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2 18:31최종 업데이트 23.03.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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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고드름이 있는 폐터널 입구. 얼음기둥이 장막을 치고 있다. 역고드름은 입구 안쪽, 어둠 속에 숨어 있다. ⓒ 성낙선

 
평화누리 자전거길도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이 여행도 한 코스만을 남겨 놓고 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지금까지 지난 석 달 동안 계속 이어온 여행의 대미를 보게 된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마지막 코스인 7코스는 연천 군남댐에서 시작해 '역고드름'에서 끝난다. 역고드름은 연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다. 한때는 인터넷을 통해 꽤 유명세를 떨쳤던 곳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그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

역고드름의 실체도 그렇지만,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역고드름 이후에 나타나게 될 풍경이다. 역고드름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강원도 철원이다. 도 경계선을 넘어서는 만큼, 그곳에서 접하게 될 풍경도 이전과는 많이 다를 거라는 기대를 걸게 된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7코스. 최종 목적지인 '역고드름' 표지판이 보인다. ⓒ 성낙선

 
김포에서 연천까지 이어온 긴 자전거길이 그대로 역고드름에서 끝날지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철원도 연천과 마찬가지로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중의 하나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만든 취지를 생각한다면, 자전거길이 도 경계선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자전거길이 민통선 부근을 지나가려면, 그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강원도는 또 경기도와는 완전히 다른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길'을 만드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여행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제 곧 밝혀진다. 그새 날씨가 꽤 포근해졌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다. 그나저나 너무 따뜻한 날씨 탓에 역고드름이 그새 모두 다 녹아내린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7코스. 자전거도로 위에서 바라다본 풍경. ⓒ 성낙선

 
흔한 듯 흔하지 않은 풍경, 차탄천

7코스는 자전거길이 군남댐 앞에서 갑자기 90도로 꺾어진다. 북쪽으로 향하던 길이 가던 방향에서 크게 우회해 연천 읍내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자전거길이 선곡리와 옥계리 등 4개 마을을 지나서는 읍내 남쪽을 돌아 차탄천 제방 위로 올라선다.


차탄천은 철원 금학산에서 발원해 연천 지역을 지나 한탄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제방 위에 자전거도로가 개설돼 있다. 그런데 제방 위에서 바라보는 차탄천 풍경이 조금 단조롭다. 하지만 차탄천은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연천읍을 중심으로 남과 북을 나눴을 때,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지나가는 북쪽 길은 하천 풍경이 대체로 평이하다. 그와는 반대로, 연천읍 남쪽으로는 풍경이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고성인 은대리성과 현무암 주상절리 등 다양한 유적과 경관이 산재해 있다.
 

차탄천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로들. ⓒ 성낙선

 
차탄천이라는 지명이 생긴 유래가 재밌다. 차탄천이라는 지명은 태종 이방원이 탄 수레(차)가 이곳을 지나다가 여울(탄)에 빠졌던 사건에서 생겼다고 한다. 왕이 탄 수레가 물에 빠진 건 대형 사고다.

수레가 어떻게 해서 차탄천에 빠졌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차탄천 제방 위를 지나가던 자전거길이 잠시 하천가로 가까이 내려갔을 때 깨닫게 된다. 하천 바닥에 밤톨만 한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다. 수레바퀴가 빠질 만하다.

7코스는 연천 읍내를 지나고 나서도 계속 차탄천을 따라 올라간다. 하천 주변 풍경이 여느 하천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마저 같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천 읍내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돼 한 떼의 백로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수십 마리 백로가 하천 바닥에 내려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철새 도래지를 지나쳤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백로 한두 마리를 보았던 게 거의 전부다. 여행 마지막 날, 백로를 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차탄천 제방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겸용 자전거도로. ⓒ 성낙선

 
폐터널 속,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7코스 역시 앞서 지나온 코스들과 마찬가지로 자전거길이 매우 잘 조성돼 있다. 길이 중간에 잠깐 끊어졌다 이어지는 곳도 있고 자갈과 흙이 뒤섞인 비포장도로도 있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길은 곧 안정을 되찾는다.

특이한 건 제방 위 자전거도로가 '자동차 겸용'이라는 점이다. 이런 길은 또 처음이다. 자전거전용도로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달리다가 멀리서 자동차가 달려오는 걸 보면 난감하다. 제방 위를 지나다니는 차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그래도 주의가 필요하다.

차탄천을 따라서 묵묵히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 순간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역고드름'에 다다른다. 포근한 날씨에도 역고드름이 있는 터널 입구 주변이 꽝꽝 얼어 있다. 터널 입구뿐만 아니라 주변 계곡도 얼음으로 두껍게 덮여 있다. 얼음이 잘 어는 곳이 분명하다.

역고드름은 터널 입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 얼음 기둥이 장막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역고드름은 터널 안쪽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이곳의 터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철도를 건설하다 중단한 것이라고 한다.
 

역고드름, 폐터널 입구 밖에서 줌렌즈로 끌어당겨 찍었다. ⓒ 성낙선

 
역고드름은 우리가 흔히 보는 처마 밑 고드름과 달리, 고드름이 땅바닥에서 위를 향해 솟아오르듯이 자라서 유명해진 곳이다. 고드름이 중력을 무시하고 자라는 것처럼 보여서 신기하게 여길 만하다. 역고드름이 생기는 원리는 조금 난해하다.

역고드름 안내문을 보면, "터널 위쪽에 생긴 틈과 자연현상이 맞물리면서 역고드름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자연현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터널 천장 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터널 속 미묘한 자연현상과 어우러져 땅 위에 얼어붙으면서 역고드름이 생겼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역고드름을 지나쳐서 그다음에는 어떤 길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그 뒤로도 여전히 '평화누리길'이 이어진다. 7코스를 마지막으로 '길'이 완전히 끊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평화누리길은 '평화누리 자전거길'과 다르다. 평화누리길은 도보여행길이다. 길이 더러는 자전거가 다니기 힘든 좁은 산길이나, 계단길을 지나간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7코스가 끝나고, 강원도지역 평화누리길(1코스 금강산길)이 시작되는 곳. ⓒ 성낙선

  
'끝'을 봤지만, 이대로 끝이 아니길

역고드름에서 결국 자전거길은 7코스가 '끝'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다를지도 모른다. 평화누리길과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상당 부분 같은 길을 공유한다. 그래서 때로 길을 혼동할 때도 있다.

평화누리길이 있다면,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7코스에 이어 새로운 자전거길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결코 7코스가 끝이 될 수 없다. 

7코스는 군남댐에서 역고드름까지 전 구간이 대체로 완만한 경사길이라고 보면 된다. 길이 평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 달리다 보면 다리가 뻐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게 6코스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높은 경사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7코스. 일반도로 곁을 지나가는 자전거도로. ⓒ 성낙선


이렇게 해서 지난해 12월 초에 시작해 3개월 만에, 평화누리 자전거길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처음에 2코스에 해당하는 구간인 서울 방화대교에서 김포 전류리포구까지 갈 때만 해도, 1코스에서 7코스까지 7개 코스를 모두 여행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한겨울에, 코스별로 날짜를 달리해서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2코스를 여행하고 나서는 1코스에서 보게 될 풍경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계속 다음 코스에서는 또 어떤 길을 만나게 될지 호기심이 생겼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인 김포, 고양, 파주, 연천을 연결하는 최북단 자전거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꼭 이 길을 가야 한다. 더 이상 멀리 갈 수 없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에서 북한 땅이 지척이다. 일부 구간에서는 굳이 통일전망대를 오르지 않고도, 북한 땅을 바라다볼 수 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전체 길이가 218.7km다. 마음만 먹으면 2~3일 안에도 여행을 마칠 수 있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단번에 여행을 끝내기엔 너무 많은 풍경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천천히 여행을 즐기자.
 

우천시 통행금지 표지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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