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2 07:13최종 업데이트 23.03.02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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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출산 육아 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육아는 지옥이었다. 좀 심한 표현일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지금까지도 육아는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괴로움과 수고가 따르는 일이다. 아이는 아침에 눈 뜨고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심지어는 자는 동안에도) 먹는 것부터 입는 것, 노는 것, 배설까지 24시간 양육자의 손이 필요하다.

더구나 아이들은 조그만 실수에도 크게 다치거나 위험에 처할 수 있어 양육자는 상시적으로 긴장 상태다. 말 그대로 육아는 눈코 뜰 새 없이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무임금 종일 노동이다. 아마도 양육자에게 퇴근 또는 온전한 휴식은 오직 아이와 분리되는 순간뿐일 것이다.  


육아의 괴로움은 이게 다가 아니다. 육아 노동 자체의 고됨도 크지만 사실 더 막막한 것은 고립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아이와 함께 있지만 양육자들은 말 그대로 처절하게 외롭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저녁 늦게나 집으로 돌아오고 양육자는 홀로 아이 옆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몇 달을 몇 해를 보내다 보면 양육자의 경력 단절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회관계마저 단절되고 서먹해진다. 따라서 육아는 양육자 개인에게는 결국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그냥 이 모든 고난을 버텨내야 하는 그런 지옥이다.

몇 해 전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혼자서도 제법 잘 걷게 된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 평일 낮 주택가 공원에 사람이라고는 벤치에 모여 이야기 나누고 있는 할머니 서너 명이 전부였다. 아이를 데리고 곁을 지날 때 한 할머니가 물었다.

"아니 엄마는 어디 가고 젊은 아빠가 혼자 애를 봐?"

할머니들은 젊은 남자가 평일 낮에 혼자 아이를 돌보는 모습이 생경했나 보다. 나는 아이 엄마는 복직해서 회사에 나가고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해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답했다. 할머니는 적잖게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가 좋은 회사 다니나 봐. 근데 대단하네. 애 보는 거 안 힘들어? 우리도 애 낳고는 시어머니가 '애 볼래, 밭에서 일할래' 물어보면 그냥 암말도 안 허구 바로 호미 들고 밭으로 뛰나갔어. 그 정도로 애 보는 게 힘들었어."

지금도 종종 그 말이 생각난다.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가 당시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든 일. 나도 피하고 싶었던 일. 그 힘든 일을 네가 하고 있는 거야.' 할머니의 말은 나에게 이런 응원의 말로 들렸던 것 같다.

아이가 자라도 지옥은 계속된다
 

2022년 8월 30일 서울 구로구 가족센터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공동육아나눔터에서 공동 육아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이들은 자라서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도 가게 된다. 더디긴 하지만 결국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성장하고 양육자 손을 덜 필요로 하게 된다. 어느새 혼자 숟가락질하게 되고, 도움 없이 걷게 되고, 변기에 혼자 앉아 용변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양육자의 수고가 줄어들 즈음, 대부분의 양육자들은 육아휴직을 끝내거나 취업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된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서 일 하는 양육자들이 다른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오전 9시(또는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업무 패턴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위 선택 받은 직장에 다녀서 직장에 설치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거나 유연한 업무시간의 직장에 다닌다면 '일 가정 양립'이 수월하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에게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다.

잠이 채 깨지도 않은 아이를 8시 전후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퇴근 후 돌봄 종료시간인 오후 7시 30분 전까지 부랴부랴 도착해 데려가는 평범한 '일 가정 양립'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조금 달라진 지옥일 뿐이다. 결국 은퇴한 조부모나 돌봄 도우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양육자들은 일과 양육 사이에서 고민하다 스스로 경력 단절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몇 해가 더 지나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면 고민의 골은 더 깊어진다. 학교에는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이 있어 양육 부담을 줄이고 있지만 방과후 학교나 돌봄교실 모두 학교마다 운영 상황이 다르고 경쟁도 치열해 원한다고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양육자의 경력 단절은 더욱 길어지고 자아실현은 요원해진다. 주거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상황상 웬만한 외벌이 가정은 내 집 마련도 같이 요원해진다. 결국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아이는 가난의 늪이다. 

육아가 이렇게 지옥이기 때문일까. 젊은 세대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매력적이거나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이미 저출산의 위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처음 1.5명 미만으로 집계된 것은 1998년이고 정확하게 20년 뒤인 2018년에는 1명 미만인 0.98명으로 집계되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는 중이며 이 숫자들의 통계적 의미는 지방소멸과 현재 인구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의 붕괴에 가깝다.

끝없는 저출산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늘봄학교 대응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늘봄학교 정상 운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정부가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저출산 대응도 여러 정권에 걸쳐 진행되었다. 정부 차원의 첫 저출산 대응은 노무현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저출산 대응을 위해 지금까지 약 380조 원의 세금을 지출하며 출산과 육아를 지원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처방한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지적해 왔다. 낮은 수준의 남성 가사 분담 및 육아 참여, 수도권의 높은 주택가격, 공공 보육 및 돌봄의 사각지대, 비싼 교육비. 어느 것 하나 문제 아닌 것이 없고 잘못 짚은 원인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원인을 모두 알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저출산 문제를 조금도 개선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들이 앞의 원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성의 적극적인 가사와 육아 참여를 우리 사회가 가능하게 했는지, 서울과 수도권의 주거 비용을 젊은 세대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정상화시켰는지, 공공 보육과 돌봄의 사각지대가 없어졌는지, 비싼 사교육 부담이 없어졌는지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최근 고용노동부는 최근 현 주 52시간 근무제를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또는 11시간 연속 휴식 없는 64시간 근무제 추진을 검토 중이다. 당연히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발칵 뒤집혔고 실제 일을 하는 시민들의 여론도 좋지 않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앞서 저출산 원인들이 환기하듯 우리 사회가 '내 몸 하나 간신히 살아남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후퇴하는데 사람들이 다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는 3월부터 새로운 교육정책을 추진한다. 초등학생 아이를 오전 8시부터 정규수업 후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확대 운영해 최대 오후 8시까지 학교가 돌봐주는 '늘봄학교' 사업이다. 이제 젊은 세대는 걱정 없이 주 64시간 이상 열심히 일하고 아이는 행복하고 안전하게 학교에서 하루에 무려 12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듯하다.

출산율 올라가서 이 동네 저 동네 아이 울음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 다음 달 중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진심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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