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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모습.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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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의 사임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정순신의 발목을 잡았다는 식으로 보는 듯하다. 누군가는 '연좌제'를 말하기도 하고 일각에선 "개인, 그것도 가족, 자녀의 사생활까지 검증 대상이어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그의 아들이 잘못했고, 징계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데엔 100% 이견의 여지가 없다. 강제 전학 아니라 더한 처분을 내렸어도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걸 이 사건의 전부로 봐선 안 된다.

이번 사건은 '검사 아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 검사'의 문제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이렇게 보아야 제2, 제3의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검사 부모' 세대의 시각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더러우니까 꺼져", "넌 사료나 처먹어야 한다", "넌 (돼지니까)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돼지는 가만히 있어", "좌파 빨갱이"... 

법원 판결문 등에 등장하는 정순신 아들의 폭언 내용이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교사인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심한 말을 지속적으로 계속했다는 것이 놀랍고, 최소한의 형식적 사과조차도 회피한 것도 놀랍다. 이 아이가 원래 나쁜 학생이라서 그런가, 피해자 학생의 말처럼 '악마(惡魔)'라서 그런가?

학생들 사이에서 외모나 생김새, 신체적 특징을 이유로 특정 동물에 비유하는 별명을 부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어른들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사람을 이렇게 동물에 비유하는 것, 특히 그것이 대체로 상대에 대한 비아냥, 조롱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도 잘못된 일이었고, 지금도 잘못된 일이고, 앞으로도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인권감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매우 취약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잘못된 관행이다.

그럼에도, 단순히 이런 동물 별명 부르기 사건이라면 학생을 강제전학 시키지는 않는다.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돼지에 빗대어 부른 것은 단순히 외모에 대한 비하 의미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 자체로도 심각한 인권 침해이고 잘못이지만, 난 더 큰 구조적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해 학생 개인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피해 학생은 제주 출신이다. 출신 지역과 연결해 '제주에서 온 돼지새끼'라 말하고, 제주도라는 지역이 겪은 4.3이라는 끔찍한 역사까지 결부시켜 '제주에서 온 좌파 빨갱이 돼지새끼'라는 조롱을 한 것이라고 본다. 

가해 학생이 과거 학내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는 10년 이상 조선일보를 봤고, 그래서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조선일보가 아닌 특정신문을 보는 사람을 "좌파 빨갱이"라고 했다는 증언은 듣는 이들을 아연실색케 한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4.3 사건을 색깔론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엔 교과서에서도 4.3을 좌파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기술하지 않으며, 어느 역사 선생님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어느 신문이나 정치적 성향이 있고, 독자 입장에서도 그것이 신문을 선택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읽는 학생이라고 해서 자신과 생각이 달라보이는 이를 아무렇지 않게 "좌파 빨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더더군다나 이것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 나이쯤 되면,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모르지 않을 테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가해 학생 측은 이를 변명했다. "원고(가해 학생)와 피해 학생은 원래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평소 출신 지역이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친구들끼리 자연스레 별명을 불렀다"라는 주장으로 말이다.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 즉 관행이라는 항변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 상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지금 대다수 학교에서는 어느 교사도 4.3을 색깔론 시각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특정 언론을 읽는다는 이유로 빨갱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가해 학생이 가진 이런 시각은 학교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원인은 무엇인가?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집안에서 그렇게 배웠거나,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정 신문을 본다는 이유로 좌파빨갱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검사 아들 세대의 시각이 아니라 검사 부모 세대의 시각이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일부 어른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호남 출신을 '홍어'란 단어를 사용하며 비하하는 그 구조화된 폭력의 판박이가 아닌가? 여기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검사 아들이 문제'라고 손가락질 하는 데 그치면 제2, 제3의 피해자는 계속 나온다. 더 먼저 어른들의 구조적 문제임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감출 수 없는 부모의 흔적
 
검사 출신인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었다.
 검사 출신인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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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실 국가수사본부장 사임 사건을 단순히 '검사 아들 학폭 사건'이 아니라 '부모 검사의 학폭 개입 사건'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판결문 등 곳곳에 등장하는 부모의 흔적 때문이기도 하다. 

판결문에서 원고(가해 학생)는 미성년자이므로 법정대리인은 친권자인 아버지 정순신(당시 검사)과 어머니이다. 친권자로서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니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더 양보해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재판청구권과 3심제에 따라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한 것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라고 한다면 그렇게 봐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시각이 아니라 부모의 시각, 나아가 부모의 직접 개입과 그에 의한 왜곡 등의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 측은 "경력이 많지 않은 학교폭력 담당교사가 원래 업무를 병행하면서 불과 10일 만에 이 사건을 조사"했다면서 가해의 사실 관계를 부정한다. 또 가해 학생은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다",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발언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견해를 아이의 시각, 특히, 검사를 아버지로 둔 학생의 전형적인 시각이라고 하면 우리는 너무나 끔찍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사건 당시 그의 아버지는 현직 검사였고, 그의 외할아버지는 보수정당 3선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가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가해 학생은 학교 폭력에 대해서 사과와 반성은커녕 피해자 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하면서 치를 떨고 있던 피해자 학생에게 들으라는 듯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 판결 받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굉장히 많이 진술을 번복하고,... 원고가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기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피해학생 같은 경우에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봐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교사로서 ... 타일러 보고 피해학생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감을 시켜주고 싶었는데 조금 공감하려고 하면 원고 부모님께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되게 두려워하셔서 2차 진술서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전부 코치해서 썼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조금이라도 선도를 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부여주었기 때문에..."

"저희도 원고를 선도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데, ... 사실 부모님께서 많이 막고 계신다. 저희가 선도하려고 해서 원고가 1차로 진술서를 썼는데 바로 부모님께 피드백을 받아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교정을 받아오는 상태고, 부모님을 만나고 오면 다시 바뀌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희 학교에서도 교육적 조치를 최대한 강구하겠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 당시 민족사관고 교사 진술 내용, 판결문 인용


이런 상황이니 학교폭력의 ▲심각성 '높음' ▲지속성 '높음' ▲고의성 '높음' ▲반성 정도 '낮음' ▲화해 정도 '전혀 없음'이라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판정 결과는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이런 일을 저지를 때 많은 이들이 이 상황에 침묵하거나 같이 웃으면서 동참했다고 한다.

해당 일을 접하며 지금 우리 정치판, 특히 대표 경선 등을 두고 벌어지는 집단 이지메를 떠올리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자기 편이라고 생각할 때는 웃으며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집단으로 공격을 퍼붓고, 더 힘 있는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안면몰수하거나 침묵 모드에 돌입하는 정치판의 복사판이 학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로서 무섭다. 물러난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이 무섭다. 그의 폭언 내용과 수위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고,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파렴치함이 무섭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이를 단순히 '검사 아들의 학폭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들의 몰상식이다. 자신들이 만든 구조적 폭력임을 자각하지 않고 연좌제 운운하는 어른들의 파렴치함이 무섭고, 반성하지 않는 정치권에 절망한다.

아마 곧 학교에 '학교폭력 근본대책을 내놓으라' 또는 '이대로 강력 실행하라'는 '학교탓' 공문이 내려올 것이다. 다시 한 번 정정한다. 이 사건은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일 뿐만 아니라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사건이자 아버지 검사의 학교폭력 조장, 개입 사건'이다.

태그:#정순신, #윤석열, #학교폭력,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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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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