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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2012년 첫 번째 충남도민인권조례 제정
2018년 5월 충남도의회에서 폐지
2018년 9월 두 번째 충남인권기본조례 제정
2020년 충남학생인권조례 제정(전국 다섯 번째)
2023년 충남한기총 등에서 인권조례 폐지 서명부 도의회로 전달
 

충남인권조례와 충남학생인권조례가 겪어온 수난사(?)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충남에서 벌어지는 걸까? 인권조례가 무엇이길래 이 수난을 겪는 것일까?

무인도에 한 사람만 산다면 '인권'은 소용이 없다. 인권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에서 필요한 것이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선 자유를 억압받지 않고, 차별이 없어야 하고, 존엄이 무너지는 비참한 삶은 없어야 하니까.

끔찍한 학살과 전쟁을 경험한 인류는 '세계인권선언'으로 약속을 했다. 선언 이후 국제적으론 '인권조약'으로, 각국에선 법과 제도로 인권 보장을 추진해왔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로, 인권 보장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인권보장에 소극적이거나, 때로는 폭력으로 방치로 인권을 유린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시민의 열망이 모여 2001년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됐다. 인권위는 국가의 인권보장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하며, 국제인권기준이 국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준국제기구이자 독립된 국가기구, 종합적인 인권전담기구이다. 

그런데 인권위법은 국가정책이 인권에 부합하는지를 살피고 인권침해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는 있으나, 지방정부가 지역민의 인권보장을 잘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주민의 인권문제에 신속히 개입해 도움을 주기에 충분한 법은 아니었다.

2012년에 이르러 인권위는 전국 지자체에 '인권조례'를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조례는 지방정부가 주민 인권보장의 책무를 지니고 있으며, 지자체 모든 행정은 인권에 기반해야 함을 규정한 것으로, 사실상 지역의 '헌법'과 마찬가지다. 제대로 작동된다면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설계도이자 지침서이기도 하다.

충남인권조례, 두 번째 제정은 어땠나
 
본회의장에 입장한 민주당 소속의원들은 자신의 자리 앞에 ‘인권조례 폐지반대’ 손팻말과 함께 '사회적약자 보호하는 충남인권조례 폐지반대'펼침막으로 들고 의사당 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본회의장에 입장한 민주당 소속의원들은 자신의 자리 앞에 ‘인권조례 폐지반대’ 손팻말과 함께 '사회적약자 보호하는 충남인권조례 폐지반대'펼침막으로 들고 의사당 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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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충남도의회가 동성애, 이슬람 반대라는 혐오 주장을 받아들여 2018년 5월에 인권조례를 폐지했는데, 이에 앞장섰던 의원들은 6월 지방선거에서 모두 낙선했다.

새롭게 구성된 제11대 충남도의회는 인권조례는 당연한 것이라며 9월에 '충남인권기본조례'를 제정했다. 당시 인권단체 '부뜰'은 인권조례가 실효적이어야 한다며, 도민의 의견을 모으는 집담회 등을 추진했다. 조례에 따른 지역인권위원회가 허수아비가 아니라 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치 국가인권위처럼 충남도에도 독립적 충남인권위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도의회는 서둘러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도의회도, 도지사도 제정된 인권조례가 주민의 삶과 행정에 인권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권조례가 제정됐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행정이 '인권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인권조례에 따라 인권의 가치와 원칙이 행정과 주민에게 녹아들었다면, 혐오차별 주장이 그렇게 힘을 받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권조례 폐지 사태를 겪었음에도, 의회나 집행부 모두 조례를 '제정'하는 것만 관심이 있었을 뿐, 어떤 조례여야 하는지나 조례의 실효성엔 무관심했다. 결국 새로 제정됐음에도 조례의 한계로 인해 인권행정 전담부서도 없이, 충남인권위원회는 주민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독립적으로 권고를 발표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3기 충남인권위의 권고는 도내 기초지자체의 인권 제도와  관련해 권고 1건, 위원장 명의 성명 발표 1건으로 그쳤다.

인권침해 상담과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충남인권센터는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도 자치행정과 소속으로 있으며, 공무원의 의식 변화에 중요한 인권교육은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인권기본계획은 '계획'에 그치고 있다.

2022년 제12대 충남도의회가 구성됐고, 다수당이 바뀌자마자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으며 혐오를 방치하는 국회의 책임이 일차적이지만, 인권조례가 여전히 행정과 주민의 삶에 안착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권보장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체장과 의회, 공직자의 사명보다는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공무원들, 독립적 인권기구 규정이 없는 조례 자체의 한계, 인권시민사회의 역량 부족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뿌리 내리지 못하는 인권조례라면, 인권조례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인권조례는 지자체의 기본 규범이 돼야 마땅하다. 실효성을 위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지역인권기구를 규범에 담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와 달리 지역인권위는 자문기구다.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인권 행정이 좌우된다. 단체장이 인권에 관심이 없으면 인권 행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에 처한다. 또한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인권 의식을 높이기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시민의 상식에 못 미치는 혐오 주장을 다수라 여겨 따르거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은 존엄한 삶,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는 시민들은 차별과 혐오를 용납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공유하는 감각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청소년 시민 참여로 제정된 충남학생인권조례

 
2020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라는 연대체의 역할이 컸다.
 2020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라는 연대체의 역할이 컸다.
ⓒ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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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라는 연대체의 역할이 컸다. 교복 자켓을 입지 않고 롱패딩을 입었다는 이유로 운동장에서 '엎드려뻗쳐'를 당한 학생의 제보를 시작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는 활동이 시작됐다.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는 학생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후 김영수의원(제11대 충남도의회)과 함께 '학생인권연구모임'을 만들어 타 지역 조례를 검토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며 조례안을 마련했다.

조례안이 도의회에 부의되자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조례의 규정력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인권활동가들은 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각계의 지지와 응원이 이어지며 전국 다섯 번째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당사자인 학생과 인권단체가 중심이 돼 인권이 지켜지는 학교가 되길 바라며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만 3년이 돼 가는 지금, 교육청과 학교에는 과연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인권활동가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사립학교에서 걸핏하면 무시되는데, 사립학교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상황에 놓여 있다(교복, 두발을 여전히 제한하는 사립학교가 있다). 교육청은 노력한다고 하는데, 학생들은 '학생 인권교육'이 형식적임을 지적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을 알리고 학생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충격적이게도 학생인권조례를 알고 있다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육감에게 부여된 학생인권보장 책무는, 학생의 인권이 학교에서 잘 지켜지고, 학교에 인권 존중 의식과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관료적 접근이 아닌,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공간의 확장이 필요하다.

충남교육청은 지금 어떤 기획을 하는지 궁금하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는 일부의 행동에 대해 권리의 주체인 학생에게 알리고,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 학생이 모색하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지 등 계획이 있을까?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일 텐데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시민교육과 학생인권교육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닌가.

이진숙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대표

[이전기사] 
인권조례가 정교분리 위반? 이 주장이 틀린 이유 알려드립니다 https://omn.kr/22zrr

태그:#충남,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인권기구, #혐오차별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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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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