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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기자말]
밖에서 떠돌던 개들이 집에 와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분리불안에 시달렸다. 복주는 복주대로 해탈이는 해탈이대로 우리 집 개들은 전부 필사적으로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둘 다 집에 혼자 남겨지면 집이 떠나가라 하울링을 하며 울었고 복주는 탈출 시도까지 했다. 물론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으니 덜하긴 한데 여전히 내가 오래 집을 비우면 둘 다 많이 불안해한다. 단언컨대 개를 키우면서 '분리불안'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개들의 분리불안 증세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개들은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은 보호자와 떨어지는 걸 불안해 할 확률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불안감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 낮출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훈련이란 건 별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개가 보호자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개들이 안정을 찾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자가 날 다시 찾아올 거야' 하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선'이지 불안 증세의 '완치'는 아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개들이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이다.

유난스러운 보호자의 사회화 훈련기
 
분리불안 처방약을 받은 복주.
 분리불안 처방약을 받은 복주.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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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나 역시 개들의 분리불안을 고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다. 오죽하면 용하다는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신경안정제까지 처방받아 왔을까.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미있는 장난감도 간식도 전부 내가 키우는 개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원하는 건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나와 내 혈육들)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개들의 인지 능력이 두 살 남짓 된 인간 아기와 비슷하다고 하니,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개들도 대체로 나이를 먹으면 점점 안정감을 찾아간다.

인정한다. 주변 반려인들 사이에서도 나는 유난스러운 보호자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네가 개를 키워서 망정이지 사람 키웠으면 어쨌을 뻔했냐고 한다. 남의 눈에 별다른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는 개를 키우면서도 TV에 나오는 유명한 수의사를 찾아가는데 사람이 키웠으면 아동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를 골백번 찾아가지 않겠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개를 집에 데려온 후 2년 동안 나는 개들의 사회화(강아지의 사회성을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 역시 배우는 때가 따로 있다. 1차는 생후 3주에서 8주 모견과 형제견들과 함께 있을 때고, 2차는 8주에서 16주 퍼피시절이다. 또 그 후 자아가 성립되는 1살까지 개들은 끊임없이 탐구하며 배운다.

물론 이 시기를 지난 개들도 계속 학습한다. 다만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잘못된 행동은 습관이 되기 전에 고쳐야 한다. 어려서 고치면 쉽다. 나이 들어 고치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화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개들의 훈련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화 시기에 있는 개들에게 이 시기가 중요하니, 훨씬 더 집중해서 교육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맥락에서 펫숍으로 유통되는 개들에게는 더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어려서 부모·형제와 떨어지면 개들의 언어를 배우기 어렵다. 또 퍼피 시절 진열장에 갇혀 전시되며 배움의 기회를 잃는다. 이 때문에 강남의 한 동물행동 클리닉에서는 이렇게 펫숍에서 온 친구들에게 따로 개들의 언어인 카밍시그널을 가르쳐 주는 클래스를 운영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개는 개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안 그러면 개도 외롭다. 개 역시 끊임없이 타자와 연결되고 소통해야 한다.

개들을 통해 내가 배운 것
 
이모를 좋아하는 해탈.
 이모를 좋아하는 해탈.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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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사회화 시기에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람과 개들을 많이 만나게 해준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산책하고 대인·대견 사회성을 위해 반려견 운동장에도 갔다. 복주는 7개월령 12kg일 때부터 반려견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고, 해탈이는 2개월 3kg일 때부터 운동장에 다녔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개들에게 꽤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대부분의 개들이 어린 개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짐승의 세계는 야만적이라 약하고 어린 개체는 사정없이 물고 뜯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도베르만 같이 덩치가 큰 친구들도 어린 개랑 놀아줄 땐 힘을 조절했다. 또 어쩌다 큰 개가 해탈에게 과격하게 대해 해탈이가 괴로워하는 것 같으면 옆에서 지켜보던 개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들을 뜯어말렸다. 덩치 좋고 힘센 개도 작은 개한테는 전혀 위협적으로 굴지 않았다.

신기했다. 자주 가는 동물병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퍼피들 입 근처에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냄새가 나는 개는 다른 개들이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개가 자라면서 입 주변의 아기 냄새가 사라지면 사정을 안 봐준다고 한다. 해탈이도 그랬다. 그 전엔 뭔 짓을 해도 너그럽게 봐주던 개들이 해탈이가 5개월이 넘자 절대로 봐주지 않기 시작했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금수나 짐승이라고 부르는 개들이 약한 개체를 돌보는 규칙을 지키며 산다는 게.

그간 개들을 훈련시키며 나 또한 배운 게 많다. 그중에 상대의 입장을 깊이 헤아려 보는 일도 있다. 나와 종이 다른 생명과 가족이 되면서 나는 인간의 머리로 개의 행동을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처음엔 밖에서 노는 개들이 조금만 더러워져도 질색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개들이 앓는 대부분의 피부병은 자주 씻겨서 생긴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목욕도 잘 안 시킨다. 또 개들이 뭘 먹든 내버려 둔다. 풀을 뜯으면 뜯는 대로 벌레를 먹으면 벌레를 먹는 대로 둔다. 물론 해충약이 뿌려진 화단은 조심한다.

나는 우리 개들이 나랑 나란히 발맞춰 걷는 걸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 가서 퍼레이드를 할 생각이 없다. 다만 나는 우리 개들이 나와 산책하는 걸 즐겼으면 좋겠다. 개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 내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이웃과의 공존을 위해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들만 제지한다.

어느덧 개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만으로 2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서로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안다. 여전히 서로에게 맞춰가고 있지만 개들도 나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개를 돌보는 데 있어 이제 큰 품이 들지 않는다. 요즘은 개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하고 좋다.
 
2개월 무렵의 복주.
 2개월 무렵의 복주.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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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문 : 최민혁 훈련사(도그라피 대표)


태그:#유기견, #우울증환자, #반려견, #진도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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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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