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6 14:13최종 업데이트 23.03.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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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은 드디어 사람다울 수 있었다. 날것을 먹는 게 만병의 근원이었는데 익혀 먹을 수가 있게 되었고, 따뜻한 데서 잘 수 있게 되었다. 모닥불만으로도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불은 우리에게 색다른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마법도 선사했다.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고, 쇠를 녹여 무기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개인이 부족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불을 잘 다루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 줄 아는 게 지도자의 최대 덕목이 되었다.

우리는 불과 쇠를 이용해 도구를 만드는 사람을 대장장이라고 한다. '도구의 인간'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를 가능하도록 한 게 바로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고대에는 대장장이가 중요한 신화적 요소로까지 등장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신화에는 어김없이 대장장이가 있다.
 

6세기 후반 고구려 벽화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회분 4호묘의 대장장이 신. ⓒ 구리시 공식 블로그

집안시 통구 고분군 산하 우산하 고분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벽화 무덤 오회분 5호 고분. ⓒ 문화재청


우리 민족의 신화에서 대장장이가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지배계층 무덤에 기막힌 솜씨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신라의 제4대 임금 탈해왕 설화에서는 신분 상승을 위한 코드로 대장장이를 활용했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는 고구려 고분군이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대장장이 그림이 그려진 무덤은 오회분 4호묘이다. 오회분(五盔墳)은 투구(盔) 모양으로 생긴 5기의 묘를 말하고, 4호묘란 그중 네 번째란 의미이다.


이 무덤의 형식은 '흙무지돌방무덤'이다. 위로 봉긋하게 투구처럼 솟은 부분은 흙으로 쌓고, 그 밑 무덤의 방은 돌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고구려인들은 그 방의 천장부터 벽면까지를 온통 그림으로 채웠다.

6세기 후반 고구려 벽화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회분 4호묘의 대장장이 그림은 모루 위에 달궈진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리는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잘 다듬은 돌 표면에 직접 그렸는데 당시 대장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대장장이 신'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한다. 그 그림 옆에는 '수레바퀴 신'도 그렸다.

(※ 오회분 4호묘의 '대장장이 신' 그림에 대해서는 나중에 게재할 '그림으로 보는 대장장이' 편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한 '대장장이 신'

오회분 5호묘와 오회분 4호묘에는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4신 이외에도 공통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불의 신이다. 오른손을 뒤로 뻗어 불씨를 받들고, 왼손을 어깨 뒤로 넘겨 옷깃으로 불씨를 감싸는 듯하고, 허리를 젖히면서 몸과 얼굴을 오른쪽으로 반쯤 틀어 불씨를 바라본다. 이 구도는 5호묘와 4호묘에 각각 그려진 불의 신 모습에서 같이 나타난다. 두 그림이 너무나 흡사하다. 

불을 들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서는 둘 다 똑같이 여성스러움마저 느껴진다. 다리를 모으고 무릎을 굽힌 모양도 많이 닮았다. 무릎을 굽힌 그 모습은 마치 신라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비천상(飛天像)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고구려 불의 신은 무릎으로 디딘 채 몸을 뒤로 젖히면서 춤을 추는 형태여서 완전히 무릎을 꿇지는 않고 반쯤 일어선 모습이고, 신라 비천상 천인(天人)은 무릎을 더 단정히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태다.

고구려 벽화 속 두 불(火)의 신 그림은 마치 한 사람이 그린 듯하다. 5호묘는 6세기 전반, 4호묘는 6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조성 연대를 놓고 보면 수십 년의 차이가 난다. 같은 사람이 그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부모 자식 간에 대를 이어서 그렸을 듯싶다. 
 

오회분 5호묘 '불의 신'(위). 널방(관을 들여 놓는 곳) 고임 벽에 그린 불의 신 모습. 두 손의 옷깃이 마치 날개처럼 보인다. 오회분 4호묘 '불의 신'(아래) 누런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는 불의 신 모습이 색깔만 다를 뿐이지 수십 년을 먼저 그려진 5호묘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 자료사진


5호묘를 그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을 자식들이 이어서 그림을 업으로 삼았을 것도 같다. 어릴 적 보았던 5호묘 속에서 부모가 그리던 불의 신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게다. 그렇게 자식으로 이어진 그림 솜씨가 4호묘 속의 불의 신으로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여기서, 고구려 고분의 주인공을 위한 공간에 어찌하여 대장장이 신까지 포함하여 그렸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벽화에는 해의 신이나 달의 신, 농사의 신 등도 그려 넣었다. 이들 중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린 대상은 대장장이 신과 수레바퀴 신이다. 농사의 신은 얼굴은 뿔 달린 소의 형태이고 몸통은 사람인 반수반인(半獸半人), 우두인신(牛頭人身)의 형상을 취했다.

무덤 속에 그린 대상은 죽은 이가 내세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수호신이 그렇고, 해와 달도 그렇다. 신성함의 산물인 불도 꼭 있어야 한다. 농사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이동 수단인 수레와 무기를 비롯한 각종 도구도 필요할 테다. 수레바퀴의 신과 대장장이 신은 그렇게 해서 무덤 속에 그려지게 되었다.

신분 상승의 도구로 활용된 신라의 대장장이

고구려가 대장장이를 신격화한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신라에서는 대장장이를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신라 제4대 임금 탈해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담은 설화에 대장장이가 등장한다. 탈해왕은 일본보다도 더 먼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사람으로 난 게 아니라 알(卵)로 태어났다. 

그 나라 임금이던 부친은 불길하다 하여 나무 궤짝에 그 알을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어찌 어찌하여 신라에까지 닿았다. 그 궤짝에서 어린아이가 나왔다. 탈해왕이다. 어린 탈해는 '대장장이'를 이용해 좋은 터에 지은 남의 집을 빼앗았는데, 이는 곧바로 임금의 사위로 올라서는 통로가 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토대로 그 얘기를 재구성해 보자. 어린 탈해가 토함산에 올라가 성안을 살펴보니 살 만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탈해는 주인인 호공을 내쫓을 계책을 짰다. 그 집 옆에 숫돌(礪)과 숯(炭)을 묻어 둔 뒤에 자기 선대부터 살던 집이라고 우겼다. 호공은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서로 우기다 보니 관청으로까지 번졌다. 
 

오회분 5호 고분 천장고임 바퀴의 신과 기약천인. ⓒ 문화재청


관청에서는 탈해에게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탈해는 잠깐 이웃 마을에 간 사이에 호공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조상 대대로 여기 살면서 대장장이를 했으니 땅을 파면 뭔가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땅을 파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탈해는 그렇게 해서 그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 이를 지켜본 남해왕이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여 자신의 맏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시쳇말로 듣보잡인 어린아이가 하루아침에 왕의 사위가 된 거다. '난생설화(卵生說話)'에 곁들여진 과장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러면 탈해는 왜 하필 대장장이를 내세웠을까? 아마도 당시에는 대장장이라는 신분이 우대받는 기술자 집단에 속했던 모양이다. 어엿한 최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는 대장장이 집안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낯선 땅의 생면부지인 사람들로부터 대우받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위에 오른 탈해 임금은 석(昔) 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자신이 왕이 된 것이 호공의 집을 빼앗은 옛날 그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에서 성씨를 지난날을 뜻하는 '석'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탈해왕 설화를 다루면서 대장장이 이야기는 빼놓고 전하고 있다. '탈해는 학문에 오로지 힘쓰고 겸하여 지리를 알게 되었는데, 양산 밑에 있는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 그 터가 길지라고 하여 거짓 꾀를 내어 이를 빼앗아 살았으니 후에 월성이 그곳이다'라고 하여, 대장장이 부분을 단지 '거짓 꾀를 냈다(設詭計)'는 말로 간단히 처리하고 말았다.

대장장이를 중요하게 다룬 '그리스·로마 신화'

대장장이가 신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다. 아주 오래된 옛 시절에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어디를 가나 신들의 천국이고 신들의 놀이터였다. 신화는 그렇게 각 민족의 이야깃거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신들은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창조되어 나타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광범위하고도 많이 읽힌 신화를 꼽으라면 단연 그리스·로마 신화일 테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대장장이는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대장장이 신을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라고 불렀고, 로마인들은 '불카누스(Vulcanus)'라고 했다.

미하엘 쾰마이어(Michael Kohlmeier)가 쓴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 원작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는 아버지의 역할이 없이 태어났다. 남편 제우스를 끔찍이도 싫어한 어머니 헤라가 자가 생식처럼 혼자서 낳았다. 그런데 헤라는 헤파이스토스를 낳자마자 한번 보고서는 외모가 흉물스럽다며 올림포스 아래로 던져버렸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1630년, 캔버스에 유채)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헤파이스토스는 죽지는 않았지만 떨어질 때 충격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어린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를 요정인 테티스가 거두어 잘 키웠다. 많은 걸 가르치고, 비상한 재주도 발굴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불을 아주 좋아했다. 쇠를 불에 달구어 연하게 만들 줄 알았고, 뜨거운 쇳물도 맨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헤파이스토스를 불이라고 생각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활화산 같은 폭발력을 가졌고, 손으로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냈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전반에 걸쳐 여기저기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만큼 재주가 많았고, 신들과의 관계도 폭넓게 형성했다. 

신들에게 만들어준 도구도 다양했다. 제우스에게는 번개를,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을, 아테나에게는 방패를 선물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도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쇠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 제자를 두고 있다. 케달리온이다. 키가 작은 케달리온은 거인이면서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오리온의 어깨 위에 타고 길을 안내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와 제자 케달리온.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찌하여 헤파이스토스가 제자를 키워내도록 했을까?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코드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 헤파이스토스가 가진 대장장이 재능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후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거다. 

이 점을 생각하자니, 요즘 우리나라 대장간들이 후계자를 키우지 못해 그 불꽃이 사그라드는 세태를 되돌아보게 된다. 제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현실의 대장간 처지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토르의 망치' 만든 대장장이 형제 브로크와 에이트리

유럽의 대장장이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영화 <토르> 시리즈다.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Thor)'는 천둥·번개의 신이다. 토르의 절대적 힘의 원천은 망치에 있다. 

그 망치를 만든 게 대장장이 브로크(Brokk)와 에이트리(Eitri) 형제다. 우리는 토르 영화를 볼 때마다 주인공 토르와 그가 휘두르는 망치에만 시선을 빼앗기고는 한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 망치를 만든 대장장이 형제들의 솜씨에도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Thor)'는 천둥·번개의 신이다. 토르의 절대적 힘의 원천은 망치에 있다. 그 망치를 만든 게 대장장이 브로크(Brokk)와 에이트리(Eitri) 형제이다. 사진은 영화 <토르> 시리즈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토르와 관련해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영어로 목요일을 일컫는 'Thursday'가 바로 '토르의 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앞으로 <토르> 시리즈가 더 계속될 경우, 영화 개봉 날짜를 '토르의 날'인 목요일에 맞추어서 잡는다면 어떨까 싶다. 

신화라고 하면 이집트도 할 말이 많다. 이집트의 신화 체계 속에서도 대장장이 신은 앞줄에 선다. 아서 코트렐(Arthur Cotterell)의 『세계신화사전』에 보면, 이집트의 프타(Ptah) 신은 언제나 생명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창조의 신인 프타는 고대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프타를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와 결부시켜 왔다. 또 다른 이집트 신화 연구자들은 프타를 금속세공사나 건축가, 대장장이의 수호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집트의 프타 신도 대장장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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