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8 09:56최종 업데이트 23.03.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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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해법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일제 강제징용(강제동원)에 관한 굴욕적인 최종 입장을 발표한 6일 오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성의 표시를 운운했다. 모두 발언을 할 때는 "(외교부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해 왔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반쪽짜리 해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할 때는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을 합니다"라며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배상금 대신 기부금을 내거나 우회적으로라도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식으로 성의 표시를 하면 물컵이 더 많이 차게 되리라고 말한 것이다.


'반쪽자리 해법이 아니냐'는 질의는 적절치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외교장관 회담과 차관·국장급 회담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랬는데도 사과·배상 그 어느 것도 받아내지 못했다. 성의 표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외교부가 얻은 성과는 '반쪽'이 아니라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진 장관이 '앞으로 있을 일본의 성의 표시로 나머지 반도 채워질 것'이라고 답한 것은 '반쪽자리가 아니냐'는 그 질문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질의 응답 때 그는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사과라도 받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발언했다. 그간 일본과의 협상을 제대로 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성의 표시를 하라는 요구를 받은 쪽은 엄밀히 말하면 일본 측이 아니라 피해자 측이다. 외교부의 주된 설득 대상이 전범 기업이나 일본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교부는 일본의 사과·배상을 받으려 하기보다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성의를 발휘하도록 이들을 유도해 왔다.

한국 정부가 '배상 요구를 포기할 테니 성의 표시만이라도 해달라'고 수없이 요청했는데도 일본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일본 정부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한국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한·일 간 국력 차이가 아주 크지 않는데도, 그 정도 성과마저 얻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성의 표시 운운은 굴욕적이고 무책임한 협상을 가리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불과했다고 판단될 여지가 적지 않다.

성의 표시 운운하다가 뒤통수

이렇게 성의 표시를 운운하다가 국민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의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통칭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도 이런 양상이 있었다.

5·16 쿠데타 6개월 뒤인 1961년 11월 1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국빈 대우를 받으며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 역시 정상회담 직후에 성의 표시를 운운했다. 그달 12일 자 <경향신문> 1면 중간 기사에 따르면,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성의로 임하는 한·일 협상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가 관건적인 역할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대일 청구권을 다룸에 있어 뚜렷한 성의를 표시하는 경우"에 자신도 양보할 수 있다고 표명했다.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의 회담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며 청구권 문제에 관한 일본의 성의 표시를 요구한다고 말한 박정희의 이날 발언은 거짓말이었다. 이동원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에 따르면, 박정희는 일본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청구권 같은 문제 신경 쓰지 마시오. 그까짓 것 없어도 그만이오"라고 말해 좌중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성의 표시에 감동을 받은 일본 측은 "겸손하고 의외로 상식적이다", "겉은 예의바른 모습이지만, 속은 알찬 무서운 지도자다"라며 극찬했다.

박 정권은 국민적 저항을 무릅쓰고 한·일협정을 강행하는 1965년에도 계속 성의 표시를 운운했다. 식민 지배에 관해 일언반구도 없는 한·일기본조약을 가조인하기 이틀 전인 그해 2월 18일에도 그랬다. 그날 발행된 <동아일보> 1면 중간 기사는 그가 서울을 방문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을 만난 일을 이렇게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입장이 과거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온 사실을 상기시키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첩경은 일본 측이 이 점을 이해하여 먼저 손을 내밀어 한국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의 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명(椎名) 외상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이며 이를 위해 모든 성의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1961년 11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론에 보도된 박정희 발언과 실제의 박정희 발언은 크게 달랐다. 시나 에쓰사부로를 만난 자리에서 정말로 성의 표시를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한·일협정이 임박한 시점에도 그가 성의 표시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망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성의 표시 운운이 거짓이었다는 점은 유·무상 경제협력자금을 제외하면 식민 지배 배상금은 한 푼도 받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말로 하는 사과 표명마저 받아내지 못했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그러면서도 성의 표시를 운운하며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6일 박진 장관이 운운한 성의 표시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들을 기망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되 성의 표시는 받아내겠다고 장담했지만, 그나마 그 성의 표시도 받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성의 표시를 받아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말을 바꾼 셈이다.

한·일전 시구자로 나선 일본 총리

지금까지 나타난 것을 볼 때 윤 정권이 수행한 대일 협상의 결과로 일본이 확실하게 움직인 게 있다면, 오는 10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시구자로 나서게 된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윤 정부가 굴욕적인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기시다 총리가 한·일전 시구자로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 자민당이 반한 감정을 부추겨온 데다가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외교적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일전 시구를 던지는 것은 기시다에게 위험하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에 시구를 하게 된 것은 윤 정부와의 협상 결과에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시구는 윤 정부에 대한 감사 표시의 성격을 어느 정도 띤다. 징용 피해자 및 유족들을 억눌러준 데 대한 사의 표시의 의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 시구를 보도하는 <교도통신> 갈무리 ⓒ 교도통신

 

그런데도 기시다 총리는 한·일전 시구자로 선정된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한국이나 한·일관계를 배려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반한적인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WBC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소감 전문은 이렇다.
 
지금까지 수많은 명승부를 펼쳐온 일한전이라는 무대에서 사무라이재팬 여러분을 앞에 두고 시구를 하는 것은 대단히 영광입니다. 일본의 많은 분들이 일본 대표의 긍지를 가슴에 두고 싸우는 사무라이 재팬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공유하면서 이 명예로운 임무를 완수합니다.
 
빈말이라도 한·일관계 발전을 기원하지 않았다. 사무라이재팬이란 별칭을 가진 일본 대표팀을 응원한다고만 말했다. 일본 대표라는 긍지를 가슴에 품고 싸우는 대표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일관계와 관련된 자리인데도 '긍지를 갖고 싸우는'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을 위해 작은 마음조차 열어줄 여유가 없는 그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다.

윤 정부의 강제징용 협상이 제대로 진행됐다면,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쉽게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위와 같은 소감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한·일관계를 배려하는 말을 했을 수 있다. 일본 총리의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협상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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