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6 04:45최종 업데이트 23.03.06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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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편집자말]

김완병 박사와 참고래 골격 포본 2019년 12월 한림항 앞바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참고래(길이 12.6미터)의 골격 표본을 가리키며 제주 바다생태계의 오염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 황의봉

 
"새들에게 닥친 위험이 곧 제주 사람들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주 섬이 문명을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으로 변해가는 동안 곳곳의 생태 환경은 새들에게 위태로운 방향으로 치닫고 있어요.

새들뿐만 아니라 조간대의 말똥게, 곶자왈의 달걀버섯, 계곡림의 무당거미, 오름의 피뿌리풀, 습지의 참개구리, 윗세오름의 노루, 백록담의 암매 등 제주를 대표하는 동식물 자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특히나 제주 사람들도 변해가고 있어요. 제주의 원형이나 정체성을 지키기보다는 경제적 논리만 고집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제주도에 서식하는 조류 연구로 유명한 '새 전문가' 김완병 박사는 새의 서식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제주도 생태계는 그대로 사람들의 생존 환경과 직결돼 궁극적으로 제주도의 '평화'와 '공존'을 깨뜨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김 박사는 제주도 자연생태계가 날로 파괴되는 현실을 경고하는 다양한 집필 활동과 현장 해설, 강의를 펼치고 있다.
  

하도리 철새도래지 김완병 박사와 제주습지연구회 회원들이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새를 관찰하며 생태환경에 대한 현장 토론을 하고 있다. ⓒ 김완병

 
김완병 박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도가 공생의 섬이 되어야 하며, 자연의 평화협정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텃새인 섬휘파람새와 여름 철새인 두견이는 경쟁적 사이지만, 서로에게 치명타를 주고받지 않습니다. 뻐꾸기 종류인 두견이는 둥지를 틀지 않고 알 색깔이 비슷한 섬휘파람새의 둥지를 선호해 그곳에 알을 낳습니다. 섬휘파람새는 자기 알이 일부 희생되더라도 두견이를 키워내는 겁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자연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일종의 자연 평화협정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평화협정이 사람들의 이기심에 의해 깨지면 안 됩니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공생적 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 있어 새는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잣대이자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문천 습지생태계 탐방 김완병 박사가 제주습지연구회원들을 대상으로 제주 중문천에서 서식하는 조류와 습지생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완병

 
김 박사는 제주도라는 섬의 특성상 어느 한쪽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붕괴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주도는 바닷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해안 조간대(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지고 하는 지대)-연안 농경지-곶자왈과 오름-계곡-한라산 고지대로 이어지는 생태 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중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다른 쪽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등 균형이 파괴되면서 전체적인 생태계가 교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를 예로 들어볼까요. 다양한 새들이 다양한 장소로 와서 서식해야 생태계가 건강히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해안매립지가 늘어나고, 중산간에 많은 집들이 들어서고, 말 목장이 사라지고, 습지가 줄어들면 이런 환경에 오랜 기간 적응해왔던 새들이 다른 곳으로 몰리게 되겠지요.

다른 야생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새들이 바닷가의 어류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인공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드는 현상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건 건강한 먹이활동이 아니지만, 관광객이 보기에는 새들이 많아졌다고 긍정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해안 매립만 해도 알게 모르게 제주 바닷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주 바닷가에 나 있는 해안도로는 상당 부분이 매립지 위에 생겨난 것입니다."


바다 쓰레기 섬뜩한 사례
  

초등학생 탐조 프로그램 진행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에게 새의 습성을 설명하면서 탐조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 김완병

 
김 박사는 이처럼 생태 축이 무너져가는 현상은 기후 위기와 같은 자연적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영향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육상으로부터 해안 조간대로의 오염원 유입과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바다 쓰레기가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지에 관해 섬뜩한 사례도 제시한다.

"해안가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폐비닐, 폐그물, 폐유, 낚싯줄 등으로 인해 부패한 먹이를 섭취한 아비, 가마우지, 논병아리 등 해양성 물새를 비롯해 바다거북류, 상괭이(고래 종류), 남방큰돌고래 등이 희생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해상에서 좌초된 남방큰돌고래와 상괭이의 사체만 해도 매년 수십 마리씩 제주 연안으로 떠밀려 내려오고 있어요.

2년 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름다움 너머' 기획전에 등장하는 앨버트로스(비행이 가능한 조류 중에서 가장 큰 종류 )의 배 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채워진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생태예술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크리스 조던은 버려진 소비재 플라스틱들이 제주도는 물론 지구의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린 바 있습니다."

  
제주 생태계의 위기에는 외부로부터의 생물 종 이입도 한몫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1989년에 육지의 까치 46마리가 제주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섬에 까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까치가 길조라는 의식이 있어서 그해에 제주도에 '까치 보내기 운동'까지 전개하면서 육지로부터 들여오게 되었어요. 그 후 까치가 급증하면서 기존 토종 텃새들의 생태 공간이 줄어들어 입지 여건이 불리해지는가 하면, 농작물이나 전신주에 피해를 주고 있어 까치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멧돼지, 청설모,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블루길 등의 외래동물이 들어오면서 토착 동물 생태계가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수월봉 탐방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된 한경면 수월봉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해안 생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완병

 
겨울날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제주올레 21코스를 걷다 보면 이곳이 새들의 천국임을 느끼게 된다. 하도리∼종달리∼시흥리∼오조리∼성산리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매년 겨울철이면 철새들을 관찰하려는 조류연구사, 생태사진가, 탐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더욱이 이 일대는 제2공항 예정지와 인접해 있어 서식지 파괴 논란, 항공기와의 충돌 우려가 제기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이 일대의 연속적인 해안 조간대 연안 습지는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기도 합니다. 물새들의 먹이터와 휴식처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이동하는 철새들의 주요 월동지 및 중간 기착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하도리 창흥동 철새 도래지와 성산포 오조리 습지는 매년 수백에서 수천 개체가 찾아옵니다.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의 오리류와 왜가리 쇠백로 등 백로류, 아비류, 논병아리류, 가마우지류, 해오라기류, 물떼새류, 도요류 등이 우점종(생물군집에서 그 군집의 성격을 결정하고, 군집을 대표하는 종류)입니다만, 저어새를 비롯하여 흑기러기, 물수리, 물꿩 등의 희귀 조류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저어새의 이동 경로 추적이나 월동 생태 연구의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어요. 공항이 들어설 경우 철새들의 서식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는 '대체 서식지'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자연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즉 버드 스트라이크의 문제는 그 가능성을 예측할 수는 있겠으나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공론화 과정과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제주도의 자연 생태계 훼손이 초래할 어두운 미래를 경고하는 데 여념이 없는 김 박사는 흥미로운 비유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류세(人類世)와 인류세(人類稅)에 대한 견해도 그중 하나다.

"최근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다음에 인류세(Anthropocene)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류(Anthropo)와 지질시대 한 단위인 세(cene)를 합친 합성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루첸이 처음 제안해 과학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요. 크루첸은 산업혁명 이후 4차 산업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대기의 오존층이 심각하게 파괴돼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하는 등 지구환경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과도한 밀렵과 가축의 살처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플라스틱과 같은 분해되지 못한 쓰레기 더미가 특정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이동과 축적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 분해되지 못한 잉여물들이 새로운 화산을 만들고 있어 자연의 화산활동이 대멸종을 초래하던 시기와 달리 인류의 과소비로 대멸종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화산섬 제주도가 지질시대의 지층과 화석 그리고 인류세의 플라스틱층을 동시에 보존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자산을 보유한 세계자연유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민망한 일입니다. 제주섬은 새들도 동물들도 제주 사람도 이방인도 불편해하는 인류세(人類世)를 걷어차 버리고, 다 같이 부담하는 인류세(人類稅)를 받아들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쓰는 만큼, 먹는 만큼, 버리는 만큼, 누리는 만큼 상황에 따라, 비록 일부가 분노를 표출하더라도, 인류세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주가 최고의 관광 휴양도시로 변할수록
  

말과 황로의 공존 황로는 소나 말 등 대형 초식동물을 따라다니며 그 동물에 붙어 있는 파리나 메뚜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 김기삼

 
김완병 박사는 최근 한 칼럼에서 '한라산의 날'을 지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라산에서는 연초에 산신제를 지내고,1월 말에는 만설제, 5월 말에는 한라산 철쭉제를 진행하고 있다.

한라산은 새천년 들어 유네스코 협약에 의해 세계생물권보전 지역(2002년 12월16일)으로 지정됐고, 세계자연유산지구(2007년 7월2일)에 등재됐으며, 세계지질공원(2010년 10월 1일) 대표 명소로 인증받으면서 보편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한라산의 날을 지정하자는 것인데, 이와 관련한 행동수칙(?)이 눈길을 끈다.

"한라산은 어디에서 본 모습이 가장 위풍당당할까요. 한라산의 날을 지정하여 한날한시에 누구나가 동시다발적으로 한라산의 모습을 기록하는 순간을 상상해보았으면 합니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형제섬에서, 강정포구에서, 쇠소깍에서, 한마음초등학교에서, 교래 곶자왈에서, 수월봉에서, 평화로에서, 관탈섬에서 그리고 가슴 속에서도."

김완병 박사는 본업인 조류 연구와 자연사박물관 학예사 일뿐 아니라 제주의 환경문제와 관련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는 천생 제주 사람이다. 27년째 제주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비롯해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곶자왈사람들 회원, 제주생명의 숲 제주지부 정책위원,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 등 수많은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제주의 백로'라는 학술조사보고서를 펴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제주섬이 인간의 발길에 의해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들마저 안전하지 않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리고 제주가 최고의 관광 휴양도시로 변할수록, 지켜야 할 소중한 원판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질까 걱정한다. 먼 훗날 잃어버린 제주의 운명을 박물관에서 찾지 않길 빈다는 그의 말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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