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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는 제1회 여성노동영화제를 개최했다. 영화라는 콘텐츠가 지금처럼 많이 제작되지 않았고 볼 수 있는 통로도 제한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를 다룬 영화만을 모아서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성의 노동 현장, 여성 노동자로서의 고민, 현장을 바꿔 가는 투쟁 등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극영화는 전무했고, 외국영화들도 대부분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관심과 희귀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100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은 매회 거의 만석이었다. 영화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율은 주최자 입장에선 무척 고무적이었다.

우리는 영화제를 계속 이어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제2회 영화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1회 영화제는 그간 만들어졌던 영화들을 모두 모아 상영한 것이기에 영화제를 할 만큼의 편수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2회 영화제는 그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로 구성해야 했다. 영화를 찾기 무척 힘들었다.

여성노동영화제는 2회와 3회를 어렵게 어렵게 진행하고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여성 노동 영화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영상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진 상황 속에 여성의 노동이 일반화되기도 하였고, 이에 공감대가 넓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별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한국 사회의 참혹한 민낯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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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하였다. 영화는 대기업 통신사 하청 콜센터 실습생이었던 홍수연씨가 사망했던 2017년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서 사고사하거나 버틸 것을 종용당하다 세상을 뜨는 사건은 종종 발생해 왔다. 홍수연씨 사건은 지역에서 'LG유플러스고객센터 실습생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재발 방지와 회사의 사과, 산재 인정 등을 요구하며 싸웠고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근본적 착취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소희가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한 콜센터 노동 환경과 이를 둘러싼 학교와 부모, 친구들의 현실을 그려낸다. 실적을 압박하는 회사, 취업률을 달성해야 하는 학교, 학교와 회사를 믿을 수밖에 없는 부모, 실습을 나간 회사에서 그만두지 못한 채 노동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 그리고 해지 방어팀에서 매일 고객들의 날 선 목소리 앞에 회사의 규정과 방침을 되뇌어야 하는 소희의 일상이 펼쳐진다.

회사는 상담사들에게 전국의 모든 지점, 모든 팀을 상대로 콜 수와 방어율 경쟁을 종용한다. 회사는 '경청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즐거운 직장으로 고객 관점 상담'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실제 사건에서 회사가 걸어 놓았던 현수막이다. 회사는 인센티브를 걸고 노동자들에게 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유도하지만 정작 실습생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았다. 너무 금방 그만두기 때문에 한두 달 있다가 지급한다는 어이없는 핑계였다. 팀장은 당연한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소희를, 없이 살아 돈돈돈 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소희가 세상을 떠난 후반부는 형사 유진이 소희의 죽음을 둘러싼 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희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수치화된 그래프로 형상화되고, 실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회사는 개인별, 팀별, 지점별 실적을 수치화하고 경쟁을 요구했다. 학교는 취업률로 평가되어 이를 근거로 교육청에서 예산을 받아야 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정량화된 지표들로 가득 찬 경쟁 사회는 더욱 참혹한 민낯으로 드러난다.

청소년 노동자들이 실습이란 이름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곳은 언제나 하청의 하청이었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으로 가득 차 있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구조 속에 포획되어 있었고, 사회생활은 그런 것이니 버티라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한때 최고 실적을 올렸던 소희는 죽음 이후 돈만 밝히는, 일 못 하고 문제 많은 아이로 둔갑했다. 소희의 죽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버티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었다.

누구 하나 유진에게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다. 유진은 소희를 비난하는 교감에게 주먹을 날려 보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외쳐 보지만 대기업은 변호사들로 철통방어를 한다. 교육청은 자신에게 하달된 기준에 따른 업무 범위를 넘어서 일하지 않을 뿐이다. '경청과 배려'는커녕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노동 현장은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럼에도 유진은 부딪히는 모든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다.

"기준은 가장 여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연스레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떠올랐다. 은유 작가는 2019년 수많은 소희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르포를 펴냈다. 은유 작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지려면 여린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기준은 가장 여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 개인의 부족함으로 몰아버리면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정량화된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구조, 존중 없는 노동, 가혹한 이윤 추구라는 문제를 삭제한 뻔뻔하고 무책임한 외면이다. 그러면서 사회는 이러한 죽음을 밟고 유지된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고 증언한 <전태일 평전>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사고와 죽음은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다.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유진은 소희가 살아있을 때 마주쳤지만 인지하고 만난 일은 없다. 우리 역시 모두 어느 순간 수많은 소희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들 덕에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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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는 달라야 한다. 실습이 착취가 아닌 노동을 배우는 시간이 되도록.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배우는 것이 모욕과 폭력을 견디는 방법이 아니길. 실제 사건에서 지역의 공동대책위원회가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회사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 환경 개선을 이끌어내고 유족배·보상을 받아냈다.

현장실습제 폐지 요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현장실습 선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선도기업을 선정하고, 선도기업에 한해 실습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전주시감정노동자보호조례가 만들어졌다. 분노한 유진들이 행동하여 거둔 성과다. 우리 모두 유진의 무력감을 경험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유진의 분노에 공감하고 행동한다면 조금 달라진 세상에서 '다음 소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女性여성女聲'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여성노동, #여성노동영화제, #다음소희, #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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