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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문득, 또는 어느 한적한 곳에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 한 순간, 또는 생각지 않았던 바람이 볼을 살짝 스칠 때, 불현듯 떠오르는 삶의 무상함, 허무감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가진 천형 같은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며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그 허망함, 허무감은 본능 저 밑에 처연하게 버티고 있다가 문득문득 우리를 찾아온다. '무상한 삶'의 자각이다. 이러한 '인생무상', '존재의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진작품을 만났다. 이성훈의 최근 사진 작업이다.
 
이성훈
▲ Color Of Night # 011-2023 이성훈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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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촬영시간을 밤을 택했고, 그 밤 조명들의 옆 켠 풍경을 찍었다. 그리고 그 희미한 조명이 비추는 부분이나 그 가장 자리에 인체를 합성했다. 길바닥에, 계단에, 건물 벽에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인체가 자리 잡았다. 유심히 보아야 보인다. 이 인체들은 그 풍경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슬쩍 스치고 지나간,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라질 존재처럼 쓸쓸하게 풍경 속에 박제돼 있다.
 
이성훈
▲ Color Of Night # 016-2023 이성훈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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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지난 전시까지만 해도 욕망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작업을 하였다. 이번엔 그 욕망들이 사라지고 '존재'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40대 나이지만 몇 년 전 자신의 묘비명과 유서를 쓴 경험이 지금의 작품으로 나오게 되었다 본다. 죽음,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가지는 그 존재의 허무함이 작품에 잘 담겨 있다. 이 쓸쓸한 분위기는 우리의 허무한 본능을 자극하고 동시에 우리를 위무한다.
 
이성훈
▲ Color Of Night # 003-2023 이성훈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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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가 뿜어내는 감정들은 사진이기에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진이라는 매체이므로 현실감 있는 실재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무심한 밤거리의 약한 조명 속에 은근히 인체가 스며있는 회화적 느낌의 이 사진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미학적 성취가 상당하다. 이러한 원초적 고독을 표현하는 화가가 있다면 이러한 분위기의 작업을 하지 않았으랴?
 
이성훈
▲ Color Of Night # 010-2023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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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품 개인전을 한번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이성훈 작가는 몇 년간 번 돈을 전시회 비용에 모두 쏟아부어 개인전을 하고, 또 몇 년간 벌어 전시하여 왔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을 고려해 작품 외적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상전을 하기로 했다. 일종의 책으로 하는 개인전인 것이다.
 
이성훈
▲ Color Of Night # 012-2023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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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은 <참사랑은 머물지도 떠나지도 않는다>(도서출판 천우)이다. 이 책에서 쓸쓸한 영혼이 스산하게 걸어 다니는 풍경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허무한 감정의 교감이 일어날 것이다.

참사랑은 머물지도 떠나지도 않는다

이성훈 (지은이), 천우(2023)


태그:#이성훈, #사진, #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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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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