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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카와 슌타로는 일흔 살 무렵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 벌써 반세기 넘는 동안/ 명사와 동사와 조사와 형용사와 의문 부호 따위/ 말들의 틈바구니에서 (중략) 저는 과거의 날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권위라는 것에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1952년 25살에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냈던 시인은 어언 60년이 넘게 시를 써왔고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 되었다.
시라는 것은 산문과 달라서,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여러가지 것을 동원해서 언어라는 놈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한 것을 시에 씀으로써 거꾸로 그 의미 이전의 세계를 만져서 느끼고 손으로 더듬어 ....... 존재 자체의 리얼리티같은, 뭔가 언어로는 도저희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 <시를 쓴다는 것( 2015 )>중에서 

시인이었지만 다니카와 슌타로는 '시'라는 장르에 천착하지 않았고, 시인의 감성을 살려 많은 일들을 했다. 명문으로 회자되는 만화 <스누피>를 번역하거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제가 등 여러 활동을 했고, 다양한 주제의 그림책에 글을 썼다.

그가 쓴 두 권의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대표 시인이 쓴 그림책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펼쳐낸 생각을 따라가노라면 굳었던 생각이 조금은 말랑말랑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심각한 주제, '죽음'을 통해 작가는 가장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죽음은 돌아가는 것
 죽음은 돌아가는 것
ⓒ 너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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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죽음, <죽음은 돌아가는 것> 

나이가 들어가며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와지게 된 시인이 본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인은 말한다. 삶은 곧 '죽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도정이라, 자신이 '시인'을 직업으로 삼은 그때부터 늘상 '죽음'은 배제할 수 없는 화두였다고. 그래도 나이든 시인이 말하는 죽음은 어쩐지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나의 간장이여 잘 있거라/ 신장과 췌장하곧도 이별이다/ (중략) 오래도록 나를 위해 일해주었지만 이제 너희들은 자유다/(중략) 너희들과 헤어져서 나도 몸이 가뿐해진다/ 혼만 남은 본래의 모습/(중략) 그렇다고는 해도 너희들이 없는 미래는 밝다/ 이제 나는 나에게 미련이 없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나를 잊고/ 진흙에 녹아들자 하늘로 사라지자 / 언어가 없는 것들의 동료가 되자. 
 - <안녕>

이런 그의 생각이 투영된 그림책은 어떨까? 너머학교의 생각그림책 시리즈  7번째 책인 <죽음은 돌아가는 것>에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2003년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서 입선한 가루베 메구미의 차분한 그림체으로 표현된 그림책은 다니카와 슌타로가 여든이 넘어 쓴 글이 실려있다. 그런데 정작 그림책 속 내용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경험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빌어 작가는 죽음을 사유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재가 되었어/ 할아버지는 이제 계시지 않아/ 하지만 안계신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돌아가신 분을 다시 집으로 모신다던가, 그리고 하룻밤을 함께 한다던가, 거기에 화장한 후 유족이 유골을 함께 수습한다던가 하는 장면은 풍속이 다른 우리에게는 이질감을 주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그런 '다름'을 지난 어린 주인공이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숙제인 것들이다.
 
죽음은 돌아가는 것
 죽음은 돌아가는 것
ⓒ 너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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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림책 속 주인공 소녀는 어쩐지 슬프지 않다. 사람들 역시 울기도 하지만 죽은 이와의 추억을 나눈다. 더 이상 안 계시지만 어딘가에 계시는 것 같다. 여전히 가깝게 느껴진다. 엄마는 네 마음 속에 있다 하시고. 아버지는 영혼이 우리 곁에 있다고 하시는데,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죽은 뒤의 일을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지만/ 실제로 어떤지는 아무도 몰라/ 그래서 죽는게 두려운 거야. 

그런데 작가는 우리의 두려움을 뒤집는다. '우주가 처음 생긴 순간에/ 에너지에서 물질이 생겨' 났듯이 죽는다는 건 '물질에서 벗어나/에너지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곳에 진짜 우리의 고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마치 공기 중 거품으로 변해가는 인어공주처럼, 그림책 속 할아버지는 삶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부유해 날아간다. 

다니카와 슌타로 자신이 말하듯 작가는 '언어'라는 고정된 틀 속에 갇힌 상념들을 풀어놓는다. 두려운 걸까, 끝일까, 슬픈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들에 대한 반문들이 '감정'에 휩싸였던 죽음을 구제한다. 

그가 세번 째 결혼했던 작가 사노 요코와 함께 쓴 <두 번의 여름> 속 문장이 죽음에 대한 그의 담담한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한 것이라 보여진다.
 
오히려 평화롭고 기분이 좋다. 살아 있을 땐 죽음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왠지 모르게 조급했지만, 죽고 나니 끝이 없어 마음이 느긋하다. (중략)현재뿐이다. (중략)시간이 진정으로 지금 이 순간만 남으니 무엇 하나 기대할 필요가 없다. 희망이 없는 대신 실망도 없다. 열광이 없는 대신 무료함도 없다.

이걸 종교적으로 '無'라거나 '空'이라 할 수도 있겠다. 죽음에 대한 군더더기를 떨치면 삶이 다가온다. 두려울 게 없으니 사는 동안 충실하면 그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림책은 어떨까? 다니카와 슌타로가 쓴 또 다른 그림책 <고마워, 죽어줘서>이다. 
        
나는 살아갈 거야, <고마워, 죽어줘서> 
 
고마워, 죽어줘서
 고마워, 죽어줘서
ⓒ 나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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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줘서 고맙다니! 그런데 제목만이 아니다. 첫장을 넘기니 소가 한 마리. 그런데, 다음 장, 선명한 붉은 색칠을 한 그림 옆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죽었어. 나를 위해'란다. 그러더니 '그리고 햄버거가 되었어'라며 아이가 김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맛나게 먹고 있다. 그리곤 '소야,고마워'. 민망하다. 직설적이기가 이를 데 없다. 다니카와의 글 내용만큼이나 쓰카모토 야쓰시의 묘사도 만만치 않다. 

육식에 대한 담론을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사서 요리해먹기 때문에 자신이 '식육'을 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지 못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책은 바로 '식육'에 대한 우리의 존재론적 현실을 가감없이 돌파한다. 돼지도 닭도 마찬가지라 하고. 정어리랑 꽁치랑 바지락도 우리를 위해 참 많이 죽었다니, 결국 우리의 삶이 다른 존재들의 죽음 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딱 꼬집어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참 불편한 그림책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죽어줘서
 고마워, 죽어줘서
ⓒ 나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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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먹지 말자는 건가? 그런데 좋다, 나쁘다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림책은 다른 이야기를 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죽을 수가 없어/ 아무도 나를 먹지 않으니까.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다. 다니카와 슌타로식 역설이랄까. 그의 시는 언제나 그렇다. 통념적 세상의 다른 면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아빠가, 내 가족들이 슬퍼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살아갈 거야.' 그것만이 아니다. '소의 생명, 돼지의 생명/ 나를 위해 죽은 다른 생물들의 생명까지/ 모두 다.' 내 삶의 몫이라고 그림책은 맺는다. 이보다 더한 삶의 당위가 있을까.

고마워, 죽어 줘서

다니카와 슌타로 (지은이), 쓰카모토 야스시 (그림), 가노 후쿠미 (옮긴이), 나린글(도서출판)(2017)


죽음은 돌아가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지은이), 가루베 메구미 (그림), 최진선 (옮긴이), 너머학교(2017)


태그:#다니카와 슌타로 , #죽음은 돌아가는 것 , #고마워, 죽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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