
 
타인의 삶을 대신 살 때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 또 한 가지 유형은 바로 타인의 삶을 대신 사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죄책감을 덜어야 한다거나, 사랑 혹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한다. 행선(전도연)을 만나기 전 치열(정경호)과 동희가 바로 그런 유형이다.

치열은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 수현의 자살과 관련해 죄책감에 빠져 사는 인물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죄책감도 없이 스타 강사가 되어 화려한 삶을 누린다고 비난하지만, 실제 그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음으로 해서 자신을 처벌하고 있었다. 14회 스스로 말하듯 "일 노예로 일 벌레로 밥 한끼조차 소화도 못 시키면서 빈 껍데기뿐인 집에 들어가 자는 둥 마는 둥 눈 붙이고 기어나와 다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포기했던 것이다.
 
 동희는 누나의 삶을 대신 살면서 때로는 치열을 이상화하고 동일시하기도 한다.

동희는 누나의 삶을 대신 살면서 때로는 치열을 이상화하고 동일시하기도 한다. ⓒ tvN

 
동희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누나인 수현의 삶을 대신 산다. 공부만 강요하는 무서운 엄마와 살면서 누나와 유난히 돈독했던 동희는 수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내가 아는 유일한 어른인 최치열 쌤의 조교가 되고 싶다"는 수현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렇게 누나가 바랐던 것을 하며 살면서 치열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며 동일시 해버리기까지 한다. 14회 치열을 대신해 리허설을 하는 동희의 모습이 소름끼칠 만큼 치열과 흡사해보였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즉, 동희는 수현 혹은 치열로 살아왔던 것이다. 진짜 자기 자신의 삶이란 전혀 없이 말이다.
 
불안을 감내하고 책임지는 용기
 
이처럼 타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아니면 타인의 삶을 대신 살면서 자신의 삶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불안을 감내하고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 용기를 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차이를 매우 잘 보여주었다.
 
서진은 아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14회 선재는 "이 사회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원색적이고 직업적 포지션을 중시하는지 넌 잘 모른다"며, "엄마 말 대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서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엄만 행복하세요? 엄만 좋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하냐구요."
 
이 질문에 서진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포지션만 추구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곤 "나 왜 이렇게 됐을까"를 고민하면서 아이들에게 투사했던 욕망을 거둬들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때문에 부정 행위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으며, 아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바라봐주는 엄마로 변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희는 서진처럼 통찰을 얻지는 못했지만, 딸 덕분에 더 나빠지지 않은 경우다. 엄마보다 훨씬 통찰력 있는 수아는 14회 해이의 사고를 '뒷담화'하는 엄마에게 "그게 나일 수도 있었어!"(14회)라고 소리친다. 아마도 이는 수희에게 더 이상 딸에게 자신이 원했던 삶을 대신 살라고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했을 것이다. 물론, 수희는 여전히 입시시장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이런 엄마와 거리를 두는 수아 덕분에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었을 것이다.
 
치열은 행선을 만나 '자신의 삶'을 찾는다. 치열은 행선의 음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서서히 행선에게 마음을 열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간다.
 
반면, 동희는 끝까지 이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름까지 바꾼 채 타인의 삶을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동희는 15회 치열이 진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죽음을 택한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동희의 죽음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 부분이었다.
 
 치열은 행선을 만나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애썼던 자신의 모습을기억해낸다.

치열은 행선을 만나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애썼던 자신의 모습을기억해낸다. ⓒ tvN

   
이처럼 <일타스캔들>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질 용기를 냈을 때 마침내 진정으로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 용기를 내지 못한 인물은 결국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일타스캔들>의 주요 소재였던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용기가 필요한 대표적인 이벤트이다. 누군가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대입을 치르지만, 어떤 이들은 (아마도 상당수가) 사회적인 포지션을 좇거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입시를 치른다. <일타스캔들>의 인물들은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에게 스스로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용기를 내보라고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에 책임을 지려 하는가?'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일타스캔들 책임 정경호 전도연 인물탐구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