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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의 중앙에 위치한 도곡동은 오른편으로 대치동과 마주하고 왼편으로는 서초구와 맞닿아 있으며 위로는 역삼동이요 아래쪽으로는 개포동이 자리한다.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도곡근린공원(매봉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고급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다.

면적은 겨우 1.02㎢에 불과하지만 7개의 초중고가 밀집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 값이 비싼 곳 중 하나다. 남으로 양재천이 흐르고 있어서 작은 규모의 배산임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산책길은 2군데로 나눠지므로 아래 지도를 보고 취사선택하면 되겠다.
 
도곡공원에서 시작하는 말죽거리공원과 달터공원 산책길.
▲ 도곡동과 양재동, 개포동 산책 코스. 도곡공원에서 시작하는 말죽거리공원과 달터공원 산책길.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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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도곡근린공원을 기점으로 하여 양재천을 지나 달터근린공원으로 한바퀴 돌아오는 루트이며 두 번째는 말죽거리공원으로 올라 매헌시민의숲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나즈막한 동네 야산이므로 부담없이 걸어볼 수 있어서 좋다.

산책의 출발은 3호선 도곡역 1번 출구로 나와 역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약 300미터 진행하면, 도곡렉슬유치원 바로 못 미쳐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보면 매봉근린공원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에 이른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으므로 동네 주민들만 알고 있는 소로길이다.
 
노을빛이 돌탑을 물들여 제법 운치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 도곡근린공원의 돌탑. 노을빛이 돌탑을 물들여 제법 운치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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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정자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아이들 놀이터를 거쳐서 정상으로 향한다. 산마루에는 각종 운동기구를 갖춘 헬스장이 있으므로 동민들이 소일거리 삼아 찾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해발 95미터의 나즈막한 높이라 장쾌한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황금빛 노을이 정상에 서 있는 돌탑을 물들이면 제법 운치있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3용 연결로를 타고 탈터공원, 구룡산으로

데크길을 따라 자분자분 걷다보면 어느새 양재 전화국 교차로가 나오고, 좌회전하여 매봉역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독골근린공원을 지나 대치중학교로 이어진다.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밀미리다리를 건너면 달터공원의 시작이며 평지에 솟아있는 아기자기한 야산이 생태연결로로 꾸며져 있다.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밀미리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 양재천 징검다리.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밀미리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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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바람다리에서 바라보는 개포지구대 풍경은 마치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을 보는 듯하며, 언주로를 건너서 뒤돌아보는 용이룸다리에는 억새가 바람에 한들거리며 지난 가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용오름다리를 가로지르면 구룡산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으며 본 연재 20화(윤봉길 의사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 여깁니다)에서 살펴본 산책길로 연결된다. 어느 다리에서 내려와도 길은 계속된다. 한창 공사중인 재건축지역을 따라 동진하면 구룡역의 달터근린공원(개포마을)에 접근할 수 있다.
 
구룡역 달터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 달터공원(개포마을). 구룡역 달터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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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 강남의 한폭판, 아직까지도 판잣집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곳이다. 개포고등학교나 개포도서관 옆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 공원을 가로지르면 구룡역이고 다시 양재천을 건너면 산책의 출발지인 도곡역.

두 번째 산책 코스는 도곡공원을 내려와 서초구청 방향으로 진행하여 말죽거리공원으로 오르는 루트다. 신분당선 양재역 9번과 10번 출구 사잇길로 들어서면 말죽거리공원의 시작이다. 양재역 네거리 한켠에 말죽거리의 유래를 설명하는 표석이 세워져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두어가지 명칭에 대한 기원이 있다. 우선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가 공주로 피난을 갈 때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고 하여 말죽거리가 되었다는 설. 제주도에서 온 말을 양재에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으며 남쪽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기에 유래했다는 이야기.
 
대나무숲을 조성하여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다.
▲ 말죽거리공원. 대나무숲을 조성하여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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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공격하면서 병참기지로 사용하였기에 붙여진 명칭. 어떤 지명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교통의 요지이면서 말과 관련된 거리임은 분명해 보인다.

모리배들의 이전투구로 나라를 팔아먹다

인조반정 후 정묘호란이 발발하고 강홍립이 수완을 발휘하여 조선과 후금(청나라)이 '형제의 나라'로 화의가 이루어진 역사는 본 연재 37화(난초골 따라 생태공원 탐방해볼까?)에서 살펴봤다. 반정을 획책한 53명의 서인 중에 이괄(李适)은 논공행상에 유독 불만이 많았다. 이를 빌미로 여러 모리배들이 이괄에게 반란 혐의를 씌워 제거하려고 한다.

당시 만주에서는 후금이 급격하게 세를 불리는 때였기에 인조 임금은 북방 경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이괄을 부원수 겸 평안 병마절도사로 임명하여 국경 수비의 중책을 맡겼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문회(文晦)와 이우(李佑), 정방열(鄭邦說), 이귀(李貴), 허통(許通), 최명길(崔鳴吉) 등이 합세하여 이괄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뒤집어 씌운다.
 
▲ 3용 다리 타고 달터마을 대나무숲 구경 가시죠 #42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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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그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서인들의 등쌀에 못이겨 이괄의 아들 이전(李栴)을 잡아들여 취조하기로 결정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괄은 아들이 잡혀가면 역모로 몰려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군사를 일으킨다.

거병한 지 19일 만에 한양 도성을 장악하니 인조는 공주산성으로 피신하고 뒤늦게 장만(張晩)과 정충신(鄭忠信), 남이홍(南以興)이 관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제압한다. 교전에서 패배하자 수하인 이수백(李守白)과 기익헌(奇益獻) 등이 이괄을 비롯한 반란 주동자 9명의 목을 베어들고 정부군에 투항한다.

이괄의 난은 삼일천하로 끝났지만 12년 후 병자호란의 원인이 된다. 반란군의 한 명이었던 한명련(韓明璉)의 아들 한윤(韓潤)이 후금으로 달아나 조선 침략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의 결과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였고 형제의 나라에서 '군신의 나라'로 굴복한다. 역사에 기록된 삼전도의 치욕이다.

태그:#도곡공원, #말죽거리공원, #달터공원, #이괄의 난,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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