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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대학에 입학하고 첫 수업하는 날이었습니다. 혼자 가도 된다는 딸의 말에도, 저는 부득부득 학교까지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각을 하지 않는 게 평소 습관인 딸이지만, 첫 학교 가는 길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을 심산이었습니다.

딸은 제 바람대로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서울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방대학입니다. 제가 사는 제주가 지방이니 지방대라고 하는 게 당연히 맞는 명칭이겠네요.

딸이 처음부터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진학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여느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새벽같이 학교에 가고, 밤늦게 돌아오고, 학원과 인강을 열심히 듣고, 원하는 인서울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인서울 중에서도 공연예술이나, 광고기획 관련 학과를 목표로요.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아빠의 진심
 
딸을 데려다 주는데 학교 정문에 입학식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입학식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제 대학입학식도 생각났습니다.
▲ 입학식 현수막 딸을 데려다 주는데 학교 정문에 입학식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입학식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제 대학입학식도 생각났습니다.
ⓒ 강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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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고백하건대, 저는 사실 딸이 너무 성적이 잘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딸이 원하는 인(In)서울이, 제게는 제 곁을 떠나는 탈제주(脫濟州)였기 때문입니다. 즉 저는 딸아이를 옆에 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비하게도 딸아이의 성적이 고만고만 딱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갈 적당한 점수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어린 초등학교때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수만 나오길 바랐습니다. 만약 엄청나게 공부를 잘해서 최상위권의 점수가 나온다 해도 가까운 대학에 그 점수에 맞게 가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저의 바람(?)대로 딸은 성적이 잘 나올 때가 내신 3등급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상담하러 갔을 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인서울,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다고 하셨고, 저는 그 말에 가까운 대학도 좋다고 했습니다. 저의 본심을 그때 처음으로 드러낸 셈이지요. 허나 저의 이런 본심을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 무던 애를 썼습니다. 중간,기말고사 망쳤다고, 내신이 3밑으로 내려간다고 엉엉 울던 딸을 달랬습니다.

"괜찮아. 다음 시험에 잘 보면 되잖아. 우리 딸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런 날은 딸에게 치킨 사주며 달래주었지만 사실 저는 비겁하게도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딸과는 다른, 오히려 엉뚱한 걱정을 했습니다. '헉! 수능성적이 너무 잘 나오면 어쩌지?'

수시에서 딸이 원하는 인서울 대학만을 지원하도록 했고, 다른 지역의 대학은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상향 지원만 했습니다. 딸도 동의했습니다. 딸도 인서울이 목표이지 탈제주가 목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3등급보다 떨어진 내신 때문인지, 수시 합격자 발표에서 두 군데 대학에서 예비가 걸렸지만 한참 뒷 번호라 딸을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실에서 공항이 보입니다. 비행기 타면 한 시간이면 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대학진학에 아주 만족합니다.
▲ 제주공항 풍경 거실에서 공항이 보입니다. 비행기 타면 한 시간이면 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대학진학에 아주 만족합니다.
ⓒ 강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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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저는 비로소 딸에게 우리 가족이 같이 살면서 가까운 대학에 다니면 좋은 점들을 얘기했습니다. 각시도, 아들도, 상심해 있는 딸에게 위로차 같이 거들었습니다. 다행히 딸은 워낙에 밝고 쾌할한 성격이라 실망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도 저는 딸에게 처음부터 인서울을 바라지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본심을 숨기고 말이지요. 이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딸은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었을지도요.

딸은 정시에서 군을 달리해서 가까운 대학의 두 학과를 썼고, 다 합격을 했고 그 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광고 기획 관련 학과를 등록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마침내 제 바람대로 가까운 대학에 등록을 하고 저는 "야호!" 하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날 우리 가족 치킨파티를 하면서 딸을 축하했습니다.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저에게 딸은 한 마디 했습니다.
 
"아빠가 무사 경 좋아하멘?" (아빠가 왜 그렇게 좋아해?)
 

사실 아들도 지방대 갔습니다. 아들은 딸보다는 공부를 조금 잘했습니다. 제주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모의고사를 보면 늘 1로 찍힌 등급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들에게도 이미 가까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카이 대학의 자랑스러움보다, 더불어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앞서 딸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아들의 경우는 쉽게 제 바람처럼 될 것 같았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 했으니, 가까운 교대로 가면 될 일이니까요.

아들은 첫 수능에서 실패했습니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안 나온 수능점수가 발목을 잡아 결국 재수를 했습니다.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난 후에도, 참 어이없게도 이따금 '점수가 엄청나게 잘 나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습니다.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첫 모의고사를 치른 후, 상담하는 날 선생님은 수시 쓰지 말고 아예 정시로 '스카이' 올인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맘속에는 이미 가까운 교대를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수시접수일에 아들에게 안전하게 하나 가까운 교대 쓰자고 했고, 아들도 동의했습니다. 재수학원에서는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그해 아들은 평상시 모의고사만큼 나와서, 정시에서 흔히들 말하는 스카이 갈 수 있는 수능점수가 나왔습니다.

아들은 담담했고, 수시에 지원한 가까운 교대에 합격하고 만족했습니다. 참 우습게도 솔직히 제가 한 편으로는 '스카이' 보낸 아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아주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단언컨대 아주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먼저 지방대에 보냈습니다.

벚꽃피는 순서로 지방대 소멸한다면?

요즘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지방, 그리고 지방대의 소멸위기를 말합니다. 특히 지방대의 위기를 말할 때 언론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순서로, 벚꽃 피는 순서로 비유하여 지방대의 존립을 거론합니다.

아! 언론의 예측처럼 그 말이 현실이 된다면, 이곳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핍니다. 그러면 아들, 딸이 다니는 대학교는 가장 먼저 소멸 된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제가 사는 제주도 소멸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요.
 
딸이 입학한 대학교의 벚꽃 가로수 길입니다. 벚꽃피는 순서로 소멸한다는 언론기사가 있는데, 마침 딸의 대학교 입구 가로수가 벚꽃입니다.
▲ 학교 입구 벚꽃 가로수 길 딸이 입학한 대학교의 벚꽃 가로수 길입니다. 벚꽃피는 순서로 소멸한다는 언론기사가 있는데, 마침 딸의 대학교 입구 가로수가 벚꽃입니다.
ⓒ 강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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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제주 사람들은 제주에 있는 대학교를 줄여 '제대'라고 합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제대로 보냈다"라고 하지요. 벚꽃피는 순서로 지방대가 소멸하는데, 아들, 딸 둘 다 '제대'로 보낸 저는 나쁜 아빠인가, 딸아이를 내려주고 자책이 들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우리가 늘 곁에 있어 좋다 하셨습니다. 가족은 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닮아 제 아이들을 곁에 두고 싶은 제 욕심이 과한 건가 생각했습니다. 꼭 아이들을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보다도, 저는 제 아이들이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제 아버지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같이 집에 사시는 이제 아흔 셋 되신 어머니가 늘상 하시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족영 먹엉 고늘게 싸라."(조금 먹고 가늘게 배설하라, 욕심부리지 말고 살라)

딸을 학교에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학교 입구의 가로수를 무심코 바라보았습니다. 참 우연인지 우습게도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가로수였습니다. 벚꽃 맛집으로 유명한 학교 가로수 길이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잠시 차를 세워두고 걷는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의 소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방대학,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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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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