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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패딩을 벗고 춘추복으로 바꿔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봄바람처럼 가벼워 보인다. 흰색 셔츠에 조끼를 받쳐 입고 가방을 멘 채로 웃고 떠들며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면서 동시에 '저 아이들의 꿈이 안전하게 지켜져야 할 텐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언제부터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다.

아이들이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2014년, 단원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대학 입시와 학업의 무게에 짓눌려서 등굣길엔 늦지 않으려고 전쟁을 벌였지만, 하굣길엔 달랐다. 그 시간즈음이면 안산 고잔동, 와동, 선부동 일대 거리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와 가벼운 발걸음 소리로 경쾌했다.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어느새 9년.

수학여행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던 아이들이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알고 싶어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2014년, 어렵게 어렵게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조사를 벌였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와 정부 고위직 인사들, 공무원 그리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까지 합세한 조직적인 방해 공작으로 결국 강제로 종료되어 버렸다.

2017년, 세월호가 3년 만에 인양되면서 출범한 선체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가지로 내놓았다.

2018년 말,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참사를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또한 침몰 원인과 구조 방기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종합보고서를 내놓고 종료되었다.

침몰 원인으로 외부 충돌 가능성이 있어 조사해 보았으나 외부 충돌 외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만큼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과, 구할 수 있었는데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아 30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국가 책임이라는 게 사참위 조사의 결론이다.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기자회견 팻말 사진
▲ 세월호참사 국가손해배상 승소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기자회견 팻말 사진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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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책임자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은 법적으로 청와대가 국가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실시간으로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했던 것처럼 국회에 거짓 답변서를 보내 허위공문서작성과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는 허위공문서작성과 행사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개인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파기 환송해 결국 무죄를 받게 했다.

개인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국회에 답변서를 보낸 것인데, 그걸 개인 생각으로 본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은 허탈함을 넘어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답변서 내용은 거짓인데 끝에 "생각한다"는 단어를 붙였으니 개인 생각을 말한 것뿐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어느 누가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거짓말한 김장수도, "국가안보실장은 안보·재난 분야별로 위기징후 목록 및 상황정보를 종합·관리한다"고 적혀있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삭제 선을 그어 수정하게 한 김관진도, 광주지검 수사팀에 '해경 상황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하지 말라'는 요지의 압력을 넣었던 우병우도, 123정장 수사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재검토하라고 압력을 넣은 황교안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보통 국민이 그랬다면 과연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권한이 막강할수록 책임 또한 무겁게 지우는 게 상식일 텐데 그런 경우는 본 일이 없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사진
▲ 기자회견 사진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사진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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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과실치사상과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123정장 김경일은 2심에서 1년이 감형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어 유일하게 실형을 선고 받은 해경 공무원이다. 2심과 대법원에서 1년이 감형된 이유는 "해경지휘부와 사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해경지휘부 11명의 재판에서 이 공동책임 부분이 반영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김문홍(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세월호참사 당시 지역구조본부,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함장) 두 사람에게만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대부분의 해경지휘부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최초 신고 이후 300명 이상이 탄 세월호가 40도 이상 기울었다는 내용은 9시1분에 해경 본청상황실, 9시 2분에 서해해경청상황실, 9시 3분에 목포해경 소속 3009함에 전파되었다고 알려졌다. 해상 수색구조 메뉴얼상 전복 사고 유형에 해당하므로 30분 안에 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 판단과 이에 따른 총괄·지휘가 있어야 했는데, 해경지휘부 그 누구도 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해경 지휘부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침몰의 급박성을 알지 못했고 구조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오인 가능성이 무죄 선고의 이유란다. 세상에나...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모두 살릴 수 있었는데… 그 오인으로 304명이 사망했는데…

서울 한복판 이태원 거리에서 159명의 희생자를 만들어 낸 이태원 참사는 참사 내용에서부터 참사 이후 정부가 수습하는 방식이나 희생자와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들까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게 없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길이 없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작년 11월부터 이 추운 겨울을 오롯이 분향소를 지켜가며 점부를 향해 호소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본인은 모르는 일이고 책임이 없다고 발뺌만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책임이 있는데 왜 하나 같이 본인 책임이 아니라며 모르쇠로 일관할까.
그건 아마도 책임지는 예를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버티기로 시간을 끌다 보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걸 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1953년 창경호 330명(당시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자가 '229명'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1970년 남영호 326명, 1993년 서해페리호 292명, 1994년 성수대교붕괴 32명,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1999년 씨랜드참사 23명,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192명, 2012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1700여 명, 2014년 세월호 참사 304명,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22명(실종), 2017년 제천 화재참사 29명, 2018년 밀양 요양병원 화재 45명, 2022년 이태원 참사 159명, 해마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어가는 산재 사망자 수백 명... 언제쯤 우리는 참사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조문 중이다.
▲ 이태원참사합동분향소조문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조문 중이다.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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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최순화 님의 글입니다. 최순화 님은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5반 이창현 군의 어머니입니다. 현재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의 대외협력부서장이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416합창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참사, #0416, #세월호, #4.16가족협의회, #책임자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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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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