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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의 중앙홀에는 관람자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디지털 실감 콘텐츠를 상영하고 있다.
▲ 춘천박물관 중앙홀 국립춘천박물관의 중앙홀에는 관람자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디지털 실감 콘텐츠를 상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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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연재하던 경기별곡 시리즈를 끝내고 다른 일에 치여 한동안 별곡시리즈를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대면행사와 강의, 방송활동도 서서히 재개되었고 필자 역시 무게를 억눌렀던 집필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또한 경기도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취재를 떠난다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두 배 이상으로 소모되므로 자비를 들어 프로젝트를 행하는 것도 나에게 큰 짐이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벗어나 그 고장에서만 살필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조명한다"는 별곡시리즈의 취지는 필자 평생의 큰 사명이라 놓을 순 없었다. 필자의 SNS와 이메일을 통해 다음 별곡시리즈는 어디가 될 것 같냐는 독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또한 고민이 많았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유적들이 골목마다 산재하고 있는 경주와 향토적인 서정이 있는 남도 또는 백제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공주와 부여 등 쟁쟁한 후보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남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을 재조명해 주는 취지가 아닐까? 경기도처럼 비교적 가까운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비록 휴가지로 강릉과 속초를 자주 떠난다고 하지만 강원도에 대해서 바다와 산 말고 뚜렷한 이미지는 없는 듯하다. 거대하지만 존재감은 미력한 강원도의 실체를 알기 위해 우선 춘천에 위치한 국립춘천박물관으로 떠나봐야 한다.

강원도의 독자성이 존재
 
강원도의 유일한 국립박물관인 이곳은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 국립춘천박물관 강원도의 유일한 국립박물관인 이곳은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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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춘천의 한구석에 자리한 국립춘천박물관은 발길 닿는 곳마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소양강 일대와 달리 조금은 한산했다. 조용히 유물들을 살피기엔 적당한 분위기다.

춘천박물관은 주차장에서 복합문화관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본관으로 들어가는 동선이라 효율적이진 않지만 본격적인 관람 전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기엔 제격이다. 야외정원을 거쳐 본관으로 가는 도중 시원하게 펼쳐진 전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음을 제법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박물관은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1, 2층에 걸쳐 상설전시를 보여주고 관람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중앙홀에는 디지털 실감 콘텐츠를 통해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강원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관동팔경과 금강과 설악의 풍경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춘천박물관이 자랑하는 국보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한국의 석불로 드물게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다.
▲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춘천박물관이 자랑하는 국보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한국의 석불로 드물게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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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의 허파라 할 수 있는 강원도의 역사는 중앙에서 조금 소외되었지만 독자적인 영역이 존재했다. 그 시작은 신석기다. 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의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8천 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다 보니 신석기 시대 토기는 지역별로 다채로운 형태와 무늬를 선보인다. 한반도를 대표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지만 강원도에서는 '덧무늬 토기'가 대표적이고 동해안 지역에서만 확인된다.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 계급의 분화에 따라 화려한 장신구와 무기류를 심상치 않게 보게 되는데 강원도 비파형 토기 역시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지금의 레고랜드가 위치한 중도에서는 청동기, 초기철기 시대 대규모 촌락 유적이 발견되었다. 특히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호(해자)의 길이가 800미터이고, 이 지역에서 발견된 토기는 '중도식 토기'로 명명되어 한반도 중부 지역 원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유적 대부분이 춘천, 강릉, 원주 일대라 이 지역이 예전에도 살기 좋은 고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동예라는 부족사회 집단이 삼국시대 중기까지 독자적인 정치체를 형성하며 존재했고, 영서지역은 따로 맥국이라 불리며 고유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후에 신라에 의해 복속되며 동해안 지역은 화랑들의 유람처로 각지에 전설과 설화를 흩뿌리며 수양을 이어갔다.

박물관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
 
창령사터 오백나한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일정한 기간마다 다른 컨셉으로 배치가 바뀐다. 일종의 설치미술이다.
▲ 창령사터 오백나한 창령사터 오백나한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일정한 기간마다 다른 컨셉으로 배치가 바뀐다. 일종의 설치미술이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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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후에는 자장대사가 중국의 문수신앙을 신라에 가져와 오대산 신앙으로 발전시켰고, 의상대사는 양양 낙산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였으며 표훈은 담무갈보살이 금강산에서 1만 2천 권속을 거느리며 살고 있다고 믿으며 강원도를 점차 불국의 땅으로 물들게 만들었다.

신라 화랑과 불교의 발자취는 후에 관동팔경으로 정착되어 긴 역사만큼이나 시인들이 남긴 수많은 문학의 자취들로 이 고장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강원의 영동과 영서는 신라시대 명주(영동), 삭주(영서)로 나뉘었고, 특히 원주는 신라 5 소경의 하나인 북원경으로 번성을 누리었다.

강원도는 오대산, 금강산, 낙산 등 불교성지가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보살상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다. 춘천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역시 한송사 터에서 발견된 문수보살상이다. 국보로 지정된 유물이라 널찍한 공간에서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다. 돌사자를 타고 있는 흰색의 문수보살상은 인자한 미소를 띠며 여유 있는 자세로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흰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보살상은 강원도 일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강릉 한송사지, 평창 월정사가 대표적이다.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견된 오백나한 석상은 각기 개성이 살아있다. 우리의 모든 표정이 바로 여기에 녹아들어간 듯 싶다.
▲ 개성있는 표정이 살아있는 창령사터 오백나한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견된 오백나한 석상은 각기 개성이 살아있다. 우리의 모든 표정이 바로 여기에 녹아들어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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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춘천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유물은 브랜드실에 전시되어 있는 '창령사터 오백나한'이다. 하나하나를 살펴보자면 단지 조그마한 민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인물의 표정들이 제각기 개성이 살아있다. 얼굴 하나하나를 쳐다보면 우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일정한 기간마다 설치 작가가 주제를 정해서 일종의 설치미술처럼 보살상이 하나의 오브제로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박물관을 가봤지만 이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나는 유물의 활용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강원의 역사와 문화를 압축적으로 살펴보고 거대한 이 지역에서의 여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온 것 같다. 다음화부터 원주를 시작으로 기나긴 별곡시리즈를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경기별곡 시리즈 1, 2권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3권도 곧 출판 예정입니다. 기고, 강연 ugzm@naver.com


태그:#강원도, #강원도여행, #운민, #강원별곡, #경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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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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