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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가게 하다 보면 별 사람들이 다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을 땐 물건을 팔기만 하지 사는 일은 안 한다. 융통이 없을 뿐더러 속을까 봐 그렇다. 엄마는 지금까지 사기를 당한 적이 없다. 내가 당하는 편이다. 따지고 재고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당한다. 언제나 조금 아는 건 위험한 게 맞다.

"공장에서 만들다 재고 때문에 직접 팔러 다닌다"는 낯선 청년들. 시세보다 저렴한 이유를 설명한다. 엄마는 물건이 많이 있다며 거절했다. 청년들은 더 저렴한 값을 부른다. 구경이라도 하라며 애원하고 애교를 떤다. 나는 엄마를 쿡쿡 찔렀다. 사라고. 엄마는 웃으며 미안하다. 좋은 말로 청년들을 보냈다.

그들이 떠난 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안 샀어요? 싼데" 엄마는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잖아" 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싸면 되지", "싸다고 함부로 사는 거 아니다", "구경이라도 해볼 수 있잖아", "안 살 거면 뭣하러 구경해. 그 사람들 시간만 축나게." 엄마는 알지 못하는(뜨내기) 물건은 안 사는 게 좋다 했다.

엄마가 물건 사는 법
 
어느 날, 양복 쫙 빼입은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어느 날, 양복 쫙 빼입은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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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반대다. 나는 구경을 많이 하는 편이다. 사든 안 사든. 용달차에 매달려 이것저것 물어본다. 언젠가 뉴스로, 가구점에 들른 노부부가 두어 시간을 둘러보고 살듯 말 듯 시간만 끌다 그냥 가 주인이 화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노부부를 이해하는 편이었으나 댓글은 주인을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해줬더니 안 살 거면 시간을 뺏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구경하다 보면 살 수 있잖아 했더니, 살 사람 같으면 시간 끌지 않는다 했다. 철칙이다. 어쩌면 그게 판매자에 대한 예의인지 모른다. 쉽게 잊고 있는.

엄마는 이웃들 농산물은 시세보다 비싼 값에도 말없이 잘 샀지만, 낯선 이의 물건은 아무리 싸도 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복 쫙 빼입은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개업 이벤트로 음료를 대량 사면 파라솔을 준다고 했다. 엄마는 역시 적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런 엄마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파라솔에 혹해 있었고, 파라솔이 탐나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 깐깐한 척했다. 정 의심스러우면 전화를 해보라며 명함을 건넸다. 이렇게 까지 하는데 설마... 안 산다는 엄마를 설득하고 졸랐다. 엄마는 결국 이름도 생소한 음료를 대량 구매했다.

그들이 떠나자 뭔가 석연찮은 찝찝함이 밀려왔다. 음료수도 생각보다 비쌌다. 곧바로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자연스럽게 확인할 셈이었다. 없는 번호였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속았다. "엄마 어쩌지 거짓인가 봐" 하자 엄마는 웃으며 '그것 봐'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나를 안 말렸어, 끝까지 말렸어야지" 하며 되려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는, 딸이 모처럼 주장하니 믿어보고 체면 살려주려 했단다. 맙소사. 알 수 없지만 엄마는 그런 분이다. 절대 화내는 법이 없다. 아무리 알려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딸이 답답할 법도 한데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판매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 하셨다. 팔 때도 살 때도 을이다. 갑이었던 적이 없다.

양복 입고, 싸다고, 뭘 공짜로 준다고 하는 사람들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사는 법이었다. 엄마는 셈을 배우지 않아 구구단은 잘 모른다. 어쩌다 알게 된 사람은 어떻게 장사를 하냐며 묻는다. 거짓이라며 믿지 않는다. 엄마가 어떻게 셈을 하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계산기 사용은 잘 안 한다. 한다 해도 덧셈만 사용하신다. 모든 게 암산이다. 놀랍도록 신기한 생존 계산법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터득한. 요즘은 숫자가 헷갈리시는지 가끔 전화로 확인을 해오기도 한다. 가령 1,010,100 같은 금액은 몇 번씩 묻는다(일하나 공하나 이렇게 읽기도 한다)

그 후 나는 낯선 이를 경계했다. 손님도 마찬가지였다. 초면에 외상을 달라는 낯선 손님이 있다. 나 같으면 어림없겠지만 엄마는 대부분 수용했다. 시간이 걸려 애를 태운 적은 있지만 손님들은 어김없이 믿음에 보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근처 공사하러 왔는데 CD 돈을 못 뺐다. 외상을 주면 갚을 테니 일꾼들 간식을 달라'고 요청했다. 간식대가 좀 많았다. 나는 망설였다. 그러자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번호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손님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올지 모르는.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항상 손님을 대한다. 외지인이듯, 여행자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믿음. 해서 서운하거나 섭섭하게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나 같으면 안 됩니다. 하고 보내지만 여긴 엄마 가게다. 맘대로 결정할 수 없어 안에 계신 엄마를 찾았다. 엄마도 가격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작업꾼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고 난 다음에 나는 "엄마 저 사람은 좀 위험한 거 같은데 왜 줬어요?"라고 묻자. "아침부터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금방 갚을 거 같던 남자는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번호가 있는데 전화 한번 해볼까요?"라고 했지만 엄마는 하지 말라 했다. 좀 더 기다려 보자 했다. 떡 사 먹은 셈 포기할 때쯤 나타났다. 늦어서 미안하다 했다. 그는 사장이었고 그날 처음 동네를 방문하면서 가게마다 들러서 부탁했으나 아무도 물건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가게인 우리 집에서 간식을 살 수 있었다며 고맙다 했다. 이제 본격 공사가 되었고 끝날 때까지 거래를 하고 싶다 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손님과 거래를 트기도 했다. 엄마는 사람은 믿지 않았지만 손님은 믿었다. 그 믿음이 가게를 지속하게 할 수 있게 한 힘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못한다. 식당 개 3개월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나는 30년이 넘어도 선악을 구분하는, 제대로 된 안목조차 키우지 못했다. 여전히 좁다. 멀리 보지 못한다. 성질나면 티를 낸다. 진상 손님이면 표정에서 가라고 소리친다.

엄마는 그런 나를 오히려 이해 못 하는 사람처럼 타이른다. "도대체 왜 화가 나는 거지? 장사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건데 그걸 못 참고 이해 못 하면 어쩌니" 결국, 엄마와 장사를 같이 해보자는 후계는 이렇게 멀어졌다.

손님을 향한 엄마의 믿음
 
신종 먹튀에 엄마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엄마의 무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신종 먹튀에 엄마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엄마의 무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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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에게 최근 신문명을 하나 알려드렸다. 가끔 계좌이체를 하겠다는 손님이 있는데 엄마는 안 된다며 돌려보냈다. 그때 내가 방법을 알려 줬다. 곧잘 써먹으셨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 갔을 땐 계좌이체를 안 받고 계셨다.

이유를 물었더니 보내는 척 휴대폰만 턱 보여주고 통장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글 모르는 걸 아는 건지 원. 그러셨다. 젊은이라 했다. 몇 번 속았다고 한다. 얼굴 기억하냐고 물었다. 기억한다고 했다. 젊은이들 신종사기로 식당, 택시 먹튀 한다더니 시골서도 그럴 줄이야.

평생 사기 한 번 당한 적 없던 엄마가 내가 알려준 신문맹에 사기를 당했다. 그로 인해 상처받은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다 당신이 몰라서 그렇다는. 평생 원망 않던 못 배움을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 엄마가 잘못한 거 아녀. 속인 놈이 잘못된 거지"라고 하지만 위로될 리 없다. 

신종 먹튀에 엄마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엄마의 무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속였다는 것. 속았다는 것에 상심했다. 먹튀는 몰래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쁜 행위다. 손님에 대한 엄마의 오랜 믿음을 무너트린. 모르는 게 많은 삶 속에 '글'도 수많은 모름 중에 하나일 뿐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닌데.

아무리 학벌 높고 많이 배워도 남 속이며, 옳은 게 뭔지 모르는 삶보다야, 글하나쯤 몰라도 정직한 삶을 사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은가. '가치'는 그렇게 부여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건 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도 나쁜 짓 하며, 악용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것이지.

한동안 안 나타나던 먹튀가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기억을 못 한다고 생각했을까. 말했냐고 물었다. 못했다고 하신다. 이유를 알 것 같다. 계좌이체는 안 된다 하니 그냥 가더란다. 그것만으로 됐다.

늦은 밤 홀로 가게를 지키는 엄마의 안위만 괜찮으면 된다. 배우지 못했기에 매사 조심한다. 아는 길만 걷는다. 당신을 속여도 악하게 갚지 않고 친절로 답한다. 조금 손해 보며 살아도 괜찮다 하신다. 건강하면 된다고. 늙어도 항상 예의 바른 엄마를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지는 삶이다.

태그:#손님, #믿음, #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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