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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손바닥보다 커진 아이의 실내화
 성인 손바닥보다 커진 아이의 실내화
ⓒ 김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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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생 만 5세,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아이는 가정 보육을 마치고 유치원에 입학했다. 2년 전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활발했던 시기에 5개월가량 유치원에 잠시 다녀본 것을 제외하면 올 한 해 초등학교 취학 전 마지막으로 기관(유치원)에서 온전히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셈이다.

둘째 아이는 기관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이런 아이가 태어나겠구나 예상할 법한, 기질이 예민하지 않은 보통의 사랑스러운 어린이다. 이 아이의 가정 보육을 주장한 것은 온전히 주 양육자인 엄마의 선택이었다. 친정도 시댁도, 형제자매조차 그 누구도 가정 보육을 응원하는 이는 없었다. 육아의 힘듦을 알기에 그랬겠지만, 주 양육자로서 존중받지는 못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서는 둘째 딸의 서러움을 토로하는 성덕선(혜리)을 만나볼 수 있다. K장녀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서러운 건 삼 남매 중 둘째라는 말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그런 이유로 첫째 아이와 모든 일상을 함께 해놓고 둘째 아이는 순하다는 이유로 아침에 기관에 보내 오후에 만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먼 훗날 혹여 둘째 아이가 왜 본인만 기관에 다니게 되었냐고 물으면 "누나는 엄마랑 있고 싶어 했어", "누나는 예민했고 넌 순했어"라는 답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잘 되는 길인지 망하는 길인지 모르지만 다 같이 함께하자는 선택을 했다. 어쩌면 이런 심보였을지도 모른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내 자식한테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한다. 잘 커 줘서 고맙고, 엄마도 사람인지라 못 해준 게 떠올라서 미안하다. 둘째 아이의 유아기를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이 더욱 밀려온다. 바쁜 아빠를 대신해 평일에 혼자 미취학 아이 셋과 동물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항상 에너지 넘치던 녀석이 낯선 곳에서 보호자가 엄마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내에 잘 따라주던 날 아직 무척 고마운 기억이 남아 있다.

반면에 엄마와 그림책 한 번 보려면 20개월 터울의 누나와 여동생을 제쳐야 한다. 가끔 있는 요구사항도 막내를 수유하고 있거나, 첫째의 배변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느라 뒤로 미뤄지곤 했다. 어쩌다 엄마의 시간을 눈치게임으로 얻어내 무릎 위에 앉으면 여지없이 누군가 한 명 외친다. "나도! 나도!" 결국 그날도 무릎 위에는 두 명의 아이가 앉아 있었다.

여태껏 기관에 가도 좋고, 엄마와 집에 있어도 좋다는 불분명한 의견을 주었던 아이가 작년 겨울부터 달라졌다. 아이는 가정 밖 세상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유치원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더 이상 나만의 고집대로 가정 보육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실내화를 구입해서 준비해 놓고, 진심을 말할 때면 눈물부터 앞서는 엄마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지만 꼭 한 번은 해주고 싶은 말을 아이에게 건넸다.

"6살까지 엄마랑 모든 일상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 이렇게나 잘 커 줘서 고마워!"

도도한 표정으로 단답형 대답을 마친 아이는 오히려 유치원에 간다고 하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디데이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우리집 둘째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둘째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태그:#가정보육, #둘째,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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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며 일상을 보내고, 주로 세 아이의 육아를 하는 30대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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