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4 08:46최종 업데이트 23.03.14 08:47
<조국의 법고전 산책>(조국 지음)을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15권의 고전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와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최우수상(청소년)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담 너머로 야구 경기를 지켜보는 어른 한 명과 아이 두 명이 있다. 어른은 키가 커서 담이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키가 큰 아이 한 명은 까치발을 들면 겨우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키 작은 아이는 담 때문에 야구를 볼 수 없다.

이때 발 받침으로 쓸 수 있는 상자 3개가 있다. 세 사람에게 상자를 한 개씩 나누어주면 '공평'이고 어른에게는 필요 없는 상자를 키 작은 아이에게 주면 그 아이는 상자 2개를 쌓을 수 있어서 결국엔 3명 모두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다. 이것을 '공정'이라고 한다. '공평'과 '공정'의 차이를 단지 만화 4컷으로 표현한 작가를 보며 천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법'은 공평해야 하나 공정해야 하나? '법은 모순되지 않고 일관되어야 한다'라는 말에는 공평이 어울린다. 또한, '법은 변화하는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 유연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정이 어울린다. 결국 내가 이해한 법은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내게 법이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기준 하는 경계선이었다. 그 선을 벗어나는 경우 처벌을 받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단체, 단체와 단체 간의 분쟁 시 객관적인 사회적 규범을 적용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법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에게 법이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 같은 존재였다. 

나는 어떤 가설에 대해 이론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맞아떨어져야 이해가 간다. 그래서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수학이 좋다. 하지만 '법'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판결은 늘 같지 않았다.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 판단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빗나가는 결과에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던 차에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접하게 되었고 많이 망설였다.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책을 펼치면 완독해야 한다는 나의 소신 때문일 것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접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다행히 과학을 좋아해서 <코스모스>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은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 보였다.

수학보다 영어와 사회가 더 힘들었던 나에게 책의 표지는 영어원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된다는 머리말의 유혹과 어? 안중근 의사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찰나의 호기심은 결국 나의 소신을 지키게 하였다.

내가 몰랐던 법 이야기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이은영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그동안 몰랐던 법에 대한 상식이나 철학자들의 가치와 이념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10장에 걸쳐서 15권의 법고전에 담긴 중요한 핵심이 소개되어 있다. 인용한 구절을 설명해주는 저자의 친절한 해석과 장이 끝나는 부분에 '청중과의 대화'를 실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법이란 그저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규칙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범하는 경우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시스템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전이 전해주는 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의롭고 명쾌했다. 내가 알고 있던 우물 안의 법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권리, 공정, 상식, 책임, 의무, 용기, 양심 등 모든 정의가 들어 있었다. 

평소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내게 장 자크 루소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다. 정치를 외면하는 순간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란, 덜 나쁜놈을 고르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신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루소의 철학은 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된 역사적 사건 '프랑스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치의 전환점이었다. 군주제의 전복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원칙에 기초한 그 중심에 <사회계약론>이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쓴다.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권력이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삼권분립이라는 균형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그저 외우기만 했었는데 왜 권력이 분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었다.

몽테스키외는 권력이 한 곳으로 모이면 자유는 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로 충분할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로 삼사가 존재했던 걸 보면 조선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뉴스를 보면 끔찍한 범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뉴스들의 댓글들을 보면 너무 폭력적이다. 형벌이 가볍기 때문에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벌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김없이 법고전이 해결해 준다. 물론 고전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이미 몇 백년 전에도 같은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재밌는 것은 당시 사상가나 철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했다는 점이다. 루소는 사형제도를 찬성했으나 베카리아는 잔혹한 형벌은 범죄예방을 위해서 효과가 없다고 말하면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의 형벌이 지금보다 훨씬 잔인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형벌의 잔혹성과 형벌의 확실성에 대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때 내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설명해준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히게 되고, 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형벌의 확실성이었다. 

초등학생 때 법원에 가서 재판 중인 현장을 직접 견학한 적이 있다. 재판장이 들어오면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모습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재판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음주운전자도 보았다. TV에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보니 법원이 무서웠고 '법복'을 입고 있는 판사는 더 무서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은 불공평 하다는 것을 말이다. 음주운전을 해도 모두가 똑같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판사의 재량인 것 같다. 본문에 변호인이 피고인에게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은 삼가라고 한 대목은 판결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증거이겠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한다고 하면 허리를 깊게 숙이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형벌의 확실성도 중요하지만 형벌의 공평성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보면 볼수록 흥미롭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지식을 바로 잡아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유명한 명언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배심원들에게 절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낸 인용문을 보면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편견이 하나 있었다. '독재는 나쁘고 민주주의는 좋다'라는 이분법이다. 이 책은 그런 흑백 논리로 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독재정치에서는 믿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미국의 해학가 '에반 에사르'의 말처럼, 그동안 나는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당연히 좋고, 민주적인 절차를 부정하는 독재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처럼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했다. 

사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재자의 최후는 항상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권력을 좋은 곳에 쓰면 그 사회는 더 발전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도 군주제의 왕이었으며 그리스의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 또한 독재정치를 하였다. 하지만 그 지도자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선의의 독재가 있었기에 최고의 문자 '한글'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독재란 '칼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칼의 용도가 바뀔 뿐이다. 요리사의 칼은 맛있는 음식이 되지만 범죄자의 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의로운 한 사람의 독재가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민주주의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다다익선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으며,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의 희생양인 것 같다. 

나에게 자신감을 주는 책
 

존 스튜어트 밀 ⓒ 오마이북

 
지금까지 살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고정관념이나 편견, 그리고 선입견들이 오히려 나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 특히 다수의 힘을 믿던 나는 설령 내 의견이 다수와 다르면 주장하지 않았고 고집이 세다는 말이 듣기 거북해서 남들의 방식을 따라가기 일쑤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런 나에게 힘을 준다. "소수가 다수에게 고개를 숙일 때 가장 무력하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막을 때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라는 문구는 내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주는 듯했다. 우리는 네가 뭘 알아? 그런 법이 어딨어?라며 논쟁을 벌이곤 한다.

소로는 주변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말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고 한다. 더불어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에서는 자주적이고 주체적 인간이 되라고 한다. 누가 뭐라 하건 관습을 따르지 말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고 한다. 다수의 생각이 주는 압박에서 해방되라고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유론>은 내가 가지는 생각이 설령 잘못됐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일지라도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은 강도질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말이다.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제각기 뻗어 있는 나무들 때문이며, 찬란한 우주는 모양이 다르고 각기 다른 빛을 내는 별들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다르듯이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생각이 비슷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는 그런 편협적인 삶 말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열린 마음이 진정한 자유인 것 같다. 

선입견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선입견이 없으면 수학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젠 알 것 같다. 수열의 규칙성은 무조건 a나 n의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훨씬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가우스의 <수열의 합> 규칙처럼 말이다.

이 책은 나에게 자신감을 준다. 그동안 다수의 의견에 손을 들었다면 이제는 내 소리가 작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의 마틴 루서 킹 목사 그리고 안중근 의사 등 정의를 위해 용기를 냈던 그분들도 결국엔 고전의 위대한 사상이 영감을 준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억압에 반대하는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훨씬 컸으며 한,중,일 3개국이 동양평화를 위해 공동은행과 공동화폐를 제안했다는 내용을 보고 나무가 아닌 숲을 봤던 그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다. 불법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 왜 일본은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는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칸트에 따르면 1910년 한일병합조약은 무효라고 한다. 철학자들이 정치를 했으면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질 것 같다.  

정부의 무능이 극에 달해 견딜 수 없을 때 거기에 충성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혁명의 권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혁명에도 권리가 있었다니. "국가가 무법적이거나 부패해졌을 때 시민 불복종은 신성한 의무가 된다"라는 구절에서 성숙한 방법으로 정권을 교체한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하고 신성한 의무였다는 것 알게 되었다. 

망설이다가 읽은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만약 보지 않았더라면 후회할 뻔했다. 여기서 소개된 책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읽어보기로 했다. 특히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당장이라도 도서관에 뛰어가서 빌려보고 싶은 책이다.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여인 '안티고네'가 동생 '이스메네'에게 전하는 말 중 "인간의 법만을 생각하고 신의 법은 아랑 곳 하지 않구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구절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비인간적인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안티고네의 양심은, 설령 정의와 불의에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온다 해도 그녀의 도덕적 행동과 용기를 떠올리면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 역시 '선한 사람은 정의롭다'라는 말이 맞다. 오랜만에 가슴이 찡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법의 정의를 알게 해주었다. 단지 사회적 기준을 정해놓고 벌을 주는 단순한 규칙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원초적 힘 '권리'를 가르쳐 주었다. 아직 책의 내용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배웠다.

법 고전은 모순된 사회를 각성시키고 국민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침서다. 더불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정의롭고 공평하게 죄의 무게만큼만 판결을 내려야 한다. 눈을 가리고 저울로 판결을 내리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나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려준 망치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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