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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역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노동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노(勞勞)간 비대칭 구조"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을 노동조합에 돌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열린 공무원 150명과의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산업현장에서의 불법 행위"를 지적하며 "폭력과 협박, 공갈이 난무하는 산업 현장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국민께 세금 받을 자격이 없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감'을 분명히 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의지'가 집중되는 곳이 '건설노조'다. 총대는 원희룡 국토건설부장관이 잡았다. 원희룡 장관은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 조폭"이라며 건설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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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노동조합과의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우군'은 <조선일보>를 선두로 한 '재벌신문'들이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 탄생의 공신이며, 윤석열 정부 '가짜 노동개혁'의 길을 뚫는 '선봉대'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건설노조=조폭' 프레임을 만들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보수신문은 연일 자극적 단어를 사용해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공격에 보조를 맞췄다. 이들은 "돈 내라" 조폭 같은 노조, '건달노조' 행패, 상납하듯 뜯기는 월례비, 조폭 그 자체인 건설현장 노조 횡포, 업체 "기사들 노조에 상납", 조폭들의 '삥 뜯기' 등 차마 지면에 담기에도 낯 뜨거운 '상스러운' 표현을 경쟁적으로 사용하며 건설노조 공격에 앞장섰다. 하지만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와 배경, 진실에 관심을 둔 언론을 찾기는 어렵다.

고용불안에 '늙어가는' 건설 산업

건설 현장은 '발주처→원청 건설사(종합건설업체)→하청 건설사(전문건설업체)→건설 노동자'로 이어지는 중층적인 하도급 구조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 따라 하청업체 이하의 하도급은 제한되나, 현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불법 하도급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건설 노동자의 고용불안, 저임금, 무리한 공기 단축에 따른 대형 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건설업은 50세 이상이 전체의 절반가량(49.6%)을 차지하여 고령화 수준이 높다. 2019년 통계청 건설업 조사에서 임시·일용직 고용은 86.7%였으며, 평균 근속기간 또한 1년 미만이 94.3%로 나타났다. 또한, 월평균 근로일수도 동절기 16.1일, 춘추·하절기 20.2일로 조사됐다.

현대건설 등 종합건설사는 다른 산업과 달리 생산 현장의 노무관리 체계가 없다. 채용(고용)은 대부분 인맥(84.7%)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인력관리(경력)와 체계적인 기술교육·안전교육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IMF 이후 우리나라 종합건설사들은 설비 투자 부담을 줄이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직접적으로 건설 공사에 참여하지 않고 '수주'만을 담당해왔다. 공시된 GS건설 <2021 사업보고서>에는 "건설사업의 경우 기타 제조업과 비교하여 생산 및 설비 투자가 필요 없는 수주산업"이라며 "전문 공사업체들과의 외주 계약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건설 산업 변화를 이끄는 노동조합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민주노총 결의대회’ 사전집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민주노총 결의대회’ 사전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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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보도(제804호)에 따르면 1950년대 초 독일 건설 현장은 "노동자로서의 마지막 정거장"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80% 이상이 정규직으로 사회적 명성과 고소득을 누리며 직업 전망도 밝고 숙련된 인력이 계속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노동조합이 있다. 독일의 경우 법적 재하도급 금지 규정은 없지만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정규직 고용 관계를 촉진하고 노무비 삭감을 억제했다고 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청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된 법 개정을 요구했고,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 시공참여자(위장도급) 제도 폐지, 퇴직공제부금 인상, 일용직 사회보험 실시, 임금직접지급제, 전자카드제 등을 통해 투명한 고용 체계를 만들고 있다. 물론 아직 과도기적으로 노동조합의 통제 밖에 있는 일부 현장에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이를 전적으로 건설노조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공사 기간 지연은 노조와 무관

정부와 건설 관련 협회는 "노조 때문에 공사 기간이 지연되고, 생산성이 낮아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사 기간에 미치는 중요 요인은 기후와 자재 수급, 공정관리, 지반 상태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 등 단체행동은 '업무에 차질을 주고 교섭력을 높여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설령 노조 활동으로 공사 기간에 영향을 받는다 해도 이를 노조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지난 8일 매일경제는 "부동산 시장의 극심한 자금경색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아예 사업이 중단된 PF(프로젝트파이낸싱) 현장이 전국에 최소 32곳이 있는 것으로 설문조사 결과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설문에 응하지 않은 업체들이 90%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수백 곳의 PF 사업장에서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예측했다.

대한건설협회의 <부동산PF 관련 건설사 애로 상황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공사가 중단·지연된 가장 큰 이유로는 자재수급 차질이 35%, PF 미실행 등 자금조달 어려움이 30%, 미분양·공사비 인상 거부 12.5%, 시행사 부도 등 기타 이유 10%로 조사됐다. 공사 기간 지연은 노조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월례비는 철콘협회가 독자적으로 결정... 건설노조와 무관

정부와 언론은 '월례비'를 건설 현장의 대표적인 불법 사례로 거론하고 있다. 월례비는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 급행료 성격의 성과급, 안전규정에 위배 되는 작업에 대한 사례비로 구성돼 있다. 타워크레인은 출근 전후 1시간씩 총 2시간의 연장근로가 필요하지만, 타워크레인 임대사는 연장근로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연장근로 업무를 주는 전문업체(철·콘연합회)가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O/T)을 월례비에 포함해 지급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타설 시 콘크리트 거푸집을 해체하려면 규정에 따른 양생 기간을 거쳐 철거해야 하나,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타워크레인을 동원해 앞당겨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위험작업비 명목으로 월례비를 지급한다.

건설 현장의 모든 작업은 타워크레인의 자재 인양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의 작업 순서에 따라 부문별 하청업체의 작업 기간이 결정된다. 당연히 어느 업체의 것을 먼저 인양하느냐를 두고 경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급행료 형식의 성과급이 월례비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월례비는 노동조합의 교섭 대상이 아니며 노동조합이 개입하지 않는다.
 
2018년 건설노조가 대한건설협회에 보낸 공문.
 2018년 건설노조가 대한건설협회에 보낸 공문.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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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월례비와 관련해 민원이 속출하자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월례비 전면 근절"을 결의했고 2018년 대한건설협회에 공문(문서번호 제18-034)을 보내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는 금품수수 행위와 관련해 건설 현장의 오랜 잘못된 관행을 근절시키고자 한다"며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금품수수 행위를 적발할 시, 법에 따른 처벌 조치를 진행할 것을 안내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들은 이 공문에서 "처벌받은 조합원에 대하여는 규약과 규정에 의거 노동조합의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통보했다. 건설노조의 이러한 요청에 관련 협회는 "독자적으로 월례비 지급을 계속하겠다"고 각 현장 소장에게 통보했다.

부울경철·콘연합회(아래 연합회)는 2019년 2월 3일 공문 <T/C 기사 기술료 등 지급 계획 알림>을 통해 "관행적으로 지급해오던 T/C기사 월례비(O/T 포함)가 법률적으로 지급해야 할 근거가 없고 주 52시간제가 정착되는 등 시대 상황이 맞지 않아 2019년 7월 1일부터 지급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나 "전국철콘협의회에서 2019년까지는 O/T 비용은 지불하도록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이 공문에서 "지역 건설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여 지급 중단 결정을 유보한다"며 "2020년 1월 1일부터는 매월 기술료 1백만 원에 O/T 수당으로 시간당 7만 원, 월 30시간을 상한으로 해 월 3백만 원까지는 지급할 계획"임을 건설현장 소장에게 통보했다.
 
 부울경철·콘협의회가 건설 현장 소장들에게 공문.
  부울경철·콘협의회가 건설 현장 소장들에게 공문.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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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적 하청 구조에서 발생한 월례비 책임을 노동조합에게 떠넘기는 목적은 '건설노조 약화'에 있다. 울산지방검찰청은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영장에 "커질 대로 커져 버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울경지부'의 위세를 잠재우고, 이들을 견제함과 동시에"라고 그 목적을 드러냈다. "'커져만 가는 건설노조'를 약화하기 위해 우리 법원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6일, <한겨레>와 한국산업노동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노동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에서는 "대기업-중소기업의 착취 문제 등 경제민주화는 손대지 않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오로지 노조에만 돌리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8년 이후 5년간 한국 사회의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기여한 것은 대기업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안정화 한국고용노동대학원 교수는 "임금 불평등이 노조보다는 기업 규모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노조처럼 집단적 이해를 형성하고 이를 조절하는 방식의 대안을 찾아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윤리헌장'을 통해 "대립하는 관점과 주장이 표출되고 조정될 수 있는 토론장을 제공함으로써 사회가 갈등과 이질성을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저널리즘의 원칙과 책무를 밝혔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나 갈등적 사안을 다룰 때는 다양한 입장을 두루 담아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과 관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의 윤리'는 지켜지고 있지 않다. '노동개혁'이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무엇보다 언론인의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하며 밝힌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언론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증진을 목표로 삼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윤석열정부, #노동개혁, #건설노조, #노조탄압,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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