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둥에서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자바 섬 중심의 욕야카르타에 도착했습니다. 과거에는 '족자카르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도시죠. 공식 명칭이 바뀐 지금에도 '족자'라는 명칭은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고요.

제가 굳이 먼 길을 달려 욕야카르타에 온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보로부두르 불탑을 보기 위함이었죠.
 
욕야카르타로 향하는 기차
 욕야카르타로 향하는 기차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자바 섬에 인류가 거주한 역사는 아주 깊습니다. '자바 원인(原人)'으로 불리는 원시 인류의 화석이 자바 섬에서 발견될 정도니까요. 여러 왕국이 자바 섬에서 생겨나고 몰락했습니다. 남아있는 비문과 외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6~7세기까지 여러 지방 정권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7세기경 자바 섬의 서쪽에는 힌두교를 믿는 순다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유사한 시기 바다 건너 수마트라 섬에서 불교를 믿는 스리비자야 왕국이 세워졌죠. 무역으로 성장한 스리비자야 왕국은 곧 자바 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불교가 자바 섬에도 들어왔죠.

스리비자야가 수마트라와 자바 서부에서 흥기하는 사이, 자바 동부에도 왕조가 세워집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마타람 왕국이죠. 수마트라, 자바 서부, 자바 동부에서 성장한 이들 왕조는 때로 서로를 정복하고 때로 화친하며 각축전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이 마타람 왕국의 수도가 바로 욕야카르타였습니다. 그리고 이 왕조가 남긴 거대한 유산이, 보로부두르 불탑입니다.
 
보로부두르 불탑
 보로부두르 불탑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보로부두르 불탑은 동서로 140m, 남북으로 140m의 정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원입니다. 아래부터 사각형으로 5개의 기단을 쌓았고, 그 위에 원형으로 3개의 기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73기의 거대한 스투파가 올려져 있는 구조죠.

탑은 그 자체로 수미산을 상징하고, 구조는 만달라를 형상화했습니다. 기단부에는 여러 부조를 새겨 두었죠. 가장 아래에는 세속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조가 있고, 그 위에는 석가모니의 전생과 현생을 그린 부조가 있습니다. 그 위에는 경전의 내용을 묘사했습니다. 이와 함께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습니다. 이 불상은 많이 파괴되거나 발굴 초기 약탈되기도 했습니다.

보로부두르 불탑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이자, 동남아시아 최고의 고고학 유적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학교에서 불교미술사를 배울 때면 언제나 봤던 작품이지요.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다른 형태의 불상이 배치되는 오방불은 시험기간이면 항상 암기했던 기억도 납니다. 손 모양만 보고도 어느 방향에 놓인 불상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지금 와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말이죠.
 
보로부두르의 감실과 불상
 보로부두르의 감실과 불상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거대하고 중요한 유적이지만, 사실 보로부두르는 오랜 기간 잊힌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욕야카르타를 수도로 했던 마타람 왕국은 곧 수도를 더 동쪽으로 옮깁니다. 도서부 자바와의 경쟁 때문이라고도 하고, 화산 활동에 따른 자연재해 때문이라고도 하죠.

서부 자바와 수마트라는 한동안 인도 촐라 왕조의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14세기 동부 자바에서는 마타람 왕국을 대체한 마자파힛 왕국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사이, 보로부두르는 정글 속에 묻혀 갔습니다. 존재는 알려져 있었지만, 이슬람 왕조가 들어서며 굳이 관리하거나 보호할 이유가 없는 유적이 된 탓도 있고요.

마자파힛 왕국은 한때 강성한 왕조를 꾸렸지만, 지방 술탄국의 성장으로 분열하며 몰락합니다. 수많은 술탄국이 수마트라와 자바 섬에 들어섰죠. 혼란의 와중에 욕야카르타에도 '욕야카르타 술탄국'이라는 지방 정권이 만들어졌습니다.

욕야카르타 술탄국은 네덜란드의 지배에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졌고, 네덜란드의 동인도 식민지는 영국이 대신 관리하게 되죠. 이때 자바 섬에 닿은 영국이 욕야카르타를 공격합니다. 성은 쉽게 무너졌습니다. 이 침공을 주도한 사람이, 후일 싱가포르를 세우는 스탬포드 래플스였습니다.

보로부두르가 다시 '발견'된 것도 래플스에 의해서였습니다. 현지인에게 보로부두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명령한 것이죠. 화산재와 밀림에 뒤덮여 있던 이 불탑이 완전히 발굴된 것은 20여 년이 지난 1835년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 전쟁은 곧 끝났습니다. 영국은 동인도 식민지를 네덜란드에 반환했죠. 네덜란드는 욕야카르타를 차지했습니다. 욕야카르타의 술탄은 명목상으로나마 남겨 두었죠. 식민 지배는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보로보두르 불탑의 상단부
 멀리서 보이는 보로보두르 불탑의 상단부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2차대전으로 일본이 패망하자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당시 욕야카르타의 술탄이었던 하멩쿠부보노 9세는 수카르노에게 독립을 지지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곧 네덜란드군은 돌아와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벌어졌죠. 독립파가 자카르타를 상실했던 1946년에서 1948년까지, 욕야카르타는 독립파 정권의 수도 역할을 해냈습니다.

독립전쟁이 인도네시아의 승리로 끝난 뒤, 욕야카르타의 술탄은 독립전쟁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았습니다. 욕야카르타 술탄국은 '욕야카르타 특별주'가 되었고, 술탄의 합법적인 지배권과 세습권을 인정받았습니다. 덕분에 욕야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현재까지 술탄이 남아 있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욕야카르타 술탄의 왕궁
 욕야카르타 술탄의 왕궁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보면 욕야카르타는 역사 속에 묻힌 도시입니다. 여전히 술탄이 행정권을 장악하고 또 세습하고 있는 땅이니까요. 천 년이 넘은 유적인 보로부두르 불탑을 곁에 두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욕야카르타가 그저 역사에 묻힌 화석은 아닙니다. 그곳에도 여러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내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사실 욕야카르타라는 이름에서, 보로부두르 불탑보다는 '욕야카르타 원칙'을 먼저 떠올리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2006년 욕야카르타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관련된 NGO와 법조계, 사회학계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성소수자 인권선언을 작성했죠. 그렇게 '욕야카르타 원칙'이 만들어졌습니다.
 
욕야카르타 원칙이 만들어진 가자 마다 대학교
 욕야카르타 원칙이 만들어진 가자 마다 대학교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이 선언문은 "모든 인간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관계 없이 모든 종류의 인권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문을 시작으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등의 개념이 국제적으로 명확한 정의를 갖게 되었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의 원칙을 천명한 중요한 선언이었습니다.

NGO와 민간 인사들이 모여 발표한 선언문이지만, UN은 이 선언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의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문을 기반으로 여러 지침을 만들어 각국에 하달했죠. 사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문제가 처음 쟁점화된 것도 이 선언문 때문이었습니다. UN의 지침에 따라 2007년 법무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들었고, 여기에 보수 교계가 반발하며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으니까요.

2015년에는 욕야카르타의 술탄이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현직 술탄이 퇴임하고 나면, 여성 술탄이 즉위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죠. 물론 세습에 의한 것이지만, 이슬람 국가로서는 꽤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욕야카르타 시내
 욕야카르타 시내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보로부두르 불탑은 욕야카르타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차량을 대절해 움직이죠. 하지만 혼자 여행을 다니는 저로서는 그 비용이 꽤 부담스럽더군요. 정보를 모아 대중교통을 통해 보로부두르로 향했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보로부두르의 모습은 역시나 아름다웠습니다. 멀리서 탑의 상층부가 보이는 순간부터 탄성이 나오더군요.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게 탑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습니다. 과거에는 탑을 등반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지되어 있더군요. 최상부의 스투파를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오히려 조용한 탑을 더 오래 볼 수 있는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제게 묻는다면, 저는 보로부두르 불탑보다는 그곳을 오가며 만난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문을 열고 달리던 작은 버스.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앉아있던 노부부.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여행자에게, 지나가는 학생에게 부탁해 통역까지 시켜가며 버스 탈 곳을 알려주던 터미널의 신호수. 고생은 좀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보로부두르를 오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욕야카르타는 오래된 불탑을 옆에 두고 아직 술탄이 지배하는 땅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에 묻힌 생기 없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의 원칙이 천명된 땅이고, 여성 술탄이 나올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것이 허락되는 이슬람 국가였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오래된 교과서를 다시 꺼내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다시 보로부두르 불탑을 본다면, 이제는 불상의 손모양 같은 것은 외우지 않아도 되겠죠. 대신 그곳을 오가며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역사의 도시에서,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밤 깊은 어제의 도시에서, 다시 동이 트고 내일이 만들어지는 경이로운 순간을 떠올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보로부두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